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데기 밥상 통신 - 13]

아기를 뱃속에 열 달 품고 있는 일도 힘이 들고 산통을 겪으며 낳는 일도 힘이 들지만, 낳아서 키우는 일에 비할 바가 아닌 듯하다. 앞서 애 둘을 키워 본 경험이 있으니 내심 조금 더 수월하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웬걸, 다시 쩔쩔매고 있다. 그게 다 작고 연약한 새 생명을 다루는 내 손길이 여전히 무디고 억세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 다랑이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나의 둔감함과 아집으로 애를 잡을 뻔 했다. 지난 4월 11일, 3.5킬로로 건강하게 세상에 나온 다나. 내 젖꼭지가 아기가 빨기에 좋지 않아 젖 빨 때마다 아기가 무척 힘들어 하며 짜증을 냈지만 그러다가 익숙해지겠거니 했다. 두 아이를 젖만으로 키웠는데 별일 있겠냐며 '다나가 젖 잘 빨아요? 정 안 되겠으면 분유라도 먹여야 하는 것 아니에요?'라는 신랑의 말에 오히려 자존심 상하여 발끈했다.

"지금 뭔 소리 하는 거예요?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응원은 못 해줄 망정, 잘 알지도 못하면서 힘 빠지게 하지 말아요."

이제와 돌아보면 아기의 대소변 횟수가 적고 황달기가 쉬 사라지지 않는 등 이상 징후들을 미심쩍게 바라보았어야 하는 건데 '괜찮겠지. 설마 별일 있으려고.... 이러다가 나아지겠지' 했다. 그뿐인가. 태어났을 때 넓적하던 아기 얼굴이 점점 갸름해지고, 젖 빨다 잠들어버리는 일이 잦았으나 아기가 점점 예뻐지고 순해지는 줄로만 알았지 뭔가.(무식하고 미련한지고!) 결국 다나는 설사를 몇 번 하더니 심한 탈수 증세를 보여서 응급차 불러 대학병원에 가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서 보니 다나 몸무게가 태어날 때에 비해 많이 줄어 있었고 황달 수치도 높았다.(모유량이 많지 않아 황달이 심해지고 황달 때문에 설사하여 탈수가 진행된 상황!) 다행히 다른 큰 이상이 없었기에 3박4일 동안 수액을 맞고 광선 치료를 받은 뒤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퇴원한 뒤 며칠 동안 다나는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첫 날은 눈도 잘 뜨지 않았고, 둘째 날은 눈만 뜨고 소리를 내지 않았으며, 셋째 날이 되어서야 겨우 가느다란 울음소리를 들려 주었다. 그러니 얼마나 애가 탔겠나. 다나가 우렁차게 우는 소리만 들려도 소원이 없겠다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그뿐인가. 그동안 내가 알게 모르게 지은 잘못에 대한 뉘우침과 앞으로는 그 어떤 생명도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는 약속 기도도 드렸다.(한 생명 한 생명이 이렇게 마음 졸이며 눈을 떼지 못하는 큰 사랑 속에서 자라난 것을 생각하면 어찌 함부로 대하리오!) 그렇게 나는 납작 엎드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늘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을 겪으며 나의 어리석음과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은 것이다.

나뿐 아니라 우리 식구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 산후 조리를 도와주러 오신 친정엄마는 물론이고 기꺼이 딸바보 될 각오를 하고 있는 신랑과 여동생 보내 달라고 노래 부르듯 기도했던 다울이, 다나에게 엄마 품을 빼앗겨 시샘하면서도 다나가 예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다랑이까지.... 또한 다나가 아팠던 것을 알고 걱정해 준 친지들과 친구들도 다나가 어서 기운을 차리길 바라며 따듯한 마음을 보내 주었다.

그 덕분에 다나는 차차 기운을 차렸다. 표정도 편안해졌으며 안아 달라고 칭얼거리며 울기도 하고 젖 빠는 힘도 세졌다.(병원에서 퇴원한 뒤로 하루 세 번씩 분유도 먹이는데 처음엔 적은 양도 다 먹지 못하더니 지금은 주는대로 다 먹는다) 게다가 똥오줌도 잘 싸고(태어날 때 몸무게 회복하려면 아직 멀었지만), 살도 조금씩 오르고 있다. 그러니 얼마나 고마운가. 더 바랄 게 무언가. 젖 먹이느라 잠을 잘 못 자도 애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고 애만 쳐다보고 있어도 그저 고마울 뿐!

하지만 여전히 한켠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는 차에 마침 삼칠일이 되어 친정엄마가 흘러가듯 삼칠일떡 얘길 내뱉으셨다.

"옛날에는 삼칠일에 떡도 하고 그랬어야. 그땐 삼칠일 되기 전에 애가 죽고 하는 일도 많았으니까...."

▲ 모두에게 감사하며, 간절히 기도하며, 삼칠일떡. ⓒ정청라

그 말씀에 귀가 번쩍 뜨여 나도 서둘러 떡을 쪘다. 마침 냉동실에 미리 준비해 둔 쌀가루와 팥고물이 있어서 쌀가루를 체에 내려 팥고물, 쌀가루, 팥고물 순으로 켜켜이 앉혔다. 다나가 쑥처럼 강인하게 쑥쑥 크길 바라는 마음에서 쌀가루에 쑥도 섞어 넣었다. 이름하여 '다 나아요~ 쑥쑥 자라요~ 쑥설기시루떡!'이랄까?

그렇게 해서 떡을 쪄 놓고 상 한가운데 올려 놓은 채 나지막하게 읊조리며 기도를 드렸다.

"하느님, 삼신 할머니, 조상님....
다나를 제 곁에 살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나를 통해 생명의 귀함을 깊이 깨닫게 하시니 더욱 고맙습니다.
어린 생명은 보다 세심한 관심과 정성으로 보살펴야 한다는 걸, 지금 여기 있는 모든 생명은 헤아릴 수 없는 큰 사랑과 돌봄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요.
제가 귀한 생명을 지키고 돌보는 일에 모자람이 없는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세요.
콸콸 흐르는 젖줄이 되어, 막힘 없는 사랑이 되어, 다른 생명을 먹여 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내가 지금 이 순간의 간절함을 잊지 않고 기도한 만큼 살 수 있기를, 눈부시게 꼬물거리는 다나를 보며 마음자리를 깨끗이 닦는다.

 

덤.
삼칠일 바로 다음 날, 공부 모임을 같이 하던 친구들에게서 선물 꾸러미가 도착했다. 꾸러미에 든 것은 손수 만든 빵과 잼, 콩자반, 감자볶음, 비스킷과 쿠키, 카스테라, 돼지감자차, 두부, 머위대 손질한 거, 국수, 아기 이불 등등의 정성 가득 맛깔스러운 선물들이었다! 곡우에 내리는 단비처럼 새싹과 대지를 흠뻑 적시는 큰 사랑....

선물 꾸러미를 펼쳐 본 다울이는 '너무 고맙다. 우린 잘 해준 것도 없는데....'라고 말했다. 나 역시도 내가 이렇게 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나 싶어 황송했지만, 앞으로 더 넉넉한 사랑으로 콸콸 흐르라는 응원의 메시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정말 고맙다. 우여곡절은 있어도 삶은 아름답다!

▲ 장흥 사는 친구들이 보내준 정성 가득 맛깔스러운 선물 꾸러미 ⓒ정청라

 
정청라

산골 아낙이며 전남지역 녹색당원이다.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이 늘 얼굴이며 옷에 검댕을 묻히고 사는 산골 아줌마. 따로 장 볼 필요 없이 신 신고 밖에 나가면 먹을 게 지천인 낙원에서, 타고난 게으름과 씨름하며 산다.(게으른 자 먹지도 말라 했으니!) 군말 없이 내가 차려 주는 밥상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서, 나날이 부엌데기 근육에 살이 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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