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연봉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우석훈, 새로운현재, 2016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자기 연봉을 터놓고 밝히는 사람이 있을까. 내 연봉 액수를 놓고서 차분하게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아마 임금 협상 자리에 마주 앉은 사측 임원뿐이지 싶다. 그만큼 연봉은 민감한 사안이다. 그야말로 내 값어치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내가 낮잡아 보일 수도 있고, 살아온 내력 전체가 평가받는 것 같아서 두렵기까지 하다.

한참 예전 일이지만 어떤 선배 한 분은 회사가 연봉계약서를 직원들의 집으로 발송해 주겠다고 하자 대번에 발끈(?)했다. 마치 학창시절 집으로 성적표 받을 때의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적과 연봉이 함께 비밀인 것은 학교에서 회사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경쟁 사회의 모습을 보여 주는 단면이다.

연봉은 노동자들 사이에서만 비밀인 게 아니다. 대부분의 기업은 연봉을 비밀로 하기 원하고, 종종 근로계약서나 연봉계약서에 연봉 액수를 누설(?)하면 불이익을 감수한다는 조항까지 삽입해 놓는다. 노동자들끼리 비밀로 하는 건 그렇다 치고 왜 회사가 기술 유출보다 연봉 액수 유출을 더 두려워하나. 회사는 매년 임금 지불 총액이 총 지출의 일정 비율을 넘어서지 않게 관리해야 한다. 이것이 기업이 하는 임금 관리의 처음이자 끝이다. 이런 원칙에 따라서 성과가 좋은 노동자의 임금 상승분은 성과가 낮다고 평가된 노동자의 임금에서 옮겨 가게 된다. 그래서 회사는 임금 지출 총액을 유지하고, 덤으로 노동자들 개인에 대한 차별적 보상과 그에 따른 경쟁 구조도 유지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연봉이 당연히 비밀일 수밖에 없고, 경쟁이 심한 조직일수록 연봉이 공개되는 날 회사는 그날로 의혹과 질시의 아수라장이 되어 버릴 것이다.

▲ “연봉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우석훈, 새로운현재, 2016.
먼저 연봉의 개념부터 조금 알아보자. ‘연봉’은 근로의 대가로서 회사가 지불하는 임금의 여러 표현 중 하나다. 시간에 따라 주는 것이 시급이고, 월마다 주는 것이 월급(월봉)이다. 그리고 연봉은 일 년간의 임금 총액이다. 이렇게 임금을 가리키는 여러 말 가운데 하나일 뿐인데 연봉제를 매년 근로계약을 갱신하는 ‘기간제 근로’라는 고용형태와 동일시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래서 나와 회사의 연봉 협상이 결렬되면 그날로 회사를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원론적으로는 연봉 협상이 결론이 안 났으면 최소한 작년 연봉으로 계속 다니면 된다. 또한 연봉은 연봉제로서 임금체계의 한 형태다. 보통 호봉제와 비교되어 연봉제는 성과에 따라, 호봉제는 연공(근속년수)에 따라 보상하는 임금체계로 되어 있다. 얼핏 호봉제가 불합리하고 연봉제는 합리적일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연봉제에서 가장 큰 근거인 성과 자체가 개별적으로 측정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은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성립된 조직으로서 구성원들의 협업과 분업의 복잡한 과정을 통해 운영된다. 그 속에서 개인이 실현한 성과의 크기를 측정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다고 해도 구성원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평가 기준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그럼 평가 기준만 제대로 마련되면 될까? 그럼 그 평가는 누가 하나. 당연히 회사가 한다. 평가권을 쥐고 있는 사람의 평가에만 근거해서 임금이 결정되는 구조는 피평가자(노동자)에게 매우 불리할 수밖에 없다.

저자 우석훈은 이렇게 얄궂은 우리의 “연봉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라고 묻는다. 한 가지 질문. 연봉이 내가 회사와 협상해서 결정하는 게 아니고, 결정되어 버리는 건가? 원칙적으로는 협상의 양방이 합의로 결정하는 것이 맞다. 그래서 매년 경제학자가 그해 경기 동향 등을 토대로 ‘올해 연봉은 무엇으로 결정하는가’라는 제목이 달린 임금 교섭 가이드를 내놓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임금 결정 과정에서 주체인 내가 빠져 있다. 그래서 내 연봉은 올해도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슬프지만 이게 지금의 현실이다. 물론 ‘나는 성과도 좋고 회사와 매년 연봉협상을 잘 해 왔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과 개별 노동자가 임금을 놓고 협상하는 모습을 균형점이 가운데 있는 시소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균형점이 노동자 쪽으로 한참 옮겨 간 지렛대를 떠올리는 게 더 정확하다. 그런 불평등한 관계를 조금이라도 회복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되면 지렛대의 불리한 쪽에 노동자가 한꺼번에 올라가서 조금이나마 평형에 가까워진다.

우석훈이 말하는 연봉 결정의 요소는 개인 경쟁력 보다는 사회적인 것이 더 크다. 일단 한국의 경제구조가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에게 불평등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불평등한 큰 그림 속에서 최저임금이나 임금피크제 같은 정책적 요소가 개입한다. 다음으로 해당 직종의 평균 임금 수준이 중요하다. 기업 내부로서는 지불능력이 가장 우선이고 타 기업의 인상 동향, 물가 상승률, 노조의 요구 순이다. 슬프지만 여기서 노동자 개인들의 협상력은 회사의 안중에 별로 없어 보인다. 이 책에서 연봉 협상의 현실적 기술을 배우기는 힘들다.

그러나 우리의 임금이 어떤 큰 그림 속에서 정해지는지 대략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노동자의 임금 결정에 있어서 이번 총선이 1차 협상이고, 그 틀 속에서 노조나 개인이 회사와 2차 협상을 벌일 것이다. 사실 노조가 없는 경우 개인별 임금 협상 자체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일단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면 협상 결과에 상관없이 돈으로 매길 수 없는 나의 소중함을 굳게 믿어나 보자. 그리고 협상이 힘든 이유는 늘 우리가 지렛대의 불리한 쪽에 앉아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강변구
출판 노동자, 파주에 있는 출판사에서 십여 년째 어린이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올해 딸이 태어난 새내기 아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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