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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시피는 없다, 나만의 집빵[부엌데기 밥상 통신 - 12]

시골에 살면서 내 손으로 이것저것 만들어 먹으면서도 크게 아쉬움을 느끼지 못했지만 빵만은 예외였다. 가끔씩 빵이 정말 먹고 싶었고, 어쩌다 읍내나 도시에 나가면 빵집 앞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내가 이렇게 빵을 좋아했었나? 속 깊이 들여다보면 내가 스스로 만들 수 없기에 더욱, 그 맛에 목말라 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래, 어떻게 해서든 내가 직접 만들어 보자!' 결국 나는 빵 만들기 관련 자료를 대거 수집하여 각종 실험에 도입하기에 이른다. 큰맘 먹고 재료 계량용 전자저울도 사고, 가스레인지용 '직화구이 오븐'도 샀다. 그리고는 인스턴트 이스트나 베이킹파우더를 이용, 각종 레시피를 다 흉내 내어 가면서 숱한 빵과 케이크, 과자를 구워 보았다.

   
▲ 김밥과 완성된 빵! ⓒ정청라

하지만 빵은 빵이 아니라 떡 비스무리하게 되기 일쑤였고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과자나 케이크는 빵에 비해 쉽지만 소화에 부담을 주는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지라 자주 만들어 먹을 음식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빵 한번 구우려면 빵 책을 펴 들고 지시대로 재료를 계량하고, 레시피가 요구하는 재료를 다 갖추어 놓아야 하는데 거기서 오는 부담감도 만만치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건 주먹구구식 내 요리 스타일과는 전혀 맞지 않는 방식이었다. '만약 빵 만들기가 이렇게 번거롭고 까다로운 방식이라면 인류는 빵을 주식으로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빵 만들기 방식은 뭔가 왜곡되어 있는 게 분명하다.' 그것이 내 결론이었다.

결국 나는 레시피 위주의 빵 책을 다 밀어 놓고, 좀 더 근본적인 빵 만들기 방식을 고민한 책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스트 없이도 밀과 약간의 소금만 있으면 누구나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빵, 원형에 가까운 빵을 만들어 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더구나 재작년부터는 밀농사 규모가 이전보다 커져 집에서 먹을 밀가루가 넉넉했으므로, 그걸 기회 삼아 나만의 빵을 찾아가는 실험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꿈은 이루어졌다. 그 어느 책에도 없는 나만의 레시피로 원하는 빵을 구워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방법은? 일단 숨 쉬는 옹기그릇에 밀가루와 물을 적당량 섞어 두고 빵 벌레(공기 중의 효모)가 모여들기를 기다린다. 하루에 한두 번 밀가루 밥을 보충해 줘 가면서 기다리면 이삼 일쯤 지나 밀가루죽에서 시큼한 냄새가 풍기며 거품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드디어 빵 벌레들 소집 완료! 나는 숟가락으로 휘저을 때마다 거품을 뽕뽕 터트리는 발효종의 완성을 확인한 뒤,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얘들아, 빵 벌레들이 우릴 도와주러 왔어. 벌레들을 잘 키우면 이제부터는 얼마든지 빵을 구워 먹을 수 있겠다. 너희들도 한 번씩 저어 주며 '빵 벌레야 사랑해'라고 말해 줄래? 그러면 벌레가 힘이 나서 방귀를 뿡뿡 뀔 거야. 그래야 빵이 잘 부푼단다."

   
▲ '우리 집빵이 제일 맛나요.' 다울이와 다랑이. ⓒ정청라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시키는 대로 잘도 한다. 나 못지않게 빵을 좋아하는 녀석들인지라, 목소리에 간절함이 뚝뚝 묻어난다.

"빵 벌레야, 사랑해. 빵 맛있게 만들어 줘."
"벌레야, 사랑해."

그렇게 간단한 의식을 마치면 밀가루에 발효종을 넣고, 소금 조금, 설탕이나 효소 약간, 물, 그밖에 넣고 싶은 재료(멧돌로 콩가루를 갈면 곱게 갈아지지 않은 콩부스러기가 나오기 마련인데 그때 나온 부스러기나 남은 밥, 해바라기 씨, 깨소금, 쑥이나 냉이 따위 푸성귀, 들깨가루, 뽕잎가루.... 무엇이든 좋다. 그때그때 상황과 형편에 따라 넣고 싶은 대로 넣으면 된다. 없으면 안 넣어도 된다.)를 넣고 가볍게 몇 번 치대어 반죽을 한다. 재료 계량 없이 적당히 감으로 하니 어떤 날을 반죽이 질어지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상관없다. 질면 진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그 나름의 개성 있는 빵이 되니까.

그리고는 반죽 그릇에 비닐을 씌워 하룻밤 재우면 그것으로 끝! 아침에 일어나 내키는 대로 모양을 만들어 한두 시간 2차 발효 후에 구우면 된다. 구울 때는 어떻게 하냐고? 캠핑용으로 나온 두꺼운 무쇠솥을 이용하는데, 얼마 전에 신랑이 실외용 화덕을 만들면서 빵 굽기가 훨씬 쉬워졌다. 로켓 스토브 방식이라 얼마 되지 않는 나무를 넣어도 화력이 엄청나기에 솥단지 예열에 들이던 수고가 대폭 줄어든 것이다. 그리하여 아직 빵철(밀 수확철부터 가을까지, 우리 집에서는 원래 빵도 제철음식이었다.)이 아님에도 이삼 일에 한 번 꼴로 빵을 굽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뽕잎가루빵, 콩빵, 단팥빵, 구운 호떡.... 그날그날 기분과 형편따라 내 마음대로 구워 내는 빵이다. 빵집에서 사 먹는 빵에 비해 거칠고, 퍽퍽하고, 시큼하고, 밋밋한 느낌일 수 있겠지만 내 입맛엔 내 빵이 최고다. 아이들과 신랑도 물론 좋아라 한다. 특히나 빵은 굽는 과정에서 노릇노릇 슈~웅 부풀어 마술을 체험하는 듯한 기분에 젖게 하니 그 설렘과 환희까지 덤으로 안겨 준다.

날이 밝으면 난 또 빵을 빚어 구울 것이다. 침을 꼴깍 삼키며 마술의 맛을 기다리는 우리 집 빵돌이들을 위하여.... 집빵을 먹고 자란 우리 아이들은 레시피에서 자유로운 자기만의 맛, 자기만의 삶을 찾아가지 않을까? 그것이 내 소박한 빵에 담긴 소신과 철학이다.

   
▲ 무쇠솥에서 익고 있는 빵. ⓒ정청라

정청라
산골 아낙이며 전남지역 녹색당원이다.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이 늘 얼굴이며 옷에 검댕을 묻히고 사는 산골 아줌마. 따로 장 볼 필요 없이 신 신고 밖에 나가면 먹을 게 지천인 낙원에서, 타고난 게으름과 씨름하며 산다.(게으른 자 먹지도 말라 했으니!) 군말 없이 내가 차려 주는 밥상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서, 나날이 부엌데기 근육에 살이 붙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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