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법에 대해 문외한에 가까운데도 교회법마저 모르고 살았다가는 언제 조용히 교회 밖으로 밀려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제 안에 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어떤 규정은 문화적으로 혹은 보편 정서를 통해 조정될 수 있고, 어떤 조항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건지 자신 있게 알고 싶지만 늘 그런 건 교회법 학자들에게 넘기고 그냥 소시민적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제품을 준비하는 신학교 학부생 기간 동안, 제가 교회법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교회법을 카논(canon) 이라고 부른다는 것과 이 법이 신자들의 삶을 구속하려 하기보다는 신앙인들이 하느님의 자비를 경험하여 건강한 영혼과 균형 있는 삶을 유지하도록 돕기 위해 발현되어야 한다는 정도의 내용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잘 아는 카논은 파헬벨이라는 음악가의 '카논 변주곡'일 겁니다. 음악에서 이야기하는 카논도 기본 성부를 두고 그 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음악적 장식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기본 성부로 밑받침이 되는 것을 사회의 기초가 되는 규범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이런 규범, 규율, 규칙을 뜻하는 말이 그리스어의 카논(kanon)입니다.

교회법을 카논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교회 공동체가 다양하고 풍성한 삶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기초로 놓여진 것이기에 그럴 것입니다. 잘 살펴보면 지켜야 할 규정에 보통, 예외 규정도 있어서 '무조건 해야 한다' '안 된다' 식의 규정은 없습니다. 정말 각각의 경우를 따져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마음이 어떠할지를 헤아려 보게 됩니다. 자애 넘치고 따뜻한 하느님의 마음과 품을 그려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닮은 교회는 따스한 곳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공동체죠. 오늘 속풀이 질문에 대한 답과 관련해 본다면, 교회법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감을 통해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으로 생겨났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법도 법전부터 생겨난 예는 없습니다. 모두 관습적인 것이었고, 당연히 그렇게 지켜 왔던 것이고 그렇게 용인되던 것이 법전의 형태로 정리된 것입니다.

▲ 하느님을 닮은 교회는 따스한 곳입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교회법도 마찬가지로 교회 공동체 안에서 관습적으로 요청된 삶의 규범을 정리해 낸 것입니다. 교회법을 카논이라고 쓰게 된 것은 바오로 사도가 새로운 믿음의 규범이란 의미로 카논이라는 말을 사용(갈라 6,16)한 데서 기인합니다.(가톨릭 대사전 참조) 초기에는 카논이라는 용어와 유대인들의 율법을 의미하는 노모이(nomoi)가 혼용되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4세기 니케아 공의회부터 새로운 교회의 규율이란 의미로 카논이 공식 명칭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초기의 교회법은 사도들의 권위를 빌어 교회 공동체에서 실생활에 필요한 규범들로 구성되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사도들의 가르침(디다케, didache)입니다. 이 문헌 안에서 공동체에 필요한 규범들, 특히 전례에 관한 규정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규범들이 교회가 범위를 확장하고 제도화되면서 4세기부터는 지역별 법령집들이 나오게 되었고, 9세기에는 가짜 법령집마저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 교황 성 그레고리오 7세(재임 1073-1085)가 기존의 법령집들을 정비한 개혁 법령집을 만들었습니다. 교회법이 법학의 범주에서 연구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사건입니다.

그후 그레고리오 13세 교황은 1582년 "교회법 대전집"을 공포합니다. 이 전집은 12세기부터 16세기까지 주요 교회법령집들을 모아 만든 책이지, 오늘날의 교회법전이 갖는 보편적 권위는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교회법의 원천이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현대 세계의 보편적 교회법은 "교회법전"을 통해 전세계 가톨릭 교회의 법률적 준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1917년 베네딕토 15세가 전 세계가 공포하여, 1918년 5월 19일부터 발효되도록 체계적이고 통일된 법전이 완성되었는데, 그것이 "교회법전"입니다. 기존의 중복 상치되는 조항들이나 너무 개별적인 것들을 정리하고 법전의 체계도 정비하여 발표한 것입니다.

▲ 공정의 저울.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그러던 것을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전후로 교회법의 개혁 과정을 거쳐 198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새 교회법전"을 공포하였습니다.

"새 교회법전"의 필요성을, "교회법전"에 나타난 교황령 '거룩한 규율법'은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사실 교회법전은 교회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교회는 사회적이고 가시적 조직체이기도 하기 때문에 규범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의 교계 제도와 조직의 구조가 가시적이기 위함이고, 하느님께서 교회에 맡기신 직무, 특히 거룩한 권한과 성사가 올바르게 집행되기 위함이며,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상호 관계와 각 개인의 권리가 안전하게 보장되고 제정되어 사랑에 입각한 정의에 따라서 조화될 수 있기 위함이고, 끝으로 더 거룩하게 그리스도교인 생활을 살기 위해 취해진 공동체적 노력이 이 교회 법규에 의하여 유지되고 강화되며 증진되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서, 첫째, 교회의 조직은 명확히 그려져야 하는데, "교회법전"에서 조직구성의 역할을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성사를 집행할 때 필요한 규범과 전례적 지침을 "교회법전"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셋째, 모든 신자들 사이 혹은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규범도 담고 있습니다. 넷째, 교회공동체의 다양한 노력이 더 활성화되고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지침이기도 합니다.

교회법은 어떤 특정 인물을 통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거룩한 법을 인간의 실생활에 적용해 보려는 노력으로 나타난 것이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자들의 삶을 어렵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을 더 잘 체험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려는 의도에서 생겨난 것이기도 합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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