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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칠드런[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49]

기원전 3000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한 동굴 벽화에 이런 낙서가 있다고.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 나이 어린 존재들은 예나 지금이나 대체로 못돼 처먹었고, 개념이 없고, 싸가지가 없다는 식의 질타를 듣나 보다. 또 한편으로는 그들에 대한 경탄과 찬미도 늘 있어 온 것도 사실이다. 문득 학창시절에 읽었던 '청춘예찬'이라는 수필이 생각났다. 어차피 뭐라 해도 말 안 들을 거 뻔하고 때는 신록이 더욱 싱그러워지는 6월이라 푸르른 청춘들을, 나보다 어린 이들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격려해 준들 내게 무슨 손해가 나랴. 그런 심정으로 우리 집 어린이들에게 바치는 '꼬마예찬: 디어 마이 칠드런' 제1부 ‘로’ 편을 시작한다.

우리 집에서 제일 꼬마인 로! 맹세코 성령으로 잉태되어 이 세상에 나온 신비한 막내둥이!(성령으로 잉태되었지만 제 형과 누나와 똑같이 생겼다는 것이 아이러니) 나는 매일 봐서 잘 모르겠지만 가끔 보는 사람들은 로의 성장을 제일 놀라워할 만큼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다.

   
▲ 동네 개 잡으러 가는 로, 단숨에 제압하다. ⓒ김혜율

도시에서 태어나 시골로 온 메리와 욜라와 달리 시골서 나고 시골서 자라는 로는 완전한 시골아이로 노는 물이 다르다. ‘흙탕물’에서도 잘 논다. 수돗가에 놓인 큰 고무대야에 직접 물을 받고 그 물에다 흙을 푼다.(사방천지가 흙이어서 어쩔 수 없는 조합인 듯) 그리고 그 물을 떠서 자기 몸에 붓는다. 머리에도 붓는다. 황톳빛 흙물이 머리카락에서부터 온 옷을 적시며 바닥으로 뚝뚝 떨어진다. 방금 새 옷으로 갈아입고 보송보송한 병아리 같았던 로가 순식간에 물을 뒤집어쓰고 흙 위를 뒹구는 강아지같이 되었다. 나는 로를 쳐다보며 “로! .... 아.... 음...(너무하는 거 아니니? 하고 싶은데 말이 안 나온다)” 하고 눈살을 찌푸린다. 그런데 나와 눈이 마주친 로는 움찔하기는커녕 평소보다 더 크게 웃어 젖힌다. 까르르깔깔. 으헤헤헤헷 하고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나는 해맑게 웃는 로를 도저히 탓할 수 없다. 케 세라 세라(Que Sera Sera). ‘휴.... 그래. 괜찮아, 로. 버린 옷은 빨래하면 되고 더러워진 몸은 목욕하면 그뿐이야.’라고 생각하며 로에게 하던 거 계속하라고 손짓한다. 때로는 웃음이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걸 로를 통해 배우며.

   
▲ 홀딱 젖어 상의 벗은 로의 일상 모습. ⓒ김혜율

같은 상황에서 욜라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리고 메리는? 욜라는 온몸을 던져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탈출하는 유형이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건 아니고 그냥 오버하는 것 같다. 이 경우 욜라는 왠지 엄마한테 혼날 것 같다는 눈치를 채고는 재빠르게 대야에 풍덩 뛰어들 것이다. 그리고 허우적거리며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면서 자기를 (혼내지 말고) 일단 살려 달라고 꽥꽥 대겠지. 그러면 나도 혼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일단 상황을 수습할 수밖에 없다.

반면 메리는 적반하장과 아전인수 전술을 펼친다. 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지금 매우 안 좋은 상황에 처했으니 가장 힘든 건 바로 자기라고 선수를 칠 것이다. 그래도 내가 이건 네가 한 일 아니냐고 반박하면 이 일로 엄마가 자신에게 화내는 것은 부당하다는 온갖 논리를 펼치며 내게 도리어 성을 낼 것이다. 그러면 지극히 평화주의자인 나도 가파르게 전투력이 상승하고 결국 나는 내 가정에서의 위치와 명예를 걸고 메리와 말싸움을 벌이게 된다. 하지만.... 베트남전의 승리를 확신했던 미국이 끈질긴 베트콩들의 게릴라전에 무릎을 꿇고 철수한 것과 같은 사건은 작게는 한 가정 안의 어머니와 자식 간에도 일어날 수 있음을 아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처음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여유로왔던 내가 등에 식은땀을 흘리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목소리가 격앙되어 간다면 그때는 이미 패색이 짙다. 베트남전 때의 미국 꼴 나는 거다. 심판자는 없고 오로지 싸우는 두 상대만 있는 싸움은 각자에게 큰 고통만을 안겨 주는 전면전까지도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서둘러 평화협정을 맺기로 한다. 어린 시절 엄마가 혼내실 적마다 싹싹 빌며 잘못을 뉘우치고 했던 나는 커서 아이들한테 매번 지는 엄마가 되고 말았다. 가끔은 ‘이것 봐, 그렇게 착하게 산 게 다 무슨 소용이야. 하나같이 연구 대상감인 아이 셋 키우면서 힘들게 사는 거 봐. 으흑’ 하는 처량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그런 와중에 로의 귀여운 웃음만큼은 나를 위로해 주는 것이 분명하다.

   
▲ 물장난하는 아이들. ⓒ김혜율

그런데 어디선가 들리는 ‘호로록’하는 수상한 소리! 설마 하며 휙 돌아보았을 때 로가 흠칫 놀라며 ‘멋쩍게’ 웃고 있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로가 흙탕물을 마신 것 같다.

“오 하느님.... 로! 그 물은 먹는 거 아니야. 더러워. 병 걸려. 에이 지지~~ 먹지 마!”
라고 내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팔짝팔짝 뛰면, 로 하는 것 좀 보소.

로는 ‘안 그래도 물맛이 영 별로야, 엄마.’라는 듯한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들고 있던 물을 사정없이 내팽개쳐 버린다. 그리고 다시는 흙탕물 같은 거 입에도 안 대겠다는 뜻으로 손사래를 친다. ‘엄마, 이건 한 번의 실수야. 나 이젠 얌전히 물장구만 칠게.’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 표정을 하고서. 애가 저렇게까지 반성을 하고 사태를 파악하고 있는데 내가 더 이상 뭐라고 하겠나. 나는 로의 똑똑한 얼굴을 믿고 못다 넌 빨래를 마저 너는데....! 그 사이 로는 ‘흙탕물 라떼’를 한 잔 더 떠서 홀짝 대며 마시다 걸리고.... 결국 로는 현행범으로 내게 붙잡히고 만다.

   
▲ 기어서 텃밭을 오가는 로. 누구는 이를 보고 심마니 포스가 난다고 했다. ⓒ김혜율

우리 집 뒤편에는 산의 일부로 비스듬한 경사면에 있는 흙을 퍼내 평평하게 만든 텃밭이 있다. 텃밭으로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많이 져 어른인 나도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올라가야 하는 곳인데 그곳을 어린 로가, 이제 돌이 지난 로가 포복자세로 암벽 등반하듯 기어 올라오는 것을 상상해 보자. 내가 앵두 좀 따올 테니 아래에서 기다리라고 분명히 말했는데도 로는 말을 안 듣고 흙바닥에 배를 깔고 배밀이를 하며 산길을 올라온다. 누가 보면 진짜사나이 유격훈련 중인가 보다 하겠다. 아니면 산삼 캐러 가는 아기 심마니이거나. 몸 앞면 전체에(얼굴 포함) 흙칠갑을 하고 흙인간이 된 로를 씻기러 욕실로 급히 이송되는 와중에서도 깔깔 웃으며 버둥 대고 귀여움을 떠는 로의 정체는 무엇일까.

밭에서 일하던 남편이 지렁이를 발견하면 잠깐 갖고 놀라고 주는데 이때도 로는 거침없이 지렁이를 만진다. 그리고 맛을 본다! 지렁이를 먹는다고 로가! 심약한 나는 차마 바라볼 수 없어 먼 산을 보고 있었지만 그 광경을 본 남편 이하 메리, 욜라가 증언했다. 메리와 욜라조차 먹지 않는 지렁이를 로가 먹다니! 아무리 자연친화적으로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하지만 넘어서는 안 될 벽이란 건 분명 존재하는 것! 몸이 조금 뜯긴 불쌍한 지렁이를 얼른 땅으로 돌려 보내고 우리 부부는 다시는 함부로 지렁이를 로 손에 들려 주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그 순간에도 귀엽게 웃으며 당당하게 구는 이 작은 악동을 우리 가족 모두는 아끼고 사랑한다. 어쩌면 제 형 욜라와 쌍벽을 이룰 만한 큰 악동이 될 재목이다. 그런 로가 나중에 마치 자기 혼자 큰 것처럼 굴 때가 분명히 있겠지.

   
▲ 지렁이랑 노는 아이들. 로가 지렁이 먹기 전. ⓒ김혜율

‘그래도 로~ 이것만은 알아 주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그리고 아빠는, 형과 누나는 로가 ‘어떤 아이’였기 때문에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저 로’였기 때문에 사랑했어. 말하자면 너와 나는 다른 존재여서 그래서 종종 이해할 수 없고 때로는 서로에게 화가 날 때도 있지만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너는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거야. 사랑하는 내 아가, 넌 삶을 네 방식 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고 그것을 무엇보다 엄마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어떤 순간에도 굴하지 말고 이 빛나는 생을 살아가기 위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렴. 아무리 어려운 순간이라도 답은 자신의 내면에 있다는 걸 기억하면서.’

   
▲ 밭에서 노는 세 아이들. ⓒ김혜율
날이 갈수록 짙어지는 신록의 녹음은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빛깔을 잃어버린 대신 그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웅숭한 그늘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코를 간지럽히는 꽃향기가 물러갔지만 나뭇잎이 야성적으로 뿜어내는 숨이 초여름 향기를 머금은 바람이 되었다. 본격적인 여름을 맞기 전 이 계절의 길목은 짧아서 더욱 아름답다.

오늘도 신발과 옷에 흙을 묻힌 채 흙탕물 라떼를 마시고 지렁이 간식을 먹으며 무럭무럭 크고 있는 로의 어깨 위에 소나기 지나간 뒤 걸리는 무지개가 떠 있다.

‘로, 너는 그토록 가고 싶고, 만지고 싶고, 꼭 한번 만나고 싶은 꿈과 희망의 무지개 그 자체다. 나는 오늘도 너를 찬미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나저나 유치원 공교육을 접한 꼬마 욜라는 요새 문명인이 좀 되었을까?
'꼬마예찬' 제2부 욜라 편에서 다 같이 만나보아요~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4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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