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녀들을 위한 대안학교, '자오나 학교'

갈 곳이 없는 청소녀와 미혼모 청소녀들을 위한 ‘자오나 학교’에 17-19살의 청소녀 7명과 2명의 아기가 살고 있다.

2014년 10월 개교한 ‘자오나 학교’는 원죄없으신마리아 교육선교수녀회가 설립한 비인가 대안학교로 가정이 없는 청소녀들, 미혼모 청소녀와 아기가 함께 살며 공부할 수 있도록 모든 비용을 지원하는 기숙형 학교다.

교육부의 인가를 받는 경우, 학생들이 정말로 필요한 것을 제대로 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비인가 학교를 선택한 만큼, 학생들과 이들을 돌보는 교사, 수도자들은 “교육은 사랑”이라는 수도회 창립자 성녀 까르멘 살례스의 말의 의미를 체득하며 살아 내는 중이다.

서울 성북구 정릉 언덕길에 있는 학교에 들어서자, 따뜻한 기운과 함께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와 웃음소리가 들린다. 매주 한 번씩 열리는 전체회의 시간이다. 수업 내용, 생활 방침에 대해 전체 구성원들이 의견을 나누고 얼마나 지켜졌는지 확인하는 시간이다. 얼마 전부터는 학생들의 제안으로 ‘칭찬하기’ 시간이 더해졌다.

회의에 동참하던 교장 강명옥 수녀는, “칭찬할 수 있는 것도 큰 능력”이라면서, 학생들이 서로의 좋은 변화를 알아보고, 고마운 일에 감사하며 칭찬하는 모습도 큰 발전이라고 말했다.

 

▲ 오후 수업 시간, 학생들이 사진 수업을 받고 있다. ⓒ정현진 기자


"가장 재밌는 건, 아기 돌보는 일이에요"

지난해 8월부터 자오나 학교에 들어온 이비아 양(17)은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 때부터 홀로 자취를 하다가 안전 문제를 걱정한 지역 관할 경찰서 경찰관의 소개로 입학했다.

오로지 대학 진학에 초점을 맞춘 주입식 교육에 싫증을 느끼고 소모적이라는 생각에 검정고시를 택한 이 양은 처음에는 조금도 입학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워낙 독립심이 강해 홀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며 지냈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익숙치 않았다. 또 대안학교는 특별한 아이들의 학교라거나 일반 학교에서 쫓겨난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라는 선입견도 작용했다.

쫓겨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만둔 것인데, 학교 밖에 있다는 이유로 내몰린 존재처럼 여겨지는 것이 싫었다는 그는, “하지만 이곳에서 지내면서 그런 선입견은 눈녹듯 사라졌다”고 말했다.

“한 번만 가 보자”는 경찰관의 설득에 찾았던 학교는 너무 따뜻한 곳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마음을 끈 것은 그곳에 살고 있던 아기들이었다. 무엇이 가장 재미있느냐는 물음에 “아기 돌보는 것”이라고 답할 정도다.

혼자 살면서 도둑을 맞기도 했고, 사실 돈을 벌며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것이 버겁던 그는, “돈 문제가 가장 컸다”면서도, “하지만 지금은 더 큰 것을 얻고 있다. 처음엔 두려움이 많았지만 학교에 들어온 것은 정말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검정고시를 치르고 어릴 적 꿈이었던 경찰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해 나갈 계획이라는 이 양은 공부 외에 앞으로 텃밭을 가꿀 계획이며, 초콜릿 만들기를 배우는 재미 등을 자랑하면서, “부모님 반대 때문에 접었던 경찰관의 꿈을 다시 찾아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좋다”고 말했다.

우리만 꿈꾸던 이상, 지금은 함께 그리는 그림

아이들과 함께한 1년. 학생들은 물론 학교를 운영하는 교사와 수도자들에게도 성장과 변화의 시간이었다.

강명옥 수녀는, 개교 초기 2명의 아이를 떠나 보낸 일, 그 뒤 들어온 7명의 학생과 2명의 아기들과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학교를 준비할 때, 가졌던 포부들이 우리만의 그림, 이상이었다면,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그리는 그림, 아이들이 그리고 싶어하는 그림이 됐다”고 말했다.

기숙형 대안학교로 알려졌기 때문에 다양한 지원자들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오나 학교는 오갈 곳 없는 청소녀들과 출산을 한 청소녀들을 선택했다. 더 많은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바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쉼터가 아닌 ‘학교’에 중점을 두고 있고, 더 힘겨운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이자는 방침 때문이다.

그래서 자오나 학교는 학생들에게 따뜻하고 안전한 ‘집’, ‘가정’이면서도, 배움과 미래를 준비하는 터전이기도 하다. 현재 7명의 학생이 수업을 받고 있지만 교사는 9명, 생활을 돕는 이들까지 11명이 학생들을 돌본다. 학업을 중단한 시기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수준별, 관심 분야별 개별 수업을 하고, 무엇보다 각각의 학생들에게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두기 위해서다. 최대 20명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충분한 사랑’을 위해서 인원수에 대한 욕심은 내지 않을 생각이다.

학교 과정은 중등 2년, 고등 2년으로 총 4년이지만, 졸업 뒤의 ‘자립’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졸업과 자립 사이 중간 단계를 더 마련할 예정이다. 강명옥 수녀는 “지금 학생들도 졸업 이후의 상황을 많이 두려워하고, 경제적으로 바로 자립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학교 인근에 공동숙소를 마련해, 경제적으로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일정 부분 지원을 하고, 친정처럼 의지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강명옥 수녀가 집중하는 또 하나의 일은 후원자를 모으는 것이다. 비인가 학교이기 때문에 정부 지원금이 없어, 오로지 후원에만 기대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모 기업에서 청소년대상 비인가 단체를 지원하는 프로젝트에 선정돼 지원을 받고 있지만 2년 뒤 지원이 끊길 때를 대비해야 한다.

자오나 학교에서 중점에 두는 교육은 ‘진로 역량 과정’이다. 학생들이 관심 분야와 진로 계획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작성하면 그에 따른 과정을 밟아 나간다. 그러나 그에 앞서 필요한 것은 무력감을 극복하는 일이다. 강 수녀는, “‘뭐 하고 싶니’, ‘뭐가 되고 싶니’라는 흔한 질문도 받아 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아, 기본적으로 무력감을 갖고 있다.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고 싶다는 상상력이 필요하다”면서, 쉬운 일부터 성취하는 경험을 주기 위해 제빵, 한글 자격증 같은 것에 도전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함께 놀고 쉬는 공동 공간. 아기들이 있기 때문에 장난감이 가득하다. ⓒ정현진 기자

집? 학교? 가정학교!

자오나 학교는 집일까, 학교일까. 강명옥 수녀는 공간 자체가 합쳐졌기 때문에 학교와 집 개념이 섞여 있어 힘들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학생들에게 가정이 어떤 곳인지, 부모로부터 받는 가르침이 무엇인지, 그리고 가족으로부터 얻는 든든함을 느끼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 아이가 ‘여기는 나를 무시하지 않아서 좋아요’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존중받지 못했던 시간이 정말 힘들었던 거죠. 이곳에서 처음 운 아이도 있고요. 사랑받는다는 느낌, 존중받는 체험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체험이 내적인 힘을 주고, 학생들뿐만 아니라 우리 공동체 자체도 같이 단단해지고 있어요.”

강 수녀는, “자랑스러운 1기 졸업생이 되고 싶다”는 학생의 이야기가 가장 감동적이었다면서, 당시에는 표현하지 않지만, 누가 자신들을 어떻게 사랑하는지 기억하고 그것을 돌려주고 싶어 한다고 감사한 마음을 드러냈다.

학교를 준비할 때와 1년을 지낸 지금 무엇이 가장 달라졌느냐고 묻자, 강 수녀는 “처음에는 나무를 어디에 어떻게 심을 것인지를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올라가라고 하면 될 것 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무에 함께 올라가게 됐다”고 말했다.

청소년 미혼모들의 아이들 양육만 고민했지만, 돌아보니 청소녀들 역시 양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는 강명옥 수녀는, “아이들을 통해 우리가 배우고 있다. 자오나 학교의 대안은 이곳의 학생들을 가장 먼저 사랑하고 항상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학생들과 함께 행복에 오르는 동반의 과정이 정말 소중하다고 말했다.

학교 이름인 ‘자오나’는 ‘자캐오가 오른 나무’의 줄임말이다. 구원과 행복을 바라며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나무에 오른 자캐오처럼 이곳에서 살게 될 청소녀들과 그들의 아이들도 그렇게 행복과 구원의 자리에 오르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리고 지금 자오나 학교에 살고 있는 20명의 구성원들 모두 그 나무에 함께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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