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나는 왜 적응하기 힘들까”: 있어야 할 자리에서 스트레스에 짓눌리는 당신에게, 오카다 다카시, 을유문화사, 2015

얼마 전 후배가 직장 생활에 대해 푸념을 한참 늘어놓다가 “이제 저도 조금씩 적응되는 것 같아 불안해요.”라는 말로 끝맺었다. 그 회사는 부조리한 면이 많았는데 조직에 자신이 조금씩 적응하면서 새로 들어 온 신입 동료에게 예전 선배가 자신에게 했던 대로 회사의 논리를 들이밀고 있더란 말이다. 회사 생활에 적응되면 다행 아닌가. 왜 그는 적응되는 것에 불안을 느껴야 했을까.

적자생존의 법칙대로 환경에 잘 적응한 종이 살아남는다 할 때, 그 환경이 좋은 환경인지 나쁜 환경인지 먼저 구분해 볼 수 있다. 사람에게 직장은 삶을 영위하는 중요한 사회적 환경인데 그 환경이 나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나쁜 환경이란 종 다양성이 파괴되어 아주 협소한 종류만 살아남거나 특정 종이 지나치게 창궐하는 경우를 말한다. 사회나 회사도 마찬가지다.

▲ “나는 왜 적응하기 힘들까”: 있어야 할 자리에서 스트레스에 짓눌리는 당신에게, 오카다 다카시, 을유문화사, 2015.
다양한 구성원의 다양한 의견과 개성이 수용되지 않고 특정 유형만 잘 살아남는 환경일 때 그곳은 나쁜 환경이다. 그러나 이런 환경을 떠날 수 없고 적응해야 한다면 그 길은 두 가지다. 타협해서 같이 나빠지는 것과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앞의 것은 소극적 적응 전략이고 뒤의 것은 적극적 적응 전략이다. 두 전략을 어느 만큼의 비중으로 선택해서 조화시키느냐 판단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적응에 최종적으로 실패했거나 더 이상 적응하지 않기로 결론을 지었을 때 그 환경에서 벗어난다.

흔히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잘 적응해 살아남는 종이 늘 강자인 것은 아니다. 공룡이 멸종하던 시기에 작은 포유류가 살아남았고 굽어서 쓸모없는 소나무가 나무꾼의 도끼를 피하듯이 온전히 우월한 개체만 적응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노력하면 지킬 수 있는 자기 자리가 하나쯤은 있기 마련 아닐까. 그런데 현실적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 자리도 있다. 힘든 정도가 아니라 하루하루가 괴롭고 나중에는 몸에 병이 나기까지 한다. 그렇다고 그 자리를 쉽게 벗어날 수도 없다. 그곳이 학교이고 가정이고 직장이니까. 이 과정에서 엄청난 스트레스가 일어난다.

이 책 “나는 왜 적응하기 힘들까?”는 사람들이 각자 자기 자리에 적응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고, 그 결과 ‘적응 장애’를 일으키는 현실에서 책을 시작한다. 적응 장애는 우울증으로 가기 전의 단계로서 감기가 심해져 폐렴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저자는 흔히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에 비유하는데 이것은 잘못되었다고 한다. 우울증은 폐렴에 해당하는 무거운 질병이고, 감기 정도의 증상을 겪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응 장애를 겪고 있는 거다. 등교를 거부하는 학생, 가족 간의 불화를 겪는 사람, 열심히 일하면서 우울해지는 직장인들. 모두 적응 장애를 겪고 있는 중이다.

저자는 적응이 어떤 자리에서 가장 자기다워지는 것이라고 한다. 자기다워진다는 것은 자신의 특색과 주어진 환경이 잘 맞아서 사람이 활력 있고 빛나는 상태라고 한다. 따라서 적응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특색을 잘 알아야 한다. 이 책은 사람의 특색을 크게 선천적인 ‘특성’과 후천적으로 형성된 ‘인격’으로 구분해서 살펴본다. 불안을 잘 느끼는 사람인지, 새로운 자극에 꽂히는 사람인지, 고집이 세거나 예민한 사람인지 저마다 타고난 특성이 있다. 그리고 회피, 의존, 강박, 자기애 등 인격 유형도 다양하다. 이러한 요소들이 환경과 작용해서 적응의 성패를 좌우한다.

한국사회의 직장환경에서 가장 잘 적응하는 사람은 어떤 타입일까? 아이디어가 샘솟는 천재형? 동료들과 관계를 잘 만들어가는 호인형? 자기 이익을 빈틈없이 지킬 줄 아는 깍쟁이형? 다 좋지만 단연 최후의 적응 개체는 일중독 스타일이 아닐까. 자신의 삶과 일을 일치시킨 채 지나친 장시간 근무로 스스로를 착취하고, 그로 인해 피폐해진 삶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더 열심히 일에 몰두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기업에서 임원 정도로 승진하면 어느 정도 조직에 잘 적응했다고 볼 수 있을 텐데, 그런 사람들 태반이 일중독 경향을 보인다. 열심히 일하다가 문득 사무실 저 편의 선배들을 보면 이 직장의 특성에 따른 적응 유형이 보인다.

저자도 무조건 적응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한다. “맞지 않음에도 계속 참고 견디면 마음과 몸이 반란을 일으킨다. 이 반란 초기 단계가 적응 장애라고 할 수 있다.... 주위의 기대나 체면 때문에 그 환경에 계속 매달리는 것은 인생 낭비일 뿐이다. 깨끗하게 단념하고 다음 도전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말해 버리면 책을 읽는 우리로서는 갑자기 혼란스러워진다.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거야?

정해진 답은 없다. 적응과 벗어남의 시점은 내가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가정과 학교, 직장에서 항상 잘 적응하는 법만 배워 왔다는 점이다.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기에 당연하다. 그러나 아무도 이 공간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어느 시점에 이르면 적응을 포기할 수도 있는 곳이라는 점은 말해 주지 않았다. 이 자리가 당신이 무조건 적응해야 할 절대적 공간이라고 말하는 순간 억압이 시작된다.

앞서 말한 후배는 회사에 적응되는 것이 왜 불안했을까. 아마도 부조리하다고 느끼는 환경에 적응하고 동화되면서 자기다움이 훼손되어 버릴까 걱정스러웠던 것 같다. 나는 적자 생존의 법칙에 빗대어 이 책의 최종 결론을 이렇게 요약해 볼까 한다. 동시에 후배에게 전해 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자기답게 사는 사람이 살아남는다. 비록 그곳이 지금 여기는 아닐지라도.’

 
 
강변구
출판 노동자, 파주에 있는 출판사에서 십여 년째 어린이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올해 딸이 태어난 새내기 아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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