[채성욱 선생의 학교]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장 7절)

교육부 고위간부의 어처구니 없는 발언이 공분을 사고 있다. 지방교육청의 부교육감에 해당하며 주요 교육정책들을 기획하고 타 부처와 조율하는 역할의 2급 고위공무원. 그는 스스로 민중이 아니기 위해 노력하는 자를 자처하며 99퍼센트의 민중을 향해 개, 돼지라고, 그저 먹고 살게만 해 주면 된다고 평가해 버렸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가 지난 정권에서 소위 ‘친서민 교육정책’을 홍보하는 강연을 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당시 주제가 ‘모두를 배려하는 교육, 교육비 부담없는 학교’였다고 하니 여기서 모두란 무려 99퍼센트의 개, 돼지였는가 보다. 2급까지 승진하면서 단 한 번도 술에 취한 적은 없나 보다. 식사시간에 곁들인 반주정도를 과음이라고 주장하며 실언을 할 정도니 제대로 술 한번 마셨다가는 그야말로 본인이 개, 돼지가 되지 않았겠는가?

대강의 내용이 알려지자 99퍼센트의 개, 돼지들은 들끓고 있다. 파면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전개되고, 학력을 비롯한 그의 프로필이 공개되었다. 진영을 불문하고 그를 비난하는 정치인들과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으며 교육부 홈피에는 성난 개, 돼지들의 울부짖음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이쯤 되니 대기발령으로 때워 보려던 교육부도 중징계를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린 정말 개, 돼지가 아닌지....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불평등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오히려 강화되고 있는 곳이 교육계가 아닐까 싶다. 중등은 말할 것도 없고 초등까지도 말이다. 같은 시, 심지어 같은 구 안에서조차도 경제력이 뛰어난 지역의 초등학교 아이들은 학습을 비롯한 거의 모든 면에서 그렇지 않은 지역의 아이들을 압도한다. 이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의 철저한 보살핌 속에서 각종 사교육을 체계적으로 섭렵하며 다양한 재능을 발견하거나 쌓거나 주입당한다. 그리고 교사는 이런 아이들을 편하고 똑똑하다며 선호한다. 실상 교사가 할 일이란 아무것도 없으니 편할 수밖에.... 교사의 존재란 그저 아이들을 낮 시간 동안 데리고 있는 보모와 같은데도 일선 교사들, 특히 아이들을 다루는 에너지가 딸리는 교사들은 이른바 잘 사는 지역을 강력히 선호한다. 학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교외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아 오면 그게 마치 학교의 가르침 덕분이고 학교의 자랑인 것처럼 착각한다. 아무 생각도 없이 조회시간에 교장이 상장을 주며 지도 교사를 격려하고 그저 좋아한다. 사실은 모든 것이 부모의 경제력에 기반한 사교육의 힘인데도 말이다. 더 이상 학교에서는 가르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학교는 그저 그동안 남몰래 쌓아온 각종 사교육의 힘을 확인시켜주는 공간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러니 정부가 겉으로라도 사회적 간극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아이고.... 출발선이 다른데 그게 어떻게 같아지나. 현실이라는 게 있는데....’라는 그의 대답은 그다지 틀린 말도 아니다.

교사도, 부모도, 학교도, 심지어 전교조 같은 교육단체들조차도, 그 어느 누구도 이러한 불평등에 문제를 제기하고 저항하지 않았다.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가난한 아이들이 유입되지 않도록 교육청 앞에 가서 집회를 열었고, 교사들은 학구의 경제적 수준을 보며 다음에 근무할 학교를 고르고 있고, 학교는 학구의 경제력과 사교육을 마치 자신의 경제력과 지도력인 양 착각하며 자랑스러워하고 있고, 일부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교육단체들이라 하더라도 사회 전체의 현실이고 상황이라며 무기력에 빠져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우린 아이들이 다른 출발선상에 서 있도록 조장해 왔으며 그것을 극복할 수 있도록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잔인한 현실이다.

▲ (이미지 출처 = youtube.com)

수천 억, 수조 원의 돈이 방산 비리로 사라졌음에도 분노는커녕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적어도 밥만이라도 차별없이 먹이자는 무상급식에는 복지 포퓰리즘이라며 거품을 물고 반대해 왔다. 복지라는 것이 보편성을 내재하는 것이건만 아무런 판단도 없이 그저 언론이 떠드는 대로 왜 내 세금으로 부자아이들 밥을 먹이냐는 단순 무식한 주장들을 해 오지 않았는가? 덕분에 가난한 아이들은 예전처럼 내가 얼마나 가난해서 밥을 공짜로 먹어야만 하는지 증명해야 할 뻔했다.

연간 1000만 원을 우습게 넘어버리는 대학등록금도 마찬가지다. 부모들의 등골을 뽑아 대학에 갖다 바치는 등록금제도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았다. 그 등록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왜 그렇게 많은 등록금을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지에 대해 저항하지 않았다. 반값등록금 공약을 교묘히 내다버린 국가 원수에 대해서 99퍼센트의 개, 돼지들이 무엇을 했는가? 출발선부터 다르게 달려온 우리 아이들은 대학에 가서도 국가장학금이라는 알량한 제도 속에서 몇 푼이라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돈이라도 받기 위해서는 학생 스스로 얼마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인지 비참하게 증명하고 구걸해야만 한다. 그나마도 자신의 등급에 만족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고 말이다. 국가장학금을 총괄하는 한국장학재단 이사장(놀랍게도 그는 초등 교사를 육성하는 서울교대 교수 출신이다.)은 오히려 ‘빚이 있어야 파이팅이 넘친다’며 등록금부터 빚쟁이로 시작하는 젊은 학생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한겨레>, 7월5일) 그리고 그 사실을 아는 사람조차 그리 많지 않다.

교육을 고작 신분 상승의 도구로 인정한다 하자. 신분상승 대표기구인 서울대의 절반 이상은 이미 강남 출신들로 채워져 있다. 굳이 강남이 거주지가 아니더라도 강남의 학원 출신은 아마 더 넘쳐날 것이다. 강남의 학원비가 다른 지역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알 것이다.

다른 분야는 다 집어치우고 교육만 보더라도 이미 오래 전부터 차별이 일상화되어 왔으며 경제력에 따라 신분과 계급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질서 자체를 문제시하고 바꿔가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그것이 현실이라며 순응해 버리고 오히려 아무 죄 없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 질서를 따르도록 강요하기만 해 왔다. 헌법 11조의 평등권? 그걸 갈아 뭉개버린 건 교육부 간부가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아이들에게 더 높은 계급으로 나아가기만을 강요해 온 우리 자신들이다. 앞에서는 문제라고 아우성치면서도 정작 내 아이는 강남으로, 부자 동네로, 사교육으로 몰아온 것이 우리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이른바 ‘수저’ 논란은 더 이상 논란이 아니다. 명확하게 존재하는 흙수저와 금수저를 우린 이미 내면화시키고 받아들인지 오래다. 그러니 ‘신분제를 공고화 시켜야 한다’는 그의 말은 틀렸다. 이미 상당히 공고화되었기 때문이다.

▲ 강남학원 학부모 입시교실 학부모들. (이미지 출처 = youtube.com)

우린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도록 하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의 비참한 죽음이 잠시 언론을 떠들썩하게 하면 한탄이나 한번 하고 끝났을 뿐이다. 불평등과 계급, 신분제에 대해서 우리는 국가나 제도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그저 못난 개인의 책임이다. 공부를 못 해도, 좋은 학교를 못 가도, 돈이 없어도, 서울대를 못 가도, 취직을 못 해도, 돈을 못 벌어도, 심지어 거지같은 부모를 만나도, 그 모든 것이 그저 개인의 책임일 뿐이다. 개인이 그런 걸 국가가 어쩌라구? 이렇게 생각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도록 하지 않은 것이 우리의 본모습이다.

그가 ‘신분이 정해져 있다’고 평가했던 미국도 사실은 평등권을 추구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을 해 왔다. 몇몇 주에서는 폐지되고 아직도 역차별 논란은 있지만 흑인이나 소수 민족들, 사회적 약자들에게 보다 높은 교육의 기회를 주기 위해 실시된 ‘적극적 조치'(차별 철폐 조치, Affirmative Action)가 좋은 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것을 해 왔는가? 그저 무늬뿐인 균형 선발, 학벌 폐지, 농어촌 선발.... 이것들이 전부이지 않은가? 출발선이 다르고 계급이 다른 아이들이 보다 행복하게 자신의 꿈을 이루도록 우린 무엇을 했는가 말이다.

이쯤되면 우린 인정해야 할 부분이 많을 것이다. 그는 망언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아닌 척하며 살아가던 우리의 가면을 들추고 ‘넌 사실 개, 돼지야’라고 속삭였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우린 스스로 개, 돼지임을 인정하면서 그와 똑같이 1퍼센트가 되기 위해 무조건 미친 듯 달려왔거나 아무 죄 없는 아이들에게 채찍질해 왔다는 것을 말이다. 글을 쓰는 중에 교육부가 그의 파면을 요구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중앙징계위원회에서 최종 결정을 한다지만 너무나 당연한 조치다. 그러나 그를 파면시키면서 우린 자신도 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인정해버린 그 당연한 것들, 당연한 현실들. 사실은 그것들을 가장 먼저 파면시켜야 하지 않을까? 우린 과연 그에게 파면하라고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 것일까? 우린 개, 돼지가 아니기 위해 무엇을 해 왔고, 무엇을 요구해 왔는가?

영화 대사를 인용했다니 나도 영화 대사를 인용하면서 마무리해 보고자 한다.

"우리나라 백수 애들은 착해요. 거 티비에서 보니까 프랑스 백수 애들은 일자리 달라고 다 때려 부수고 개지X을 떨던데, 우리나라 백수 애들은 다 지 탓인줄 알아요. 지가 못나서 그러는 줄 알고. 아유, 새끼들.... 착한 건지 멍청한 건지. 아, 넌 너 욕하고 그러지마. 취직 안 된다고 니 탓이 아니니까. 당당하게 살아. 힘내, XX." 영화 "내 깡패같은 애인"(2010) 중에서....

 
 
채성욱 교사(루도비코) 
 2003년부터 인천과 경기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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