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52]

1.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얻게 되는 것

‘드르륵 드륵 드르르륵’

넓고 평평해서 자전거를 타기에 그만인 옆집 할머니 집 시멘트 마당에서 메리가 자전거를 타고 있다. 옆집 할아버지는 논일 하러 가시고 할머니는 원두막 그늘에서 동네 할머니들과 화투 치며 놀고 계시느라 주인 없는 집에 자전거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평소에 할머니는 나를 만나기만 하면 애들 데리고 당신네 마당에 와서 놀라고 신신당부 하셨다. 아이들이 놀러 가는 게 뜸하면 서운해 하시는 할머니가 마음에 걸려 틈만 나면 아이들을 할머니 집 마당으로 쫓아 보내곤 하는데 수족구병에 걸린 욜라와 로가 제 친할머니 집에 격리 조치된 탓에 오늘은 메리 혼자다.

영리한 개는 짖지 않고 집 그늘 속에 들어가 낮잠을 자는 한여름 오후, 메리한테 끌려 나온 나는 할머니 집 마당 한 켠에 놓인 나무 의자에 앉아서 자전거의 보조바퀴가 지면을 긁고 가는 소리를 거의 두 시간째 듣고 있는 중이다. 의자 위에 놓인 농약광고가 인쇄된 플라스틱 부채와 의자 뒷편으로 햇볕을 막아 주는 경운기 주차장 지붕만 아니었다면 벌써 손 털고 일어났을 것이다. 혹시나 읽을까 해서 가지고 나온 책도 지면 반사광에 눈이 부셔 읽을 수가 없고 워낙에 스마트폰으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데다 아이 앞에서 핸드폰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으려는 나는 스마트폰을 가지고도 할 것이 없다.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속 녹고 있는 시계처럼 의자에 널부러진 채로 메리가 자전거 타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밖에는.

원래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매우 잘 하는 나지만 날씨는 무척이나 덥고 내 앞의 풍경이래 봐야 두 시간째 정지된 집과 마당, 그 위의 사물들, 그리고 자전거를 타는 메리뿐이라 어지간히 무료했나 보다. 뭐든지 다 증발시킬 것 같은 햇볕이 문제였다. 내가 메리를 눈으로 좇는 사이 햇볕은 줄곧 내 정신머리를 하얗게 증발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저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던 생각 하나를 비춰 주었다. 그것은 ‘세상에나!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이렇게 시간을 허비해도 되는 거야?’와 같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의문이었다. 모두가 바쁘게 일을 해서 돈 벌고, 자기계발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제테크 해서 빌딩 사고, 새로 생긴 레스토랑에 가서 인증샷 찍고 있는데 나는 할머니 마당에서 부채질 하길 몇 년째라니. 그동안 선량한 많은 이들이 나의 등을 토닥이며 ‘그래도 아이를 낳고 키운 건 대단하다’고 위로하고 격려해 주었지만 나의 생활 자체를 동경하고 워너비로 삼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애들은 절대 말을 안 듣고, 살림은 젬병이라 먹을거리 입을 거리 골치만 아프고, 올해 텃밭도 왠지 실패인 것만 같은 예감 속에서 나는 오늘도 시간을 착실하게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다. 어쩐지 참을 수 없어진 나는 부채를 집어 던지며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메리야, 이제 그만 집에 가자!”고 외쳤다. 하지만 밖에서 계속 놀고자 하는 열정이 한여름 날씨보다 더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메리는 딱 잘라 “싫어!”라고 말했다. 나는 좀 더 강하게 내 의사를 표현해야했다. 그래서 “자전거 많이 탔잖아. 넌 오늘만 자전거 탈 거니? 내일도 타야 하잖아. 안 더워? 그러다 병 걸린다, 일사병. 병 걸리면 집에 누워만 있어야 하고 자전거도 못 탈 텐데. 이제 좀 쉬어, 응? 게다가 엄마는 할 일이 많다고....” 내 마지막 말에 메리가 눈을 크게 떴다.

▲ 자전거와 메리와 로. ⓒ김혜율
“할 일? 엄마는 무슨 할 일 있는데?”
“응, 엄마 할 일 엄청 많아.”
“그러니까 무슨 일?”

집요한 녀석. 구체적인 대답을 들어야 자전거 브레이크를 밟든지 말든지 하겠다는 저 얼굴이 납득할 만한 일을 어서 찾아야 한다.

“음.... 엄마는 지금.... 저녁밥 준비해야 해!”
“....”
“밥 하는 데 한 시간은 걸리고 그러려면 지금 쌀을 씻고 재료를 다듬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메리는 ‘아, 난 또 뭐라고’하는 표정으로 자전거 페달을 더욱 가열차게 밟는 게 아닌가.

아 젠장. 지금 가서 밥을 하지 않으면 오랜 공복에 지친 위벽이 위산과다로 헐어 구멍이 뚫려 병원에 실려 갈 수 있다고 할 걸 그랬나? 아무튼 메리는 나를 이대로 내버려 둘 참인가 보다. 오도가도 못하게 제 옆에 잡아 두고서. 메리에게 집에 가자고 더 졸라 봤자 버럭 성을 낼 게 뻔하고 그 성질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녹은 시계가 되는 게 나았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나는 어느 CF에서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던 누군가의 바람을 이뤄 보기로 했다. 다시 나무의자와 한 몸이 되어 아무것도 안 해서 배배 꼬이던 온몸에 힘을 빼고 머릿속으로는 내가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을 밀쳐 둔 채 메리를 ‘단지 바라 보았다’. 따분하게 내리쬐는 햇살도 내가 그 자리에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도록 내 자신은 햇볕과 공기 중에 살짝 얹어 놓기만 한다. 이제 이 세상에 살아 있고 움직이는 것은 메리뿐이다. 메리는 자전거를 굴리고 자전거는 ‘드르륵 드르륵’ 소리를 내며 굴러간다.

많이 컸다면 컸고 아직 작다면 작은 일곱 살 먹은 여자 아이가 네발자전거를 타고 있다. 이번에 타는 것이 생애 두 번째이니 만큼 넘어지지 않고 굴러가는 자전거가 신기한 듯 놀라움과 뿌듯함이 앙 다문 입가에 어른거린다. 아이의 작은 종아리가 페달을 밟을 때마다 자꾸만 여름 한낮 공기가 흩어졌다 모인다. 아이의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린다. 아이가 옅게 웃는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이 세상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나는 무대 위 주인공은 아니었고 숨겨진 관객이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있는 장소와 나의 현재가 세상 변두리의 회색 콘크리트 담 밑이 아니라 빛이 가장 밝게 비추는 세상의 한가운데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메리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나는 그것을 오래도록 기억해 두고 싶었다. 아마 햇볕이 이글이글거리는 여름날 오후 마당에서 두어 시간쯤 있다 보면 마주치는 찰나와 같은 순간이거니 생각은 해도.

2. 수수께끼는 풀지 않아도 괜찮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메리였다. 앞으로도 내가 엄마로서 성장한다면 필시 그건 메리 덕이 클 것이다. 나는 엄마니까 메리에 대해서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수 없다. 내게 메리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풀리지 않는다니.... 답이 없다는 말인가? 아니. 답은 있지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며, 그 결정권은 메리에게 있다는 말이다. 때문에 박사의 박사 할애비라도 메리라는 수수께끼를 풀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을 것이다. 기존의 수많은 육아서에서는 인간의 여러 기질 중 몇 가지 타고난 기질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아이들의 특성을 그룹으로 묶어 일반화하는데, 그것이 각 아이에게 백 퍼센트 들어맞을 리는 없지만(이 세상 모든 아이들은 각자 고유하여 특별하므로) 대략적으로는 아이가 어떤 부류에 속하는지 적절히 설명해 주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메리에 관해서 만큼은 지금껏 그 어떤 육아서도 충분한 설명을 해 준 적이 없으며 간혹 이번에야말로 하는 기대를 한 경우라도 핵심을 건드리지는 않은 채 변죽만 울리고 마는 경우가 많았다. 그건 참으로 곤란한 일이었다.

메리가 내게 어려운 이유, 메리가 보통 아이들과 다른 특별한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 관계를 진정으로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내가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오랫동안 골머리를 썩여도 쉽게 풀 수 없는 시험이었다. 언제나 나는 성실한 학생처럼 시험지에 답을 써서 제출했지만 답지를 낼 때는 확실해 보였던 답이 채점표만 받아들면 빨간 줄이 무참히 쫙 그어져 있는 일이 허다했다. 말하자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와 같은 일이. 심지어는 제시된 보기 안에 답이 없는 때도 있었으니, 메리 엄마로서의 내 점수는 늘 형편없었다. 아무리 용을 써도 겨우겨우 낙제를 면할 수준이었다. 메리를 이해하고 잘 키우는 것이 아마도 ‘수학의 정석-실력 편’의 연습 문제를 푸는 것보다 열 배는 더 어려울 것 같다.

메리는 일단은 예민하고 민감한 아이다. 아이 주제에 심하게 형이상학적이고 논리가 정연하다. 자기절제력이 뛰어나며 의욕과 승부욕이 상당하다. 상황을 이해하고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뛰어나 메리 앞에서는 마음속 깊은 곳까지 진실해야 한다. 호불호가 분명한 만큼 엄격한 기준에 편협한 취향을 가지고 있고 집과 유치원에서의 생활이 180도 다른 이중적 생활을 하며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반항적인 면이 있다. 자기자신밖에 모르며 냉소적이고 비아냥대길 잘한다. 무엇보다 내면의 에너지가 어마어마하게 커서 그를 지쳐 나가떨어지게 하는 일이란 거의 없다.

이렇게 늘어 놓았다고 해서 내가 메리에 대해 반이라도 설명했냐면 택도 없다. 메리는 언제나 나의 예상 밖이다. 메리를 이해하느라 바빴던 나는 늘 부족하고 서툰 엄마로서의 죄책감에 시달렸고 두려움을 느꼈으며 가슴이 무척이나 아팠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메리는 내 딸이었고, 나는 메리를 도와주고 싶었고 내 자신을 메리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싶었다. 그러나 딱히 이렇다 할 해법은 없는 채 언제나 덜그럭거리고 있으며, 다만 며칠 전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제라고 해서 언제나 풀리는 건 아니다’ 라는. 그 문제는 수수께끼나 넌센스에 불과한데 방정식이니 함수니 하는 것이 왜 필요하겠냐는. 어쩌면 그 자체를 즐기고 고민하는 자체에 문제의 의의가 있노라는. 아 물론, 답은 출제자가 말해 줄 것이고, 답이 무엇이건 간에 내가 할 일은 나중에 무릎을 탁 치며 기뻐하는 일이라는 것을.

▲ 메리메리 돈 워리 비 해피. ⓒ김혜율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4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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