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데기 밥상 통신 - 11]

임신 막달이 되니 하루가 다르게 몸이 아주 무겁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숨 쉬기가 어려우니 아이들에게 책 읽어 주는 단순한 일도 힘에 부친다. 그렇다고 가만히 누워 있으면 편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바로 눕기가 어려우니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한 방향으로 누워야 되는데 그러자면 옆구리가 결려서 누워도 눕는 게 아닌 상황! 잠인들 편안하게 잘 수가 없다.

그러니 늘상 해 오던 집안일이라 하여도 그 무게감이 남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아궁이와 부엌을 오가며 밥상을 차려 내고, 빨래를 돌려서 널고, 아이들과 신랑이 어질러 놓은 것들을 치우러 쫓아다니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한숨을 푹푹 내쉬게 된다. 울컥, 짜증이 솟구치기도 한다. '이 집 남자들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야? 내 몸이 이렇게 무거운데 조금의 배려도 없잖아! 어이구, 내 팔자야....'하며 나도 모르게 팔자타령까지!

어느새 나는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가련한 여인이 된 듯한 슬픔에 젖어, 눈시울을 붉히며 벽을 바라보고 누워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엄마의 기분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이때다!' 하고 내게 달려든다. 내 몸을 놀이터 삼아 올라타기도 하고 양 옆으로 넘나들며 까불며 장난을 치는 것이다. "엄마 힘들어서 쉬는 거 안 보여? 그러지 말고 좋게 말할 때 아빠 놀이터에 가서 놀아라" 하면 아빠는 너무 까칠해서 싫단다.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신랑이 나 대신 아이들을 품어 주면 오죽 좋으련만, 임산부보다 더 까칠하게 굴 때가 많다. 혼자서 일하고, 혼자서 쉬고.... 뭐든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라 그런 걸까? 일하지 않고 쉬는 동안에도 아이들이 안방에서 놀면 자기는 놀이방에서 쉬고, 아이들이 놀이방에서 놀면 안방에서 쉰다. 게다가 요즘은 잠깐 한가한 틈을 타 짚풀로 바구니 만드는 재미에 빠져 있는지라, 아이들이 가까이 오면 "딴 데 가서 놀아"라며 멀찍이 쫓느라 바쁘다. 결국 아이들이 내 쪽으로 돌아오게 만들고야 마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지 모른다. 워낙에 그렇게 생겨 먹은 사람이니까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해도, 이미 지나간 서운한 감정까지 물밀듯이 밀려들어 나를 괴롭힌다. 그러니까 신혼 초에 내가 실수로 어린 억새풀(신랑이 부엌 창가 쪽에 일부러 심어 놓은 억새)을 밟았을 때 누가 청라 씨 허리를 밟아 부러뜨렸다고 생각해 보라며 노발대발 화를 냈던 사건 하며, 들기름 한 병 살 때도 그걸 꼭 먹어야 하느냐며 눈치를 주었던 거, 밭에서 캔 애기 당근 하나까지 이파리 떼지 말고 먹으라는 둥 잔소리를 늘어 놓는 거.... 케케묵은 옛날 일부터 최근 일까지 낱낱이 떠올라 '나는 불행하다. 이기적이고 괴팍한 인간하고 사는 나는 불행하다'는 망념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이다. 애가 셋이 되면 그땐 또 얼마나 힘이 들까, 닥치지 않은 미래의 괴로움까지 앞당겨 서러워하면서 말이다.

▲ 오늘 우리집 밥상에 오른 봄나물 샐러드. 여러 가지 맛이 다같이 어우러지면 쓴맛도 그리 괴롭지 않다. 오히려 쓴맛이야말로 입맛을 살려주는 보배! ⓒ정청라

그러다 갑자기,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정신이 퍼뜩 들었다. 가만히 누워서 어두운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가는 내가 나를 잡아먹겠다 싶어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밥때,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도 밥은 먹여야 하지 않겠나.

무엇으로 반찬거리를 하나 탐색 차원에서 일단 마당과 텃밭을 슬슬 거닐었다. 햇볕은 따스했고, 엊그제 내린 비로 아직까지 땅은 폭신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안 보이던 부추 싹이 삐죽삐죽 이파리를 내밀었고, 돌나물도 통통해졌다. 그뿐인가. 지난해 길에서 딴 달래 씨앗을 텃밭 구석구석에 뿌려 두었더니 달래밭이 제법 여러 군데 번졌는가 하면, 봄 되어 새로 올라온 배추싹은 어느새 꽃대 올릴 준비까지 하고 있지 않은가. 자세히 살펴보면 민들레, 머위, 곰방부리, 씀바귀, 쑥, 소루쟁이까지.... 어제와는 또 다른 들판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안 보여서 있는 줄도 몰랐던 봄나물들이 '나 여기 있어요'라고 정답게 말을 걸면서....

땅에 납작 엎드려 입맛 당기는 나물 몇 가지를 바구니에 쓱쓱 담고 있자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살살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 나를 사로잡았던 심각한 감정들이 사실은 나 혼자 원맨쇼를 하고 있었던 듯하여 헛웃음까지 나왔다. 그래, 나는 괴로워하기로 작정한 사람마냥 이상한 쇼를 하고 있었던 게다. 어제와 크게 다를 바 없이 가만히 있는 사람을 세상에 둘도 없는 괴팍한 인간으로 만들어 가면서 온갖 원망과 비난을 퍼부으면서 말이다.

들판에 돋아나는 나물 하나도 한없이 다채로운데, 사람에게는 또 얼마나 다양한 얼굴이 있나. 쓴 풀, 독특한 향내 나는 풀, 질긴 풀, 몰캉한 풀.... 그런데도 나는 내가 보고 싶은 단 한 가지 얼굴만을 붙잡고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고 있었으니 그 얼마나 어리석은지....

아무튼 날마다 새로워지는 봄 들판 앞에서 내 마음 속에는 환한 봄빛이 번져 왔다. 이제 봄나물로 밥상까지 환해지게 만들어 볼까? 달래, 민들레 이파리, 씀바귀, 돌나물, 배춧잎, 부추.... 눈에 띄는 대로 바구니에 담아 들고 와 깨끗이 씻었다. 그런 다음 먹기 좋은 크기로 북북 뜯어 작은 사과 한 알 썬 것과 뒤섞어 그릇에 담았다. 소스는 특별히 고민할 필요 없이 짠 거(된장이나 국간장), 단 거(매실 효소나 오미자 효소), 신 거(감식초 또는 막걸리 식초)를 적절히 어울리게 섞어 주면 되는데, 오늘은 왠지 깔끔하고 산뜻한 느낌으로 가고 싶어서 국간장과, 오미자 효소, 초콩(집에서 만든 막걸리 식초에 담가 놓은 쥐눈이콩)과 초콩 국물로 만들었다. 거기에 들기름 몇 방울 넣고 깨소금까지 비벼 넣으니 산뜻함에 고소함까지! 아, 맛있다.

달큼새큼한 소스 맛에 씀바귀의 지독한 쓴맛까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더구나 아삭아삭 달콤한 사과와 함께 먹으면 쓴맛이 있어 오히려 입맛을 돋운다. 사과를 집중적으로 골라 먹는 아이들도 사과에 달라붙은 씀바귀잎이나 민들레를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하여 푸짐하던 샐러드 한 접시가 금세 바닥을 보이고, 내 마음에도 어느덧 봄볕이 쨍쨍해졌다. 혹시라도 다시 마음 어두워질 땐 가만히 눕지 말고 들판으로 나가야지.

봄나물 샐러드 한 접시가 다시 평화를 가져왔다.

정청라
산골 아낙이며 전남지역 녹색당원이다.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이 늘 얼굴이며 옷에 검댕을 묻히고 사는 산골 아줌마. 따로 장 볼 필요 없이 신 신고 밖에 나가면 먹을 게 지천인 낙원에서, 타고난 게으름과 씨름하며 산다.(게으른 자 먹지도 말라 했으니!) 군말 없이 내가 차려 주는 밥상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서, 나날이 부엌데기 근육에 살이 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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