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세계대회 한국 개최

“모든 아이디어는 처음에 어리석다는 이야기를, 다음으로 미쳤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리고 나서 불가피한 아이디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는 거기까지 오는 데 30년이 걸렸다.”(가이 스탠딩 런던대 교수)

어리석은 아이디어에서 전 세계적 주요 의제가 된 ‘기본소득’의 가치를 확인하고,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대회’가 “사회적, 생태적 전환과 기본소득”을 주제로 7월 7일부터 9일까지 서강대학교에서 열리고 있다. 2년마다 열리는 BIEN은 이번이 16번째며, 아시아에서는 처음 열렸다.

이번 대회에는 기본소득 운동을 이끌고 있는 90여 명의 각국 전문가와 활동가와 국내 참가자 등 250명이 참여했다.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는 1986년 기본소득 유럽네트워크로 출발해 2004년 전 세계적 네트워크로 확대된 기본소득 연구와 운동을 위한 교류망이다. 현재 23개국과 2개 지역 네트워크가 가입했으며, 기본소득 한국네트워크는 2010년 17번째로 가입했다.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엄청난 사회적 양극화와 갈등, 절망의 문화, 지속되는 경제 위기와 저성장, 기존 복지국가의 한계 등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대안 모색과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다. 이 가운데, 작은 목소리에 불과했던 ‘기본소득’은 최근 스위스 기본소득 국민투표를 계기로 전 세계적 주목을 끌었으며, 한국에서도 현실 가능한 정책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이번 대회에 앞서 주최 측인 기본소득 한국네트워크는,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 위치나 목표에 다른 견해가 있지만, “무조건적이고 보편적인 기본소득은 새로운 사회를 그리는 대안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며, “활력있는 대안으로서 기본소득을 다듬어 정당하고 가능한 대안으로 만드는 것이 과제”라고 밝혔다.

이번 대회의 주요 이슈는 현재 세계에서 기본소득이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 사회 전반의 민주주의 확대를 위한 기본소득의 역할, 탈성장을 수반하는 생태적 사회로의 전환에서 기본소득의 역할, 노동사회 전환과 기본소득, 다양한 사회적 약자의 시민권 강화와 기본소득 그리고 최근 대두되는 인공지능의 발전과 기본소득 등이다.

▲ 모든 이를 위한 기본소득. (사진 제공 = 기본소득 한국네트워크)

대회 첫날인 7일에는 스위스 기본소득 국민투표에 대한 요약 발표를 비롯해, “왜 기본소득이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 더 타당한가?”(필립 판 파레이스 교수, 벨기에 루뱅대), “기본소득은 노르딕 복지국가에 적합한가”(얀 오토 안데르손 박사, 핀란드 오보아카데미대),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의 구성요소로서 기본소득”(추이 즈위안 교수, 중국 칭화대), “기본소득의 해방적 힘”(사라트 다빌라 박사, 기본소득 인도네트워크) 등의 주제발표가 이어졌으며, 소주제별 세션이 진행됐다.

먼저 스위스 기본소득 국민투표에 대해 발표한 체 바그너(스위스 기본소득이니셔티브) 활동가는 스위스에서 국민투표는 1년에 4-5번씩 하는 평범한 일이며, “국민투표 이전 기본소득 찬성률이 9-10퍼센트인 것에 비해 국민투표에서 23퍼센트가 찬성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반대한 이들의 63퍼센트도 앞으로 토론이 계속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기본소득 논의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전했다.

필립 판 파레이스 교수는 “오늘날 왜 대중은 기본소득에 더 친화적인가”라는 질문에, “더 많은 이들이 계속적인 경제 성장에 회의적이 되었으며, 우익 포퓰리즘에 맞선 대안적 유토피아를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그는, 선진국의 기본소득 실험이 제한된 시간을 두고 진행되는 한계가 있어, 실험 결과와 평생 기본소득을 받을 때 일어나는 결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조심스럽게 지적했다.

2011-2013년 인도의 기본소득 실험 결과를 발표한 사라트 다발라 박사는, 무조건적이고 개별적인 기본소득은 소득 불안정과 부채의 악순환으로 고통받는 농촌 가정에서 농민들의 영양과 의료, 부채 상태가 개선됐으며, 여성과 아이들의 발언권이 강해지고, 마을 내 사회적 연대활동이 강화되었다면서, “기본소득의 해방적 가치는 금전적 가치보다 훨씬 크다”고 밝혔다.

그리스도교, 불교의 전통과 기본소득

7일 오후 개별 세션에서는 “종교와 기본소득”을 다루는 자리도 있었다.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영성에서 기본소득을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는가 그리고 기본소득 실현을 위한 종교의 역할을 확인했다. 

그리스도교 영성과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이영재 목사(성서와설교연구원), 오동균 신부(성공회 대전주교좌교회)가 나섰으며, 불교의 가르침과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이도흠 교수(한양대학교)가 발표했다.

이들은 그리스도교와 불교 등 종교 전통이 어떻게 기본소득을 가르치며, 그 정당성을 지지하는가 그리고 오늘날 기본소득 실현을 위한 종교의 역할을 확인했다.

이영재 목사는 그리스도교적 영성에서 기본소득은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며, 하느님 창조세계에 관련된 자원을 공적으로 쓴다는 것에 기반한다”고 말했다. 그는, 레위기와 민수기는 광야공동체의 생활을 통해서 기본소득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면서, 광야공동체에서 레위인에게 바친 십일조는 레위인의 몫이 아니라 공동체 운영과 유지를 위한 공동의 몫이었다고 설명했다.

▲ 종교와 기본소득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한 (왼쪽부터) 이영재 목사, 이도흠 교수, 오동균 신부. ⓒ정현진 기자

오동균 신부는 “하느님나라에 대한 보다 현실적 비전이 필요하다”면서, 구약성경에서 우리에게 제시하는 공동체, 기본소득의 비전도 당시 가난한 이들의 절박한 요구에서 비롯된 질서지만, 예수는 다시 그 질서를 예수 시대의 사람들 입장에서 재구축하려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느님나라는 항상 그 시대에 따른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며, 성경에서 제시하는 가난한 이들, 민중을 위한 질서를 오늘날 새롭게 재해석하고 이를 통해 기본소득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성경이 보여 주는 기본소득의 비전을 창세기에서도 찾았다. 오 신부는, 에덴동산에서 태초의 인류는 하느님에게서 무상으로 받은 것으로 살아가고, 하느님이 만든 생명을 돌보는 노동을 했다고 설명하면서, “기본소득의 개념은 창조된 시점의 에덴동산에서 하느님이 창조한 생태, 환경을 보존하는 일과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오 신부는, “그리스도교 영성에서 기본소득은 모든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것에 기반해, 나의 필요를 최소화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선택적 가난”이라면서, “나의 몫과 필요를 최소화하는 실천과 그에 필요한 훈련을 하는 것이 바로 종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도흠 교수는 귀족불교로 변질되기 전 초기 불교는 사회적 고통과 사회의 모순, 부조리를 타파하는 종교였다고 말했다. 그는, 불교의 연기, 사성제 등의 교리와 평등, 무소유를 지향하는 불교는 출발부터 공동체와 공유를 지향해 왔다면서, “고통을 없애야 열반에 이를 수 있다는 핵심교리 ‘사성제’에서 말하는 고통은 바로 개인의 고통이 아닌 ‘사회적 빈곤’을 말하며, 타인의 빈곤을 멸해야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다고 가르친다”며 불교의 전통과 기본소득의 연관성을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불교 안에 기본소득과 유사한 제도의 흔적이 있었다면서, “마을의 노비, 품팔이농민 등 가난한 이들을 위해 지은 절이 많이 있다. 이는 신분사회 안에서 평등한 공동체를 이뤄 살게 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소개했다.

사회를 맡은 금민 상임이사(기본소득 한국네트워크)는, 독일, 남아프리카, 캐나다 등에서는 노동당과 같은 진보정당보다 가톨릭교회와 루터교, 성공회 등 종교가 기본소득을 지지하고 그 논의를 확산하는 데 더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기본소득 실현을 위한 종교의 역할은 이미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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