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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밥상의 주인공은 밥[부엌데기 밥상 통신 - 10]

외진 곳에 처박혀 살아도 손님은 끓이질 않는다. 더구나 요즘에는 마을에 팔려고 나온 빈 집과 땅이 있어 여기저기 소개하고 있는 터라, 그 일 때문에라도 손님이 잦다. 이런 우리 집 사정을 지켜보는 마을 할머니들은 무척이나 걱정들을 하신다. 뭐 먹을 것이 있어서 손님 대접을 하냐는 거다. 장을 보러 나가는 일도 거의 없는데 손님이 오면 어떤 밥상을 차려 내는지 나보다 더 눈앞이 캄캄하신 모양이다.

물론 나도 손님이 온다고 하면 어떤 반찬을 준비해야 하나 걱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으니 그건 바로 밥! 우리 집에서 밥상을 나눈 손님들 대부분이 '밥만 먹어도 맛있다'고들 하니, 밥 한 그릇 정성 들여 짓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여긴다. 밥상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밥이고 밥이어야만 한다는 게 부엌데기로서 내 철칙이라면 철칙이랄까?

   
▲ 어떤 눈으로 보면 소박하다 못해 초라해 보이는 밥상이지만, 그래서 더욱 밥맛이 빛난다. ⓒ정청라

여기서 잠깐 내가 밥 짓는 과정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현미와 현미 찹쌀, 흑미, 수수를 3: 0.5: 0.5: 0.3 정도 비율로 섞어 하룻밤 물에 푹 불린다. 그런 다음 깨끗이 씻어서 조리질을 한다.

요즘 세상에도 조리질을 하냐고? 그러게나 말이다. 정미기를 현미 전용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돌을 골라 내는 석발기를 떼어 낸 터라, 돌밥을 먹지 않으려면 조리로 정성껏 일어야 한다. (씻지 않고 바로 먹는 쌀도 있는 세상에 조리질까지 해야 한다니 혀를 차는 분도 있을 줄로 안다. 나 역시 처음 조리질을 배울 때 이것이 인간으로서 해야 할 짓인지,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지 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어설픈 조리질 솜씨에 허구헌 날 돌밥을 지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밥알을 씹어야 했던 일도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새 몸에 배어, 조리질할 때 손목의 유연한 움직임을 즐기는 경지에까지 올랐으니, 내가 생각해도 놀라운 발전을 이룬 셈이다.)

그런 다음, 쌀을 소쿠리에 담아 젖은 면보를 덮은 다음, 한나절이나 그 이상 그대로 둔다. 이른바 발아 현미가 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하루 이틀 물에 충분히 불린 옥수수와 밤말랭이, 거기에다 은행, 각종 콩(밤콩, 푸르데콩, 피마자콩, 선비잽이콩, 서리태 등)을 넣고 압력솥에 밥을 짓는다. (농한기에는 가스불 대신 나무로 불을 때서 말이다.)

요즘 같이 바쁜 세상에 이게 무슨 신선 놀음이냐고? 그렇다. 나는 밥 짓기를 신선놀음이라 생각한다. (신선놀음을 하는 내가 곧 신선 팔자? 우와!) 그리고 우리 집 밥은 소농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 또는 사치라고 여긴다. (가진 재산이 제 아무리 많다한들 손수 여러 가지 잡곡 농사를 짓지 않고는 누가 이런 '명품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명품 가방 같은 것으로 사치를 부리는 아줌마 따위 전혀 부럽지 않다.)

그것이 내가 그 어떤 손님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상을 차려 내는 이유다. 항간에는 '현미는 독이다'란 얘기가 떠돌기도 하고, 아이들이 잡곡밥을 먹으면 안 되는 이유를 늘어놓는 사람도 있지만 그 얘기들이 크게 내 마음을 사로잡지는 않는다. 왜? 밥은 곧 몸으로 말을 하니까. 내가 한 밥을 먹고 나서 몸에 불편함이 머무르지 않으니 내가 지은 밥은 뭔가 모자라거나 나에게 또는 아이들이나 누군가에게 해가 될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또, 먹고 나서 똥을 누면 개운하니 들어갈 때부터 나갈 때까지 군더더기를 남기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오히려 밖에서 밥을 먹으면 (대개는 백미밥)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느낌이 들고, 뱃속이 답답한 것을 느낀다. 백미여서 그럴 수도 있고, 다른 반찬거리의 영향일 수도 있지만 어찌 되었건 밥만으로 완전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사람들이 만족감을 줄 만한 다른 무엇에 사로잡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반찬 맛에 기대어 밥을 넘기는 거지, 순수한 밥맛을 즐기게 되지는 않는다는 거다.

여기서 또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밥맛이라는 게 도대체 무어냐고.... 요즘에는 '밥맛이야'라고 하면 뭔가 고약한 맛을 떠올리기까지 하지만, 사실 밥맛은 정말 참되다. 담담한 듯하면서도 달짝지근하고, 깊은 고소함을 남기니까. 씹으면 씹을수록 참맛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매력도 있다.

그러니 밥 한 그릇을 어찌 함부로 보겠는가. 밥을 어찌 얼렁뚱땅 짓겠는가. 밥 한 그릇에 내 삶의 태도가 보이고, 내 삶의 질이 결정되기도 하는 것인지 모르는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도 밥 짓는 일에 가장 정성을 들인다. 그리고 밥상 앞에 앉아 '밥아 정말 고마워'라고 노래한다.

정청라
산골 아낙이며 전남지역 녹색당원이다.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이 늘 얼굴이며 옷에 검댕을 묻히고 사는 산골 아줌마. 따로 장 볼 필요 없이 신 신고 밖에 나가면 먹을 게 지천인 낙원에서, 타고난 게으름과 씨름하며 산다.(게으른 자 먹지도 말라 했으니!) 군말 없이 내가 차려주는 밥상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서, 나날이 부엌데기 근육에 살이 붙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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