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그래, 그런거야"

아주 오래도록 그래 왔다.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에는 일종의 자동 시스템 같은 것이 있었다. 주류 언론의 대대적인 상찬은, 거의 세뇌시킬 지경으로 다음 문구를 주입한다. “언어의 마술사 김수현” “역시 김수현!” 방영도 시작하기 전에 이런 찬사들이 먼저 쏟아져 나왔다. 마치 시청자가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지를 모두 짐작하고 꿰뚫어 보고 있다는 식의 ‘흥행 예고’의 말들이었다. 신기하게도 굉장히 오랜 세월 그 방식이 통하기도 했다. 볼 채널이 세 개뿐이던 시절이라고는 해도, 놀라운 흥행이긴 했다. 분명히.

이번에도 그러긴 했다. 문제는 시청자가 반응을 안 보인다는 사실이다. 방송 전의 홍보 방식은 예전과 거의 대동소이했는데 말이다. 아니 ‘비기닝’이라는 사전 영상까지 내보내는 등 이전보다 훨씬 더 강화됐다. 김수현 작가의 <SBS> 새 주말드라마 “그래, 그런거야”가 방영되기 전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다 죽었어’에 가까웠다. 드라마라면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어떤 ‘정석’이 나오기 직전의 자신만만함 같은 기류가 있었다.

▲ "그래 그런거야"의 등장 인물.(사진 출처 = SBS 홈페이지)

파란은 ‘비기닝’이 방영된 그 다음 주에 일어났다. 첫 회 시청률은 4.0퍼센트를 기록했다. 물론 요즘 지상파 드라마에서는 종종 볼 수 있는 수치다. 하지만 수년 만에 김수현이 지상파 복귀작을 내놓으며 제작진과 출연진이 장담한 숫자는 굉장히 높았다. 60퍼센트라는 구체적 수치가 나오기도 했다. 아마 첫 방 이후 작가와 제작진은 그야말로 눈을 의심했으리라. ‘40’을 잘못 보았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한 달여가 지나도, 시청률은 오르지 않았다. 조금 오르긴 했지만,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과 겹치는 토요일에는 눈에 띄게 부진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의 시청률이 도돌이표 같은 곡선을 그리며 일정하게 굳어 가는 형세였다. 게다가 “시그널”이 종영한 뒤에도, 젊은 시청자들은 지상파로 편입되지 않았다. 주류 언론은 여전히 칭찬 일색이지만, “오르고 있다”는 기사들이 자주 눈에 띄지만, 일단 인터넷과 친숙한 세대는 이 드라마에 관심이 없는 듯하다.

엄밀히 말해 이번 작품이 특별히 더 문제가 많은 것은 아닌 듯하다. 이전에 <JTBC>에서 방영했던 “무자식 상팔자”와 너무 흡사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김수현이 주로 그려 온 대가족 이야기의 틀은 사실 거기서 거기였다. 대가족의 사소한 일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큰 틀에서는 대동소이하고 내용면에서는 ‘무정형’에 가깝다. 애초에 가옥 구조와 가족 관계가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

이번 시청률 부진 원인은, 아마도 시청자의 취향 변화가 아닐까. 작가는 예전 그대로 자신이 제일 잘하는 방식대로 필력을 펼쳤을 뿐인데, 갑자기 시청자들은 새삼 시끄럽고 이상하다고 여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1968년 <MBC>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데뷔한 이래, 김수현 작가는 거의 50여 년을 늘 최고의 작가였다. 그녀는 ‘대모’라는 별칭이 늘 따라다니는 대단한 현역 작가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고, 시청자의 입맛도 변한 듯하다. 누구 한 사람의 평생에 걸친 노고와 희생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 수직적 대가족을 TV 드라마로 보는 것조차 피로하다는 의견도 많다. 홀시아버지와 사는 혼자 된 젊은 며느리의 마음 등도 제작진은 ‘순정’으로 봐 주었으면 하겠지만, 지나친 ‘설정’으로 여겨지는 관점 차가 크다.

▲ 막내 세현(정해인 분, 오른쪽)의 취업문제로 갈등을 빚는 첫째 세희(윤소이 분, 왼쪽)와 둘째 세현(조한선 분).(사진 출처 = SBS 홈페이지)

삼대의 그 많은 식구가 아무리 치고 박고 침 튀기며 머리채를 잡고 싸워도, 결론은 모두 가족 안의 문제로 수렴된다. 어느 지역에 살든, 등장 인물들의 생활 범주와 관계망은 가족 혹은 친족 내로 한정된다. 따라서 아무리 갈등이 심해 봤자 ‘찻잔 속의 태풍’이다.

김수현 드라마에서 ‘사회’란 그저 막연한 외부일 뿐이다. 가족의 생활 습관이나 의식 구조는 별로 이 사회의 변화에 영향 받지 않는다. 등장 인물들은 하나같이 경제적으로도 윤택하다. 이 가족들이 먹고 사는 문제는 한국 경제의 상황과 무관해 보인다. 손자가 왜 취직이 어려운지, 저성장사회의 상식에 대해 그들 대가족만 모른다. 손자의 철없음 정도로 여기고 입씨름만 계속한다. 그러나 시청자는 이제 너무도 잘 안다. 젊은이들이 왜 취직이 어려우며 왜 결혼을 못하는지. 이것이 우리 사회의 총체적 모순과 불의이며 불행임을 적어도 이 드라마 속의 사람들보다는 잘 알고 있다.

 
 

김원(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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