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 중인 노동자들 방문

신학생이 되었을 때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은 어디에 있지? 이 사회가 그렇다.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한 가난한 사람들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니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사제의 모습’도 잘 그려지지 않는다. 막연하다.

강남 한복판, 빌딩 앞에 어울리지 않는 비닐 천막이 있다. 처음으로 농성장에 직접 몸을 들였다. 눈발이 날리자 돗자리와 비닐로 덮어 놓은 농성장도 같이 흔들렸다. 무너질까 불안하다.

“진짜 가난한 사람이 사는 집이 꼭 이럴 것 같다.”

반도체 산업의 성공적이고 화려한 이미지에 가려진 노동자의 참담한 현실에 대해 듣자, 김홍식 부제(대구대교구)는 “어떤 사제가 돼야 할지 다시 한번 성찰하게 됐다”고 했다.

▲ 16일 신학생들이 반올림 농성장을 찾아 이종란 노무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배선영 기자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이종란 노무사는 농성장을 찾은 신학생들에게 9년간의 투쟁을 들려줬다.

2007년 황상기 씨의 제보로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알려졌다. 황상기 씨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다. 2007년 6월 산업재해 신청을 했지만, 2014년이 돼서야 법원에서 산업재해 인정을 받았다. 그 사이 황유미 씨의 이야기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으로 만들어졌다.

피해자 가족을 대리하고 있는 반올림은 삼성의 독단적 태도에 항의하고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며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농성 133일째 신학생들의 방문을 반기며 이종란 노무사는 “노동사목의 존재가 큰 힘”라고 말했다. 지난해 성탄절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에서 핫팩 600개를 들고 찾아온 일을 이야기하며, 종교인의 연대에 고마워했다.

앞으로 사제가 되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하길 바라느냐는 신학생의 질문에 이 노무사는 “우리 사회가 어떤지 정확하게 아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부가 하느님의 뜻을 이 세상에 실현하기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는 사람이라면, 우리 세계가 어떻게 굴러가고 실재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동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농성장에서 나온 박천주 신학생(대구가톨릭대 신학대학 3학년)은 그동안 교회 안에만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신학교의 실습 프로그램은 주로 복지관에서 하는데, 그곳과는 또 다른 세상을 본 것이다.

▲ 신학생들은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을 방문한 뒤 느낀 점을 발표했다. ⓒ배선영 기자

‘전국 노동사목 관심 신학생 연수’는 신학생이 강의와 현장 방문 등을 통해 노동사목을 직접 체험하는 양성 프로그램이다. 연수를 기획한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부위원장 정수용 신부는 “(노동사목을) 생각과 열정만으로 준비한” 자신의 경험을 비춰 볼 때, 이번 연수로 사목을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신학생 15명이 모였다. 연수는 2월 15일부터 17일까지 진행됐으며, 16일에는 조를 나눠 노동자의 아픔이 있는 현장을 찾았다. 반올림 농성장 외에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KTX 해고 승무원,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사회단체 ‘장그래 살리기 운동본부’에 다녀온 뒤 느낀 점 등을 서로 나눴다.

대부분의 신학생은 노동자의 현실을 잘 알지 못했던 자신을 돌아보고, 사제가 되면 어떻게 이들을 도울지 성찰했다고 발표했다.

장그래 살리기 운동본부에 다녀온 황성준 신학생(서울대교구 대신학교 6학년)은 투쟁하는 사람에 대해 빨간 조끼를 입고 화를 발산하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보는 것이 다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며, 사리분별도 중요하지만 투쟁하는 이들을 찾아 함께 하는 것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발표를 들은 정수용 신부는 “신학교 안에서 보는 세상도 실제로 존재하고, 강남역 한복판에 있는 농성장에서 보는 세상도 실재한다. 새누리당 당사 앞에 있는 농성장에도 세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서 있는 곳이 다르면 풍경이 달라진다.”는 노동조합을 다룬 드라마 “송곳”의 대사를 인용하며, 가까이 가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세상을 알려고 노력하길 당부했다.

노동사목에 관심있는 신학생을 위한 연수는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주관으로 이번에 처음 진행됐으며, 매년 이어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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