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싱 스트리트', 존 카니, 2016

'싱 스트리트'는 음악영화라는 자신만의 장르적 세계를 구축한 아일랜드 출신 존 카니 감독이 이전과는 다른 개성있는 음악 세계를 펼치는 영화다. 존 카니는 다큐멘터리처럼 누군가의 진실된 삶을 들여다 보는 듯한 영화로, 가난한 길거리 뮤지션들의 노래와 로맨스가 잔잔한 감동을 주는 '원스'(2006), 키이라 나이틀리와 마크 러팔로, '마룬5'의 애덤 리바인 등 스타들을 기용하여 뉴욕에서 만든 뮤지션들의 드라마 '비긴 어게인'(2013)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무명 감독이 선댄스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오스카 무대에 섰으며, 또한 흥행작을 만들 수 있는 능력까지 보여 주었다. 다양성 영화인 '비긴 어게인'은 국내에서 340만 관객을 동원하며 ‘아트버스터’라는 신조어의 유행을 이끌었다.

할리우드 상업영화 세계로 확고하게 진입하는가 했더니 존 카니는 의외로 다시 고향인 아일랜드로 가서 작은 영화를 내놓았다. '싱 스트리트'는 '원스'의 소박한 감성을 재확인하는데, 삶이 힘들어질 때 음악이 할 수 있는 빛나는 역할을 이처럼 드라마로 잘 엮어 내는 예술가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세 개의 음악영화로 존 카니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통해 대중성과 작품성을 조화시키는 개성적 감독임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불황이 몰아치던 1980년대 아일랜드 더블린이 배경이다. 영화는 첫눈에 반한 라피나(루시 보인턴)를 위해 첫 밴드를 만들고 생애 처음으로 음악을 만드는 소년 코너(페리다 월시-필로)의 이야기를 그린다. 감독이 10대 때 실제 경험한 그 시절과 음악을 영화에 녹여 낸다. 첫사랑과 첫 밴드의 설레는 감정이 영화에 매력적으로 담뿍 실린다. 1980년대 인기 뮤지션이었던 듀란듀란, 아하, 더 클래쉬 등 뉴웨이브 팝의 명곡들이 영화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 코너는 첫눈에 반한 라피나를 위해 밴드를 결성하고 생애 처음으로 음악을 만든다. (이미지 제공 = 더홀릭컴퍼니)

악화된 집안 경제로 인해 고등학생 코너는 가난한 동네로 전학 가게 된다. 엄격하고 억압적인 규율을 가진 가톨릭 학교의 분위기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던 코너는 길에서 모델처럼 멋진 소녀 라피나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덜컥 밴드를 하고 있다는 거짓말을 한 코너는 뮤직비디오에 그녀의 출연 승낙을 얻어낸다. 코너는 어쩔 수 없이 진짜 밴드를 만들어야 한다. 그는 어설픈 친구들을 모아 ‘싱 스트리트’라는 밴드를 급 결성하고 집에 있는 인기밴드들의 음반을 찾아가며 노래를 연습한다. 어설프게 남의 노래를 연습하는 것을 지켜보던 대학 중퇴자인 형 브랜든은 자신만이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 것을 조언한다. 아이들은 음악을 직접 만들고, 연주하고, 또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콘서트를 준비한다.

음악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만, 첫사랑의 열망과 좌절이 음악과 어우러지며 감동을 자극하는 그저 그런 류의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는 뮤지컬이 아니며, 화려하거나 세련되지 않다. 영화가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이유는 사방이 곤란함으로 가득한 그 시절을 살아 낸 소년의 용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청년들은 그 나라에서 희망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1980년대 경제 위기는 가정과 개인들을 위기로 내몰았다. 코너의 부모는 파산 직전에 몰렸고, 부부 사이도 회복 불능이다. 갑작스레 가난한 동네로 옮기는 것도 힘든 마당에, 코너가 다니는 학교의 가톨릭 신부들은 앞뒤로 꽉꽉 막힌 데다 학생들을 학대하기까지 한다. 새로운 전학생을 괴롭히는 동급생까지, 부모, 선생, 친구가 모두 적으로 보이는 험난한 현실에서 코너는 현실도피의 도구로 음악을 끼고 산다. 바야흐로 비디오의 시대가 열리는 때였다. 뮤직비디오가 음악의 한 축을 이루는 새로운 비주얼의 시대를 아이들은 환희를 가지고 대하고 있었다.

▲ 어설프게 남의 노래를 연습하는 코너을 지켜보던 대학 중퇴자인 형 브랜든은 자신만이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 것을 조언한다. (이미지 제공 = 더홀릭컴퍼니)

가정의 위기와 학교의 엄숙함, 가난한 학생들의 폭력을 견디고 이겨내는 내면의 동력이 이 어린 뮤지션에게 있다. 분노와 사랑과 열망을 담아 내는 음악이 바로 그것이다. 밴드를 만들고, 콘서트를 하고, 좋아하는 여자아이와 친하게 지내게 되는 코너의 작은 승리는 앞으로 더 큰 삶의 장애물들을 꿋꿋하게 헤쳐 나갈 수 있는 큰 경험 자산이 될 것이다.

▲ '싱 스트리트', 존 카니, 2016. (이미지 제공 = 더홀릭컴퍼니)
천박하다고 비난받던 1980년대 비주얼 팝이 새로운 시대를 연 시대 정신이었음을 30년 뒤에 확인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 비루한 환경을 남긴 꽉 막힌 어른 세대에 맞서는 청소년 세대는 그 사회의 미래의 향배를 보여 준다. 20대에 이미 낙오자가 되어버린 형 브랜든이 자신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 있는 조언으로 코너의 진정한 멘토가 된다.

현실을 꼭꼭 꼬집는 노래가사는 웃기면서도 통쾌하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무책임한 말이나 던지는 어른들 앞에 아이들은 자신만의 언어를 무기로 당당한 자존감을 드러낸다. 주인공은 위태로운 순간을 자주 겪는다. 소년이 각종 사건들을 겪으며 내면의 성장을 꾀하는 내내 긴장감을 놓지 않고 보게 하는 이야기의 힘이 있는 영화다. 소년의 멍든 얼굴로 바라본 세상은 그의 노래처럼 미래를 향해 열려 있기를 간절히 바라 본다.

"청춘은 아프지 않아야 한다"는 자조어린 말로 아무리 "노오력"해봐야 "흙수저"인 "헬조선"을 무심하게 살아 내는 청년들에게 이 영화를 권한다. 세상이 이래서 미안하다. 그대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래도, 지금 실행하지 않으면 청춘은 그냥 가버린다는 대책 없는 조언이나 해 보지만, 겪어 보니 그게 진리인 걸 어쩌나.

 
 

정민아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한신대 겸임교수.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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