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태양의 후예"

시청률이 거의 의미 없는 단어가 된 요즘이다. 지상파 드라마는 이제 ‘애국가 시청률’을 밑돌기 일쑤다. 시청률이라는 잣대마저 어쩌면 과거식이다. TV 앞에서 붙박이처럼 본방 사수를 하던 충성스런 시청층은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집계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말들이 설득력을 얻어 가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시청자를 한 군데 모으기 어려운 요즘,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30퍼센트 돌파의 인기작이 나왔다. <KBS> 2TV에서 방영 중인 수목극 “태양의 후예”다. 다매체 다채널 환경에서는 의아스러울 지경의 인기다. 시청률 수치만 높은 게 아니라, 실제로 열풍에 비유해도 될 정도의 파급 효과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태양의 후예”는 대체 어떻게 이 바늘구멍을 뚫고 시청률의 신기원을 연 것일까.

▲ 유시진 대위로 나오는 배우 송중기.(사진 출처 =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 속 주인공 유시진 대위(송중기 분)는 언제나 정의롭고 반듯하다. 올바르고 굳세다. 탐나는 여자 앞에서조차 그의 각이 잘 잡힌 ‘군기’는 빠지지 않는다. 말로는 온갖 달다 못해 현란한 사랑의 밀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구사해 상대방을 놀라게 하지만, 눈빛과 태도만은 늘 흐트러짐이 없다. 군복을 입었든 사복을 입었든 그는 언제 어디서나 출동 준비가 되어 있으며 긴장을 놓지 않고 지낸다. 특수부대의 특수 요원인 그의 몸은 사실상 그 자신의 것이 아니다. 국가의 것이다.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상관들 것이다.

“태양의 후예” 제작진의 공식 ‘소개’는 이렇게 돼 있다. ‘낯선 땅 극한의 환경 속에서 사랑과 성공을 꿈꾸는 젊은 군인과 의사들을 통해 삶의 가치를 담아 낼 블록버스터급 휴먼 멜로 드라마’. 사실 이 설명만 보고 이 드라마의 인기를 점치는 이는 별로 없었다. 설정이 진부하고 별반 새로울 게 없는 드라마일 거라는 진단들이 나와서, 제작도 한때 난항을 겪었다. <KBS>에서 방영하게 된 것도, 애초의 계획이 어긋나면서 이루어진 차선책이었다. 영화배급사 ‘NEW’가 영화제작 인력들을 동원해 만든 첫 TV드라마로 100퍼센트 사전 제작이다. 이 모든 게 사실 기존의 드라마 제작 관행과는 달랐다. 그래서 걱정도 컸다. 130억에 달하는 제작비나 해외 로케도 이런 불황기에는 시도하기 어려운 것들이기도 했다.

이 작품의 관건은 사실 외부를 제대로 치밀하게 구성하는 데 있었다.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지만 절대 ‘지구상’의 나라는 아닌 듯한 어떤 가상의 나라가 배경이 돼야 했다. 거기서 극단적인 위험과 그 속에서 꽃피는 사랑 이야기를 해외 로케의 수려한 풍광과 이국적 분위기의 힘으로 안착시켰다. 따라서 “태양의 후예”가 주는 설렘이 유지되려면 극중 유시진(송중기 분)과 서대영(진구 분)을 필두로 주요 인물들이 몸담은 대한민국 정예 부대가 최대한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상징과도 같아야 한다. ‘좋은 나라’의 정의로운 군대로서 세계 평화를 위해 이바지한다는 명분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어야 한다. 적어도 방영 시간만이라도 그런 느낌을 주어야 한다. 반드시.

그들의 충성을 받는 국가는 ‘선의 집결체’ 같은 것이어야 한다. 그들은 ‘혼자’ 싸우는 게 아니다. 국가의 명령을 받고 국가의 이름으로 공무를 집행 중이다. 아무리 비밀 단독 임무일지라도 말이다. 대신 드라마가 조금이라도 느슨해지고 로맨스가 질척거리면, 시청자에겐 그간 누적된 의문들이 속속 파고들 수 있다. 국가는 과연 선한가? 유시진의 신념 체계는 타인들에게도 유효한가? 그 모든 거창한 ‘대의명분’은 주인공들의 잘생긴 얼굴을 더 빛나게 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물론 ‘의문’이 생기는 순간, 시청자의 몰입은 깨지기 마련이다.

▲ "태양의 후예" 출연자.(왼쪽부터) 유시진(송중기 분), 강모연(송혜교 분), 서대영(진구 분), 윤명주(김지원 분).(사진 출처 = <KBS>)

왜 로맨스 드라마는 그렇게 성공하기가 힘들까? ‘달달한’ 느낌을 방영 내내 유지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대중은 늘 새로운 로맨스를 기다리지만, 이 장르야말로 참 만들기 까다롭다. 우선 두 가지 양립 불가능한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첫째, 로맨스 드라마는 현실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되 절대 현실의 냄새를 피워서는 안 된다. 개연성은 있어도 현실의 그림자는 못 느껴야 한다. 천사 같은 선남선녀 주인공은 필수이고,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온갖 아름다운 명분과 헌신도 등장해야 한다. 오직 그 드라마 속에만 있는 판타지 월드는 최대한 그럴싸해야 한다. 너무 비현실적으로 보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둘째, 그럼에도 빠져들어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디테일’이 주는 정보들을 잊고 드라마에 완전히 감정이입할 수 있어야 한다. 주인공들의 감정선은 물론 등장인물들의 사연이 다 나의 일 같아야 한다. 두 조건을 충족시키는 게 실상 로맨스의 ‘기본’이다. 이 토대 위에 그 다음부터 무언가를 차곡차곡 얹어야 한다. 그 드라마만의 매력을 말이다.

그래서 이런 로맨스가 가장 선호하는 것은 화려한 대의명분과 정의의 수호자 같은 주인공이다. 그들이 때로 맹목적으로 보일 정도로 집착하는 ‘명분’은 의심의 여지없이 옳아야 한다. 물론 드라마 속의 가상의 월드에서 말이다. “태양의 후예”는 방영 초기에 이 어려운 요건을 잘 만족시켰다. ‘우르크’라는 가상의 나라를 잘 활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위험한 임무’의 반복과 용케 위기를 돌파하는 일들의 반복으로, 로맨스마저 같은 패턴에서 질질 끌고 있다는 평이다. 남은 2회는 사실상 간접광고(PPL) 스페셜이 되지 않을까 하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

저 대단한 사랑과 정의로움이 결국 ‘가상’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래서 갈수록 허탈해진다. 구호 같은 명분과 PPL만 남는 허황함 뒤의 후유증이다. 현실과 꿈 사이의 절묘한 줄타기의 균형이 깨지는 건 순간이다. 사랑과 정의에 대한 대중의 소망을 ‘애국심’ 등의 지나친 구체성으로 얽으려는 교조적 태도도 낭만을 깬다. 오랜만에 연속극에서 느끼는 설렘인데, 이 또한 현실세계 강자들의 ‘계산’에 자리를 내주려니 입맛이 쓰다. 국가란 원래 ‘가상’의 것인가. 드라마는 곧 끝나는데, 언제까지 우리는 가상의 위안으로 버텨야 하나.

▲ "태양의 후예"의 한 장면.(사진 출처 = <KBS>)

 
 

김원(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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