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프로듀스 101"

대한민국이 꿈을 가진 젊은이에게 어떤 나라인지를 은연 중에 깨우쳐 주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 같은 프로그램이 있다. 엠넷에서 금요일 밤에 방송하는 “프로듀스 101(원오원)”이다. 걸그룹의 일원이 되어 가수로 데뷔하려는 101명의 소녀들이 출연해 매주 순위 경쟁을 벌인다. 4월 1일 종영 때 최종 11명을 가려낸다는 게 목표다.

바꿔 말하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90명에게는 ‘헛꿈’이란 얘기다. 어쨌든 최종 11명을 위해 ‘101’이라는 숫자의 나머지를 채운 소녀들은 들러리가 돼야 한다. 하나같이 예쁘고 재주 많은 그 소녀들은 모두 똑같은 꿈을 꾸고 있다. 꿈은 ‘데뷔’다. ‘들러리’는 자신이 들러리인 줄 알면서도, 이탈하거나 반항하지도 못한 채 끝까지 자신의 ‘최선’을 보여 줘야 한다. 무대에서 죽을 힘을 다해야 한다. 매서운 트레이너와 심사위원들은 심지어 ‘열정’과 ‘성의’에 대해서까지 점수를 매긴다. 중도 이탈하면 계약 위반으로 거액의 위약금을 물린다. 한갓 소녀에 불과한 참가자는 빼도 박도 못하는 지옥의 링에 오른 셈이다.

▲ "프로듀스101"의 트레이닝 팀.(사진 출처 = <엠넷> 홈페이지)

참가한 연예기획사만 50여 군데다. 꽃보다 더 예쁘고 뭐든 시키는 대로 너무나 능숙하게 해 내는 만능재주꾼인 참가자들은 이름 뒤에 ‘연습생’이라는 호칭이 붙는다. 그렇다. 그들은 때로 마치 번호가 매겨진 마네킹처럼 보이기도 한다. ‘웃는 마네킹’처럼 굳어 있다가도 정작 마이크 앞에서 입을 열게 되면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탈락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예쁘게 봐 달라고 울먹이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죽도록 열심히 말이다. 자신의 등수에 대한 압박은 소녀들을 짓누르고 있다. 하위권과 상위권은 표정 자체가 다르다.

겉으로는 아무리 ‘같은 출발선’인 것처럼 연출하지만, 시청자 중 아무도 이 게임의 룰이 공정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카메라가 잡을 얼굴은 (어쩌면) 이미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회를 거듭하면서 그간 방송을 통해 이미 얼굴을 알리고 많은 팬을 갖게 된 상위권 몇몇 소녀들은 데뷔가 유력시되고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의 포지션이 애매한 연습생들은 TOP11에 포함되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본 소속사로 복귀해 데뷔를 준비하는 것이 나은 선택일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프로듀스 101”에 참여한 각 소속사들 역시 소속 연습생이 10개월여 수익을 낼 수 없는 TOP11이 되는 것 보다 11위에서 20위 안에 들어 인지도를 높이길 바라고 있다는 후문이다.

'프로듀스 101'의 우승자 11명은 4월부터 12월까지 총 4곡으로 활동한다. 이 중 2곡은 전체가 참여하고 2곡은 유닛으로 활동을 펼친다. 최종 멤버들의 매니지먼트는 CJ가 아닌 YMC엔터테인먼트가 맡는다고 한다. 어쨌든 약속이 돼 있는 것은 ‘데뷔’에 한해서다. 그리고 올 12월로 모든 활동은 끝난다. 12월 이후의 이 쟁쟁한 소녀들의 미래에 대해서는, 사실상 원점이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소녀들은 걸그룹으로 데뷔하기 위해 이 잔인한 경쟁에 최선을 다한다. 너무 예뻐서 아찔할 정도인데도, 늘 ‘예쁘지 않을까 봐’ 마음 졸인다. 무대에 올랐을 때 최고의 칭찬도 “예쁘다!”이다. 저희 정말 열심히 하고 있으니 예쁘게 봐 달라는 부탁을 그것도 울먹이며 하는 소녀들, 자신이 몇 등인지가 그 안에서는 일종의 존재 가치가 되는 동안 순위권 밖의 소녀들은 ‘예쁘지 않은’ 것이 미안하고 속상해 펑펑 울기도 한다. ‘여자 가수는 무조건 예뻐야 돼’라는 말이 연습실 곳곳에서 비명처럼 들려오기도 한다. 그 어린 나이에 연습기간이 10년, 7년.... 기가 막히게 길다. 그리 죽도록 열심히 해 온 결과가 또 이런 출혈 경쟁에 뛰어드는 것일까.

명분은 ‘국민 프로듀서’로 투표에 참여하라는 것이다. 문자 투표에서 인기를 못 받으면 곧 ‘사형선고’가 된다. 울면서, 소녀들은 말한다. 예쁘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대기실에서는 ‘울지 말자’는 구호 같은 말들이 들려온다. “어떻게 보면 이게 마지막 기회잖아요....” 이런 말도 참 자주 듣게 된다. 사회자 장근석 아니 ‘장 대표’는 틈만 나면 외친다. “당신의 소녀에게 투표해 주세요~!”

피라미드 구조의 101개의 의자들이 놓여 있던 무대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등수가 적혀 있는 의자들. ‘1’이라고 쓰인 맨 꼭대기의 한 자리. 그 자리에 앉는 것조차 망설이는 간이 콩알만한 연습생들. 그 어린 나이에 이미 (데뷔 못한) 상처가 너무나 많다. 데뷔 예정이었다가 엎어지기도 하고, 언제나 점수와 등급이 매겨지는 혹독한 평가의 시간들이 바로 연습생의 일상이다.

데뷔라도 해 봤으면 좋겠다는 그녀들. 그러나 이미 1회에서 보았듯이 “데뷔했는데 묻혀 버려” 다시 연습생으로 돌아온 출연자들도 생각보다 많다. 이 프로그램에도 나오지 못한 숫자는 그야말로 부지기수일 것이다. 걸그룹으로 활동하다가 이름도 알리지 못한 채 사라지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현재 인기 있는 걸그룹이라고 해도, 잠깐의 활동기간 이후 그들이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는 소속사조차 대책이 거의 없지 않은가! 이 프로그램 이후 그녀들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 모두가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정말 가수 생활을 계속 이어 갈 수는 있는 것인지, 그 꿈을 펼칠 무대는 지속적으로 주어지긴 하는지, 보는 것조차 때로는 미안한 시청자는 그 예쁜 아이들이 울지 않게 되기만 바랄 뿐이다.

 
 

김원(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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