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불능시대 넘어서기]인간에게 아직까지 남아 있는 시간

한국에서 살다 보면 전시와 평시를 구분하는 감각이 둔해지기 마련이다. 항상 준전시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진다.

지난 24일 박근혜 대통령은 전국에 경계태세 강화를 지시했다. 전날 북한 최고사령부가 중대성명을 발표해 청와대를 1차 타격대상으로 지목한 다음날이었다. 박 대통령의 경계태세 강화 지시가 있은 직후 국방부는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군이 지난 1월 북한의 핵실험 이후 유지하고 있던 경계태세를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군대로선 더 이상 경계태세를 강하게 할 수가 없다는 말이었다. ‘전국경계태세령’은 군대가 아니라 일반 국민들에게 내려진 명령이었던 것이다.

전쟁이 일촉즉발인 위기인데, 서울에선 사람과 인공지능이 바둑을 두는 국제 이벤트가 열려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북쪽에선 핵실험을 쏘고, 남쪽에선 ‘참수작전’을 내세우며 한미연합군사훈련이 대규모로 열리던 와중이었다. 3월은 그 무엇보다 알파고의 달이었다.

아내나 나도 ‘바알못’(바둑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평소엔 바둑을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이번엔 괜히 관심이 갔다.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아도, 오가다 TV에서 경기가 나오면 몇십 분씩 앉아서 지켜봤다. 바둑은 봐도 전혀 모르면서.

그러다 문득 시간에 눈이 갔다. 다른 일을 하다가 한 번씩 보면, 이세돌이 시간에 쫓겨 초조해하는 동안 알파고는 시간을 넉넉하게 가지고 있었다. 알파고가 워낙 빨리 두니 상대로선 그만큼 고민할 시간이 더 부족했을 것이다. 어쨌든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국에서 시간이 더욱 절실하게 필요했던 건 인간인 이세돌 쪽이었다.

대화가 가능한 시간

바둑을 좀 아는 이들은 바둑의 목적이 단순히 이기는 데에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철학자 들뢰즈 역시 바둑이 체스와 달리 “목적도 목적지도 없이, 출발점도 도착점도 없는 끝없는 생성”하는 성격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바둑을 두는 사람들은 빨리 왕을 잡아서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바둑판 위에 무한한 영토를 그려내며 세계를 재현하는 놀이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둑을 두며 차도 마시고 이야기도 한다. 바둑은 그런 시간 동안 나누던 이야기까지 포함하는 기예(技藝)였다.

이런 점에서 알파고가 위협한 건 인간의 지능이나 감정이 아니라 ‘대화’였다. 인공지능은 상대와 대화하지 않고 다만 가장 효율적으로 수를 찾아낼 뿐이다. 컴퓨터가 30수 앞을 계산해서 내놓는 시간이 짧아질수록 인간의 판단 역시 빨라져야만 한다. 인공지능이 바둑으로 들어오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여지가 급격하게 사라진 것이다.

알파고가 하던 것이 바둑이 아니라 전쟁이었다면 어땠을까? 군대에선 이미 전쟁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운용 중이다. 게다가 오늘날 전쟁은 재래식 전투와 달리 바다와 공중에 오가는 기계들의 파괴력에 따라 순식간에 정리되는 양상을 보인다.

과거의 전쟁은 국민들을 총동원해야 했던 만큼 전쟁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국가가 국민들을 설득하고 타협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반면에 오늘날은 전쟁이 결정되어 도시가 폐허가 되기까지 필요한 시간이 너무나 짧아져서 전쟁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어려워졌다.

자동화 시스템은 상대가 미사일을 발사하는 순간 이쪽에서 맞대응을 30초 안에 결정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토론을 하기엔 30초는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 거의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대응 과정에서 국민은커녕 군통수권자 역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할 따름이다.

▲ 알파고를 대신해 바둑알을 놓는 아자황 박사. 알파고를 만든 이 가운데 한명이다. (이미지 출처 = YTN NEWS 유투브 동영상 갈무리)

아자황의 존재, 인간에게 남은 시간

그래서 역설적으로 준전시상태였던 한국은 알파고 대국 이벤트에 가장 어울리는 현장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늘날 전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못할 수 있게 만드는 가장 큰 위협이 바로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의 발달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처럼 일반 국민들의 일상도 항시 경계태세이길 요구하는 곳에선 인공지능이 전쟁을 결정하고 인간들을 바둑알 삼아 가장 효율적으로 이기도록 이리저리 주무르는 일도 그리 어렵진 않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는 바둑도 전쟁도 인간 없이는 수행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일례로 알파고가 대국 중에 엉뚱한 수를 놓았을 때 이세돌이 모니터와 현실 바둑판을 연신 번갈아가며 쳐다본 적이 있었다. 알파고를 대신해서 바둑판에 돌을 놓던 아자황 박사가 실수를 한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이해가 되지 않는 수였기 때문이었다.

그 해프닝 속에서 새삼 떠오른 건 그간 잊었던 아자황 박사의 존재였다. 그는 필요하다면 알파고가 둔 대로 현실 바둑판에 고스란히 두지 않을 수 있을 자유가 있었다.

전쟁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아무리 경계태세를 강조하고 나서도 시민들은 아직도 전쟁과 평화를 결정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 권리는 오로지 평시에만 행사할 수 있는 권리다. 전쟁이 터지고 비상사태가 선포된다면 더 이상 성찰할 시간 같은 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한국의 정치인들도 얼마 전 필리버스터를 통해서 아직도 인간이 할 수 있는 바가 있음을 보여줬다. 테러방지법 체제라는 비상사태가 선포되는 것은 필리버스터가 유지되었던 시간만큼 지연되었다. 전세계 평화활동가들도 매년 4월 세계군축행동의 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인간이 전쟁을 막기 위해 무언가 할 수 있을 시간이 아직은 남아있다.

 
 

백승덕(미카엘)
징병제 연구자.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에서 부의장과 교육위원장을 맡았다. 2009년 9월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용산참사, 쌍용차파업 진압에서 국가폭력이 맹위를 떨쳤던 해였다. 출소 후 징병제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한양대 트랜스내셔널 인문학과에서 ‘이승만 정권기 국민개병 담론’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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