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50]

‘이 지상에는 ‘욜라 연구소’라는 데가 있다. 욜라의 엄마가 연구소장이자 수석 연구원으로 일하는 1인 운영 시스템의 민간 연구소로, 매주 직계 방계 가족회에 욜라 행동에 대한 보도자료를 뿌리고, 최소 월에 한 번 ‘욜라 심층 해부’논문을 욜라 아버지와의 ‘카톡’ 대화창에 게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 왔다. 그러나 요새 욜라 연구소장이 ‘로 연구소’ 일로 부쩍 바쁘고 ‘메리 연구소’의 일거리도 쏟아지고 있어 연구인력 충원이 절실하던 차에 욜라 아버지가 신임연구원으로 왔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는 요즘 바쁜 시간을 쪼개서 주로 화장실에서 육아서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를 읽고 있는데, 생각보다 진도가 안 나간다는 후문이다.

어쩌자고 ‘욜라 예찬’을 한다고 하였는지, 처음엔 ‘욜라 고발 24시’로 주제를 바꾸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욜라 연구의 1인자. 욜라는 이율배반적인 매력을 동시에 가진 아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여 ‘보고 있으면 순식간에 열받지만, 안 보고 있을 땐 숨 막히게 보고 싶은 아이, 욜라’ 그의 반전 매력을 들여다 본다.

▲ 욜라가 길을 가는 법. ⓒ김혜율

욜라의 유치원 생활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건 그다지 많지 않다.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통 말이 없는 욜라로부터는 지극히 적은 양의 정보만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한편 정보원 메리가 전하는바에 따르면 유치원에서의 욜라는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이다. 욜라를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항상 욜라 손을 잡고 다닌다는 소식이 들려 내가 “어머, 욜라야, 정말 그러니?”하고 물으면 욜라는 그 손이 자기 손이 아닌 듯 “응, 맞아.”하고 만다. 메리는 욜라가 유치원에서 친구들이 하는 말을 듣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지 않더라고 했고, 친구들 노는 데서 어슬렁어슬렁 배회하는 모습을 보았다고도 했다. 유치원 선생님도 욜라는 말이 많지 않으나 시종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고 참으로 점잖은 편이라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할 말은 다 하고, 하고 싶은 건 다 한다고 하였다. 나는 그게 뭔지 알 것 같았다. 욜라는 킬리만자로의 표범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다. 아니, 사실은 흉내가 아니라 원체 그런 분위기를 가진 아이라는 게 맞겠다. 행동거지가 무게감이 있다 못해 거만함이 흐르고 또래답지 않은 차분함이 있어, 친정 엄마는 그런 욜라를 두고 ‘노련한 정치인’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나만의 욜라는 “욜라야, 친구들이 묻는데 왜 말을 안 한 거야?”하고 물으면 “부끄러워서 그렇지”라며 푸 하고 웃으며 고개를 내 품에 파묻는 ‘소년’이다.

▲ 행동거지가 무게감이 있다 못해 거만함이 흐르는 욜라. 친정 엄마는 욜라를 '노련한 정치인' 같다고 말했다. ⓒ김혜율

내가 메리와 욜라를 유치원에 가 직접 데리고 오는 날이 있는데, 그때마다 담임선생님들과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유치원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오늘은 무슨 놀이를 했는지, 점심밥은 잘 먹었는지 엄마라면 그게 항상 궁금하다는 걸 선생님도 알고 계신다. 선생님이 욜라에게 묻는다. “욜라야~ 오늘 우리 재밌는 거 했지요? 뭐 했는지 엄마한테 말씀드려 볼까?” 그럼 욜라의 대답은 이렇다. “싫어, 말 안 해 줘.”

선생님이 욜라를 안으며 “욜라야~ 말해 줘~ 응? 아까 우리 신기한 그림 그린 거 있잖아요~”라고 해도, 욜라는 콧잔등을 찡긋, 몸을 비틀며 “몰라, 기억 안 나.” 홱 토라지듯 말한다. 나는 슬슬 욜라의 유치원 생활에 대한 궁금증을 접을 준비를 하는데,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는다. 욜라 배를 간질간질 간지럽히며 욜라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간다. 그럼 빠져나갈 수 없는 욜라는 잠깐 오도가도 못하게 갇힌 것 같더니 자기에게 귀를 바짝 갖다 대고 있는 선생님께 온몸을 맡기고 쓰러지듯 드러누워 버린다. 갑작스레 무게 중심을 잃은 선생님은 뒤로 나자빠지고 탈출에 성공한 욜라는 얼른 일어나 낄낄대며 도망을 간다. 그런 욜라를 작정하고 쫓아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면 웃음도 나고 죄송스럽기도 하다. 사실 그렇게 욜라가 모르겠네, 생각 안 나네, 하고 말을 아껴도 아침마다 유치원에 빨리 가고 싶어 안달하는 욜라의 모습이 충분한 답을 해 주고 있으니 그걸로 됐다는 심정이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있다 보면 가끔 욜라로부터 “오늘 ‘과자로 얼굴 만들기’ 한 건 비밀이야! 안 가르쳐 줄 거야”와 같은 소상한 답변을 듣게 되는 운이 좋은 날도 있다.

▲ 언제나 쉬지 않고 남을 귀찮게 하는 욜라의 손. ⓒ김혜율

앞서 선생님에게 드러누워 버렸듯이 욜라는 이래저래 드러눕기를 잘 하는데, 분초를 다투는 바쁜 아침시간도 예외는 아니다. 며칠 전엔 아침 8시부터 8시 35분까지 누워 있었다. 발을 동동거리면서 온몸을 회전하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채로 말이다. 마침 욜라 옆에서 삶은 계란을 먹고 있던 로가 노른자 한 알을 통째로 떨어뜨렸고 욜라는 보란 듯이 자기 등으로 노른자를 뭉개 가면서 빙글빙글 도는 참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그러나 그 정도의 난동에 내성이 이미 생긴 나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욜라에게 “울고 싶은가 보네? 그럼 울어야지 뭐. 실컷 울어. 다 울면 엄마한테 얘기하고. ”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얼마 뒤 욜라의 눈물과 콧물을 씻겨주는데 욜라가 “미안해.”라고 말했다. 내가 “뭐가 미안해?” 물으니, 욜라는 “....운거. 소리 지른 거”라고 어린양처럼 말했다. 고도의 인내심을 발휘하자 순한 양으로 교화되고만 ‘돌아온 탕아’, 욜라였다.

▲ 하지만 욜라의 기도손은 아름답다. ⓒ김혜율
‘돌아온 탕아’ 욜라가 식탁에 메리와 마주보고 앉아 아래 마룻바닥에서 노는 로를 보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메리가 “아~ 로는 정말 귀여워. 너무 예뻐. 나보다 더 예쁜 거 같아.”라고 약간의 한숨 어린 탄식을 내뱉었다. 그런 메리의 복잡한 심경에 어떤 말을 건네야 하나 내가 고민하는 사이, 메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욜라가 피식 웃으며 한마디 했다. “에이~ 누나가 더 예뻐.” 그리고 둘은 이내 식탁위에 놓인 공룡 스티커 세 장을 나눠 갖기 시작했다. 우선권을 가진 메리가 두 장을 먼저 골랐고 나머지 한 장은 욜라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메리는 곧이어 그것마저 낚아채 그중에 몇 개의 공룡 스티커를 빼앗으려는 탐욕을 내비쳤다. 내가 “메리야, 그건 욜라 거잖아, 넌 두 장이나 있고. 그러니까 이건 그냥 욜라한테....”라고 말하는 순간 갑자기 욜라가 아주 따분한 얼굴로 끼어들며 “엄마, 나 이 스티커 너무 많아. 내가 이걸 어떻게 다 써? 어휴.”라고 불평을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응? 그럴 리가.’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쨌든 잘됐네. 메리한테 몇 개 줘도 되겠어.’하고 메리에게 욜라 스티커를 넘겨 주었는데, 그때 욜라의 얼굴에 스치는 시크한 미소에 비로소 욜라의 본뜻을 알게 되었다. 티 나지 않게 상대방을 은근히 배려하는 것이 욜라의 특기다. 나조차도 감쪽같이 모를 정도다.

하루는 가까운 박물관으로 나들이를 갔다가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게 되었다. 메리는 아이스크림으로 배를 채울 듯 가장 큰 아이스크림을 골랐고, 욜라도 콘 아이스크림을 골라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메리 친구의 엄마가 메리의 엄청나게 커다란 아이스크림을 보며 엄마랑 나눠 먹을 것을 권유했고, 마지못해 메리가 아이스크림을 한 스푼, 두 스푼 주는 사이 욜라는 한 켠에서 말 없이 아이스크림을 먹기만 했다. 난 별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진 않았지만 심심해서 아이들이 아이스크림 먹는 걸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욜라가 아이스크림이 반이나 남았는데 이제 배불러서 그만 먹겠단다. 그 정도 아이스크림이라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우는 욜라가 왠일일까 의아해 하며 나는 욜라가 건네 준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먹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로가 자기도 달라며 마구 달려들어 울기 시작했고 나는 로를 말리랴, 아이스크림을 사수하랴 진땀을 뻘뻘 흘렸다. 아이스크림은 어느새 흐물흐물 녹아가고, 나는 아깝지만 아이스크림을 버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이스크림을 쓰레기통에 넣으려는 순간, 비호같이 달려 오는 욜라, 그리고 다급하게 외치는 “안 돼! 내가 먹을 거야!” 하는 소리. 나는 그때 욜라의 눈에 안타까운 눈물이 글썽이는 걸 본 뒤에야 욜라가 지금껏 아이스크림을 주시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배불러서 아이스크림을 못 먹겠다던 욜라는 사실 아이스크림이 너무 먹고 싶었지만 엄마에게 그것을 양보했던 것이다. 메리가 차마 다 먹지 못한 아이스크림이 녹아 흐르는 사이 욜라의 거의 다 녹은 아이스크림도 그제야 눈물을 훔치면서도 행복해 보이는 얼굴의 욜라 뱃속으로 무사히 들어갔다.

▲ 사랑스러운 말썽쟁이 욜라. ⓒ김혜율
그렇게 속 깊은 욜라건만 현실은 ‘못 말리는 욜라’다. 메리한테 “넌 짱구랑 욜라 중 누가 더 말썽쟁인 거 같아?”하고 물어도 “그야 욜라지.”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요즘 들어 부쩍 사람 말 반, 외계어 반을 섞어 쓰는 욜라를 두고 욜라연구소 회의가 조만간 열릴 예정이다. 거기서 우리는 대주제 ‘욜라는 대체 왜 그러나?’ ‘욜라는 생각이 있나, 없나?’ ‘욜라는 사람 말을 얼마만큼 알아 듣는가?’에 대한 고민 속에서 각 해결책을 모색해 볼 것이다. 아마도 이런 식으로....

연구소장 : 욜라는 대체 왜 그러는 거지? 오늘은 욜라가 어머니집에 가서 가위로 이불 두 채를 해먹었다고 하더라고. 에휴, 아까운 이불.
신임 연구원 : ....
연구소장 : 정말 이해가 안 돼.
신임 연구원 : 나중에 커서도 그러진 않겠지.
연구소장 : ....응, 그건 그래.
신임 연구원 , 연구소장 동시에 : 그럼 걱정할 거 없겠네!! 밥이나 먹자.
신임 연구원이 욜라 연구에 한몫 하고 있음에 든든한 연구소장은 오늘도 밥이 술술 잘도 들어간다.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4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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