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그냥 보면 평범한 대학생들의 일상 이야기처럼 보인다. 순끼 작가의 웹툰을 드라마로 만든 <tvN> “치즈 인더 트랩”이 화제다. 주인공인 홍설(김고은 분)을 둘러싼 학교생활과, 겨우겨우 마련하는 학비와 생활비, 줄줄이 이어진 알바의 나날. 안전 등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구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며 살아야 하는 자취방. 고달프고 궁색한 20대 초반의 ‘현실’이 꽤 잘 그려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초반 에피소드들이 굉장히 꼼꼼하게 그려지기도 했다. 경영학과 학생들끼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치열한 심리전과 경쟁과 질투심의 맨 얼굴을 소소한 일상에서의 태도들을 통해 그려내기도 했다. 홍설은 이런 속에서 늘 될 일도 안 되는 이유가 다 자기 탓인 듯한 무거운 마음이다. 홍설은 지쳐 가고, 관계들에 치여 심정적으로 ‘막다른’ 데까지 치닫게 됐다. 그런 와중에 같은 과 선배인 유정(박해진 분)의 여유와 홍설의 팍팍함이 대비되기도 했다. 대학이라는 공간을 요즘 대학생들에게 공감을 얻어낼 만큼 잘 그려냈다. 꽤나 살풍경하고 씁쓸하긴 하지만 말이다.

▲ "치즈 인더 트랩'의 유정(박해진 분, 위)과 홍설(김고은 분).(사진 출처 = tvN 홈페이지)
강 교수(황석정 분)의 조별 과제 5조 조장이 된 홍설이 비협조적인 조원들 때문에 힘들어하다 결국 혼자 날밤 새워 발표 준비를 하는 3회에서는 특히 그랬다. 조원들이 이기적일 수도 있고, 홍설이 타인을 설득하고 협조를 구하는 데 서툴 수도 있다. 어쨌든 밤새워 혼자 준비한 것을 교수님께 들키고, 전원 최하점을 받고 만다. 열심히 했지만 ‘올D’, 예외는 없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진짜 이야기는 사실, 오늘날 너무나 고단한 대학생들의 분투기가 아니다. 로맨스다. 그런데 로맨스치고는 또 독특하다. 남자 주인공이 그야말로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유정 선배’는 홍설에게 친절했다 싸늘했다 양쪽 얼굴을 오간다. 그가 왜 냉랭해졌는지 그가 왜 다정한지 홍설은 잘 알지 못한다. 위선과 위악을 수시로 오가는 속모를 유정 선배에게 그저 매혹당해 있다. 그가 자신에게 못되게 굴어서 마음고생을 꽤 해야 했고, 어느 날 갑자기 사귀자고 해서 사귀게 되었다.

이 작품의 매력은, 로맨스인 것 같은데 내내 뭔가 안심할 수 없는 긴장감이 돈다는 점이다. 달콤하다 싶으면 어이없이 상황이 뒤집히고, 곳곳에서 엉뚱한 일이 터진다. 인간의 위선과 위악에 대해서도 꽤 진지하게 그린다. 소소한 에피소드 속의 미묘한 갈등으로 ‘드라마’가 채워지고 있다. 특별한 사건이 없는데도 나름의 긴장감을 유지해, 어쨌든 보게 만든다. 인물들 간의 감정과 관계의 변화 등이 주요 흐름이다. 제목이 뜻하는 ‘덫’이 사방에 상존하는 느낌을 잘 살리고 있다.

일단 홍설 역을 맡은 김고은은 정말 흔한 여대생 같다. ‘일상’을 닮은 듯한 그녀의 생활, 주변에 있을 법한 대학생 같지만 실제로는 어디에도 없을 홍설만의 놀라운 사랑스러움. 박해진과 김고은은 물론 백인호 역의 서강준 등 배우들은, 그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제 역할을 해 내고 있다. 딱히 기억나는 일 없이도, 그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드라마’가 되고 있는 중이다. 웹툰 원작보다 더 ‘싱크로율’이 좋다는 칭찬까지 나올 정도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로맨스다. 아니, 신데렐라 스토리다. 유정은 재벌가 아들이다. 상속자인 동시에, 그 유능함과 치밀함으로 돈 많은 아버지까지 제 마음대로 조종하고 있다. 주변 누구도 다 그의 뜻대로 움직이게 한다. 그에게 불가능은 없어 보인다. 특히 사람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데 용하다. 그런 그가 주위에서 가장 ‘평범한’ 아이인 연애 초짜 홍설을 택했다. 돈 많고 대단한 유정에게, 홍설은 모든 면에서 휘둘린다.

그렇다. 아무리 ‘새로운’ 줄거리와 새로운 감정선을 가진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할지라도, 신데렐라 로맨스의 남자 주인공은 부유해야 한다. ‘치즈 인 더 트랩’의 유정은 그것을 잘 활용하고 있다. 그의 싸늘함은 시청자의 마음을 붙들고 그 달달함은 ‘치즈’를 녹이고,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스치고 또 스치는 스킨십은 드라마 중간 중간에 활력마저 준다. 케이블 드라마임에도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 중이기도 하다. 홍설은 착하지만 ‘자기’가 아직은 없다. 어려서일 수도, 그게 성향일 수도 있다. ‘신데렐라’의 변함없는 매력 중 하나는 자의식이 아닌 이런 투명함이다.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 기술적 진보도 놀랍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신데렐라’와 ‘왕자’의 불변의 고유성은 유지하며 자기 세계를 확장하는 로맨스의 진화도 놀랍다.

▲ "치즈 인더 트랩"의 한 장면.(사진 출처 = tvN 홈페이지)

 
 

김원(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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