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선의 ‘세븐’ - 1]

오늘부터 매달 둘째 화요일  "박한선의 '세븐'"은 칠죄종을 중심으로 정신의학적, 혹은 뇌과학적인 입장에서 시사적 이슈를 살펴봅니다. 칼럼을 맡아 주신 성 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박한선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1941년, 나치는 바르샤바의 유대인 수용지역, 즉 게토에 대한 새로운 계획을 승인했다. 이 계획에 따라서, 44만여 명에 이르는 유대인에게 하루 800칼로리의 열량과 3그램의 지방, 30그램 미만의 식물성 단백질만 제공했다. 많은 사람이 심각한 허기와 영양실조로 쓰러져 갔다. 그런데 게토에 살던 28명의 유대인 의사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서 기아, 즉 굶주림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로 뜻을 모았다. 물론 연구에 참여한 의사, 그들 자신의 정신과 신체가 가장 면밀하게 조사되었을 것이다.

“.... 그들은 감정이 밋밋해지고, 무기력해져서 어떤 의욕도 느끼지 못한다. 자신의 허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빵이나 고기를 보면 매우 공격적으로 변하여 맹렬하게 탈취한다.... 맥박과 호흡이 느려지고 환자가 제 정신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그러다가 결국 숨을 멎는다. 침대와 길거리에서 잠들면, 죽은 채로 아침을 맞는다. 그들은 먹을 것을 찾느라 몸을 애써 움직이는 동안 죽어 간다. 때로는 손에 빵을 쥐고서 죽는다.” - ‘기아병: 바르샤바 게토에 있는 유대인 내과 의사의 연구, 1979’

결국 20달 만에 4만 명이 죽었다. 연구에 참여한 의사도, 절반 이상이 굶어 죽었다.(겨우 살아난 사람도, 나중에 25만 명 이상이 가스실에서 사망했다) 이들은 타의에 의해, 탐식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삶을 살았지만, 여러모로 건강한 삶은 아니었다. 모든 인간은 먹어야 한다. 공기와 물 외에도, 40가지 이상의 영양소가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기원후 4세기경, 칠죄종(七罪宗, 다른 죄와 악습을 유발하는 일곱 가지 핵심 죄. 교만, 인색, 질투, 분노, 음욕, 탐욕, 나태)을 처음으로 제시한 수도사, 에바그리오 폰시코는 가장 심각하고 저급한 죄의 유혹이 바로 ‘탐식’이라고 생각했다.(그는 사실 8개의 목록을 제시했다) 그는 탐식이 비록 가장 낮은 수준의 육체적 유혹이지만, 또한 가장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교만이나 시기와 같은 유혹들은, 대개 없으면 없을수록 바람직하다. 그러나 식욕은 너무 덜해도, 또 너무 더해도 문제가 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는 일은 아주 어렵다.

▲ '탐식', 게오르크 에마누엘 오피츠.(1804)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탐식의 죄를 급하게 먹는 죄, 게걸스럽게 먹는 죄, 지나치게 먹는 죄, 까다롭게 먹는 죄, 사치스럽게 먹는 죄 등 다섯 가지로 구분했는데, 아마 뒤의 세가지는 당시 대다수의 평민들에게 피부에 별로 와 닿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긴 인류의 역사 동안, 음식에 까탈을 부리거나, 좋은 음식을 과하게 먹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했다. 과거에는 기아가 닥치면, 왕이라도 굶을 수 밖에 도리가 없었다.

1500년이 지난 지금, 그레고리오가 언급한 탐식의 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사실 정신의학의 영역에서 식욕이 지나치게 부족하거나 혹은 과다한 상태, 즉 신경성 식욕부진증이나 폭식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겨우 100여 년에 지나지 않는다. 19세기 빅토리아 시절 유럽의 귀족층에서 조금씩 보고되다가, 수십 년 전부터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한국, 일본을 포함한 선진국에서는 약 5-10퍼센트의 젊은 여성이 식이장애를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으나, 그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이마 부분에 있는 안와전두엽[OFC]은 만족감을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만족을 주는 대상을 잘 구분하지는 못한다. 고대하던 일을 성취하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고 느끼는 현상이 바로 이런 기전으로 인해 나타난다. 반대로 상실감 혹은 좌절감, 공허함 등을 느낄 때, 이러한 불만족스러움을 다른 종류의 쾌락으로 대신할 수도 있다. 자신의 뇌를 속여서, 스트레스를 달래고 불안감을 잠시나마 잊는 것이다. 주변에 온통 맛있는 것이 가득하니,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도 모르게 음식에 손이 갈 수 밖에 없다.

텔레비전을 켜면, 온통 먹방, 쿡방 열풍이다. 가히 음식 포르노의 시대다. 고급스러운 음식을 먹게 되면, 다들 경쟁적으로 SNS에 올리기 바쁘다. 유명한 ‘셰프’의 음식을 맛볼 수만 있다면, 긴 줄 서기도, 값비싼 청구서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낮에는 미식가처럼 까다롭고, 사치스럽게 음식을 가려 먹던 이들이, 밤이 되면 공허함을 이기지 못하고 치킨과 피자를 목구멍에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일부는 폭식 뒤에 밀려오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음식을 게워 낸다. 어떤 경우에는 정반대로 식사를 거부하는 이른바 ‘거식증’이 찾아온다. 체중을 줄이기 위해, 이뇨제와 하제를 남용한다. 독한 다이어트 약뿐만 아니라, 위험한 수술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들은 종종 기아 상태로 병원에 실려 온다. 이런 엉망진창이 또 있을까? 이쯤 되면 정신과 의사를 찾게 되지만, 상당수는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한다.

수도자 요한 카시아노는 인간의 타락이 육체적인 욕망, 특히 탐식에서 시작한다고 여겼다. 육체적 죄가 다른 영적 죄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이는 정신의학적으로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신체적 건강을 회복하기 전에는, 아무리 정신치료를 해 보아야 다 소용이 없다.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는 좋은 음식을 규칙적으로 제공하기만 해도, 상당수의 환자가 스스로 병든 몸과 마음을 회복한다. 병원에서는 모든 환자의 식사를 매 끼니마다 확인하는데, 필요하면 식사량과 성분까지도 정확하게 계산하여 처방한다. 균형 잡힌 섭식이 건강한 삶의 시작이다.

약 70년 전, 나치 독일은 바르샤바의 게토에서 4만 명을 굶겨 죽였다. 쉽게 씻을 수 없는, 인류에 대한 크나큰 죄악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식이장애로 사망하는 사람은, 적게 잡아도 매년 5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대부분은, 의학적으로 ‘굶어’ 죽는다. 탐식으로 인한 사망은 추산하기 어렵지만, 비만으로 인한 직접적인 사망은 미국 내에서만 매년 약 30만 명, 전 세계적으로는 매년 약 300만 명에 이르고 있다. 우리 현대인들은 우리 스스로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박한선
성 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성 안드레아병원 영성과 사회정신연구소 연구소장
성 안드레아병원에서 마음이 아픈 환자를 돌보는 한편,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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