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업사이드 다운", 김동빈 감독, 2016

영화를 본 어제(3월 31일)가 세월호참사 715일째라고 했다. 그러니 오늘은 716일째일 것이다. 또 이렇게 하루가 간다. 그러나 세월호 탑승자의 가족이었다가 곧 유가족이 된 사람들에게도 시간은 흐를까. 인간으로서 견딜 수 없을 십자가였던 그날 이후,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의 엄마 아빠는 어떻게 시간을 받아들이고 있을까.

다큐멘터리 “업사이드 다운”은 공식 개봉이 확정된 세 번째 세월호참사 영화다. “업사이드 다운”(프로젝트 투게더 제작)은 세월호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아버지 네 사람과 사회 각계의 전문가들을 인터뷰한 영화다. 재미교포로 미국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온 김동빈 감독은 사건 당일의 충격을 이렇게 전한다. “전원 구조됐다는 보도를 온라인으로 보다가 불과 몇 분 사이 오보로 정정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사람들이 수장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본 셈”이었다며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다 한국으로 와 “업사이드 다운”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 한고운 양의 아버지 한복남 씨의 사연이 소개된 장면.(사진 제공 = (주)시네마달)
영화 속 네 아빠는 어쩌면 2014년 4월 15일의 기억이 마지막인 사람들 같았다. 아이가 수학여행을 떠나던 아침에 “아버지, 잘 다녀오겠습니다”며 싱긋 웃고 가던 얼굴이 이 세상 마지막 기억이기를 바라는 사람들 같았다. 그 이후의 일들은 차마 필설로 옮길 수 없는 생지옥이었다. 그들은 잠시 입을 다물거나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곤 했다. 카메라는 말을 못 잇는 아빠들의 얼굴 앞에서 조용히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가 있던 ‘천국’과 아이가 사라진 뒤의 ‘지옥’을 오가는 복잡한 심경 사이에서, 갈 곳을 잃고 시간은 뒤엉켜 있었다.

네 아버지가 이야기를 이어 가는 목소리를 듣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이가 태어나 자랄 때의 이야기를 할 때는 신이 나서 만면에 미소가 가득하던 아빠들. 어린 아이를 품에 안은 젊은 아빠로 순식간에 돌아가 씩씩하게 아이 자랑을 할 때는, 그저 행복한 아빠들이었다. 그냥 이대로 한도 끝도 없이 누군가에게 자식 얘기를 늘어놓고 싶어 하는 팔불출 아빠들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4월 15일 아침과 16일의 마지막 통화나 문자 등을 연상하는 순간, ‘뒤집히는’ 고통이 되었다.

아이는, 아빠의 가슴 속에서 현재형이었다. 아니다.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였다. 그리고 다시 참사의 고통을 딛고 현재로 남겨졌다. 돌아오지 않아 이제 더는 자라지도 않게 된 아이들은 영원히 그러하다. 17년 남짓의 그 짧은 삶들은 통째로 현재가 되었다. 아이를 설명하는 단어에 대한 그들의 한결같은 시간 감각이었다. ‘00이가 그랬어요’가 아니라 ‘00이가 그래요’라는 말로 끝나는 이야기들. 그 한 줄 한 줄이 새록새록 쌓인 뒤에, 더는 무엇을 아이에게 해 줄 수 없어 미안하고 비통하다는 눈물이 터져 나온다. 그저 아이를 다시 한번 끌어안고 싶은 소원마저 지나친 욕심일까 싶어 속울음으로 삼킨다. ‘이제 그만하라’는 말들에 너무도 상처받아 몸과 마음이 다 찢겨진 게 이 부모들의 현재다. 그럼에도 이제 불행을 딛고 놀랍도록 성숙해진 그 부모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우리로 이 불행을 끝내고 싶다고. 우리가 움직이는 만큼 세상이 변할 수만 있다면, 생명이 존중받는 세상을 위해 여생을 다 바치겠다고. 그것이 떠난 자식들과 남겨진 우리의 아이들을 위한 인간으로서의 도리라고 말이다.

▲ 다큐멘터리 영화인 "업사이드 다운"에는 안전에 관한 전문가의 인터뷰가 포함돼 있다.(사진 제공 = (주)시네마달)
인명 구조는 최우선은커녕 아예 고려 대상조차 아니었던 ‘골든타임’의 대처 매뉴얼들. 참사 보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조차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다는 언론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며칠간에 걸쳐 바다에 생매장 되는 과정을 생중계로 두 눈 뜨고 지켜보아야만 했던 속수무책으로 잔인했던 4월 그리고 그 이후. 영화는 내내 이 질문에 매달린다. 왜 그 큰 배가 그렇게 빨리 침몰했는가? 그리고 왜 참사 앞에서 한국 언론은 그렇게 이상한 보도 태도를 보였는가? 왜 이 이상한 일들에 대해 우리는 이토록 무감각한가?

참사 보도 과정과 수습 과정을 지켜보며 상식이라는 개념에 혼돈을 느낀 김동빈 감독은 영화를 통해 우리를 사색하게 한다. “사람이 아닌 돈이 중심이 돼 버린 우리 사회의 상처”가 곳곳에서 여전히 ‘비정상’을 예고하고 있다. “업사이드 다운”은 상식과 가치 등등 모든 것이 마치 침몰한 세월호의 모습처럼 ‘뒤집힌’ 우리 사회를 상징하는 제목이다.

영화는 굉장히 성찰적이다. 왜 이런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인가에 대해 침착하게 그리고 깊이 있게 질문을 던지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답을 구한다. 세월호 침몰로 인해 드러난 한국사회의 ‘숨겨졌던’ 병폐를 하나하나 짚어 본다. 우리 사회 전체에 대한 통찰이 두드러진다. 결국 침몰한 것은 세월호라는 배 한 척이 아니라 우리 사회 ‘양심의 침몰’이었기 때문이다. 서두르거나 열을 내지는 않지만 끈질기게 ‘진실의 인양’을 지켜보겠다는 태도다. 참사를 다루는 기록물들이 견지해야 할 중요한 지점 하나를 일깨워 주는 영화였다. 65분짜리 이 ‘잔잔한’ 다큐가, 제작진과 유가족들의 소망처럼 많은 사람들이 보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고 흥행했으면 좋겠다. 그러다 그 어느 날 ‘방송 3사’에서 TV화면으로도 방영되는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란다. 이 기울어짐이 조금이나마 균형을 잡는 것이 될 터이니 말이다.

▲ 영화 "업사이드 다운"의 포스터.(사진 제공 = (주)시네마달)


 
 

김원(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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