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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도 쉽지 않은데 사회교리라니요?[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세례를 받기까지 가톨릭 교리 배우느라 적잖은 시간을 보내야 하고, 쉽지 않게 세례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교리가 선뜻 이해되질 않아 어려워하는데 ‘사회교리’라는 게 더 있다는 것을 들은 분이 그것은 또 무엇에 쓰이는 교리인지 물어 오셨습니다. 음.... 쉽게 말해서 교회가 세속 사회를 향해 던지는 기본 원리, 우선 신자들 그리고 더 넓게는 세계 시민들에게 요청하는 내적 태도와 외적으로 실천할 사안들을 다루는 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설명이 그리 쉽지는 않군요.

가톨릭 교회가 중대한 사회 문제에 응답한 최초의 문헌이 바로, 레오 13세 교황이 1891년에 반포한 회칙 ‘새로운 사태’입니다. 이 회칙은 임금 노동자들의 조건, 특히 비인간적 열악한 상태에서 고달프게 살아가는 산업 노동자들의 비참한 조건을 고찰하고 있습니다. 이 회칙을 시작으로 교회는 현실사회에 대해, 교회의 가르침으로서 사회교리를 신자들에게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사회교리의 배경이 됩니다.

‘새로운 사태’는 사회악에서 비롯된 오류들을 열거하고, 사회주의를 그 치유책으로 삼기를 거부하며, “노동, 사유 재산권, 사회 개혁의 기본 방법으로서 계급투쟁이 아닌 협력의 원칙, 약한 이들의 권리, 가난한 이들의 존엄성, 부유한 이들의 의무, 사랑을 통한 정의의 완성 및 직업별 결사의 권리 등에 대한 가톨릭의 가르침”을 설명함으로써 올바른 사회질서를 위한 영감을 불어넣었습니다.(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간추린 사회교리’,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2006, 86-87쪽 참조)

이 배경에는 인간의 존엄성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것에 대한 깊은 우려가 담겨 있었습니다. ‘새로운 사태’를 시작으로 사회교리가 생겨났다고 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없던 것이 갑자기 생겨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구약 시대부터 예언자들이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엄중 경고하고 있었으니까요. 하느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악행이 옛날에도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회교리는 교회의 예언자적 역할을 수행하는 행위입니다. 이 교리는 그냥 의무로서 듣고 마는 것에 있지 않고, 들은 바를 실천해야 완성되는 것입니다.

사회교리는 사회의 양상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배우려면 각 교구에 설치된 정의평화위원회를 통해 기회를 만들어 보실 수 있습니다. 각 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사회교리교육을 주관하는 공식적인 교회기구입니다. 대신 속풀이 수준에서는 간단하게 사회교리의 기본 원리 몇 가지만 핵심적으로 맛보도록 하지요.

   
(사진 제공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우선, 말씀드렸다시피, 사회교리의 기본 배경에는 “인간 존엄성”이라는 매우 중요한 원리가 자리합니다. 이 존엄성은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다는 믿음에서 옵니다. 이에 인간 존엄성을 손상시킬 수 있는 어떠한 움직임도 허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개인 활동을 제약하는 사회주의 독재, 인간을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상업주의 독재, 인간의 고유한 특성을 훼손하는 초인간주의 독재 등을 거부해야 합니다.

인간 존엄성으로부터 나오는 원리 한 가지가 “공동선의 원리”입니다. “공동선”이란 ‘집단이든 구성원 개인이든 더욱 충만하고 더욱 용이하게 자기 완성을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생활 조건의 총화’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사회적 실체의 각 주체가 가진 고유한 선의 단순한 총합이 아니라, 모든 이와 각 개인에 부여된 ‘공통의 것’입니다. 공통의 것이기에 전체와 개별이 조화를 이뤄 그것을 더욱 풍성히 하고 보존할 수 있습니다. 이 조화를 중재하는 것이 현실 사회에서는 국가와 공공기관들이 됩니다. 공정하고 균형 잡힌 제도를 위해 ‘공권력’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국가와 공공기관들을 효과적으로 제한하는 원리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보조성의 원리”가 있습니다. 모든 일에 일일이 간섭하는 국가는 ‘공권력’ 남용을 일삼게 됩니다. 개인의 책임성과 지역 차원에 걸맞은 운영이 가능하도록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이것이 실현되지 않고, 상층 단위의 간섭이 계속된다면 전체주의와 집단주의가 사회를 지배하게 됩니다.

그리고 공동선을 위해 함께하는 모든 이들은 “연대성의 원리”를 수행합니다. 연대성은, 가깝든 멀든 수많은 사람들의 불행을 보고서 막연한 동정심 내지 피상적 근심을 느끼는 무엇이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공동선에 투신하겠다는 강력하고도 항구적인 결의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의식입니다. 타인을 착취하는 대신에 이웃의 선익에 투신하고 복음의 뜻 그대로 남을 위하여 ‘자기를 잃을’ 각오로 임하는 것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하여 남을 억압하는 대신에 ‘그를 섬기는’ 것입니다.(‘간추린 사회교리’, 193항 참조)

마지막으로 한 가지 원리를 덧붙이자면, 그것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 원리입니다. 가난한 이들, 소외받는 이들은 자기 완성을 추구하는 사회생활 조건에서 많은 제약과 방해를 받는 이들입니다. 이들에 대해 늘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렇듯 인간 존엄성의 원리가 계속 배경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아시겠지요?

우리가 이 신앙을 가지게 된 이상, 사회교리는 그러므로,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인간 존엄성이 자본 앞에서 아주 쉽게 유린당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은 오히려 사회교리를 통해 먼저 전파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아셨다면, 여러분도 가서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가게 월세를 계속 올려 오신 독자분이 계시다면 이제는 멈추시기 바랍니다. 같이 살아갈 방도를 찾고 실천하여 구원의 길로 나가자는 말씀입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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