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공포영화를 무서워서 잘 못 본다. 오컬트나 호러 장르에 대해 당연히 잘 모른다. 무서워서 못 보고, 못 보니 더 모르는 분야다. 말은 그렇게 한다, 취향이 아니라고. 실은 보고 싶어도 밤에 생각날까 봐 겁난다.

예전에 ‘전설의 고향’ 같은 소위 납량특집들도 ‘무서운지 안 무서운지’ 미리 잘 살펴보고 시청 여부를 정하곤 했다. 귀신이 나오는 전설 특유의 슬프고 애절한 이야기 방식은 좋았지만, ‘특수효과’나 시각적 이미지에 치중한 공포물은 눈을 뜨고 보지를 못한다. 그럼에도 공포물이 인간의 깊은 비밀과 슬픔에 접근하는 방식은 대단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최고의 공포물 속에는 때로 최고의 멜로가 들어 있기도 하다. 인간의 한계를 자각하게 하는 슬픔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를 더는 볼 수 없는, 사별 자체가 주는 극한의 슬픔이 근원적으로는 공포의 핵심인지도 모르겠다.

▲ 악령이 든 여학생 영신 역의 배우 박소담.(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며칠 전에야 영화 ‘검은 사제들’을 보았다. 순전히 500만 관객 돌파의 ‘대중성’만 믿고 보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재미있다’고 입소문 낸 것을 보면, 일방적으로 무서운 장면만 나오는 건 아닐 거라고 다소 안심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굉장히 재미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았다. 나도 모르게 손을 꼭 쥐고 보았다. 악령 들린 소녀 영신 역을 맡은 박소담의 연기력은 대단했다. 다음에 뭐가 나올지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도 보는 내내 궁금했다.

엑소시즘이나 악령이 출몰하는 영화들에 대해 어차피 아는 바가 없기에, 이 영화가 ‘다른’ 엑소시즘 영화들과 뭐가 어떻게 다른지는 모른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의 ‘주말영화’ 지면에 정민아 선생님이 쓰신 ‘검은 사제들’ 글을 읽고서야, 다른 오컬트 영화들처럼 장르적 ‘기본’은 충실히 따랐으며 ‘구마’장면도 잘 재현했다는 평을 듣고 있음을 알았다. 이런 장르 혹은 이런 소재로 성공한 어쩌면 유일한 한국영화라는 사실도 말이다.

▲ 최 부제 역의 배우 강동원과 구마 예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새끼 돼지.(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나로서는 앞으로도 비교해 볼 기회는 별로 없을 듯하다. 사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구마’ 장면들이나 좀 무서운 부분은 싹 잊었다. 묘하게도 억지로 잊으려 해서는 아닌데 영화 보는 도중에도 공포를 자극하는 장치들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팽팽한 긴장은 있었다. 하지만 그 긴장은 튼튼한 만듦새에서 온 것들이었다.

‘검은 사제들’은 자신이 ‘가톨릭’이라는 기반 아래 만들어진 영화임을 잘 알고 있다. 영화의 분위기며 느낌, 등장인물들의 성격은 물론이고 습성이나 사소한 태도 혹은 농담 한마디까지 모조리 한국 천주교의 틀 안에서 ‘가능한’ 혹은 가능해 보이는 리얼리티를 얻어내는 것이 어쩌면 이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 영화가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부터 제일 우려스러운 부분이었다. 심지어 감독은 자신을 모태 개신교 신자이며, 4년째 성당에 다니기는 하지만 천주교 신자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발상이 가능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어지간해서는, 개연성 부분에서 후한 점수를 받기 어려울 수도 있는 영화였다. 디테일에 사활이 달린 영화였을 수도 있다. ‘모태 천주교 신자’들이 봤을 때 (절대로) 튀는 부분이 없어야만 영화적 몰입이 가능한 작품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장르 영화를 만들 때, 가장 못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장재현 감독의 ‘검은 사제들’은 그것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엔딩 자막을 보면 정말로 한국 천주교의 수많은 사제와 관계자들의 도움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신기했다. 마치 영화 속 김 신부(김윤석 분)가 시나리오를 쓴 게 아닐까 착각할 정도였다. 사소한 디테일까지 완벽하게 ‘가톨릭’적이었다. 최 부제 역할의 강동원은 더할 수 없이 영화 속에 잘 스며 있었다. 게다가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수많은 배우들이 사제복을 입고 사제들이 쓰는 말과 행동을 마치 그런 ‘신분’인 듯이 수행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말이다.

그러나 영화는 가톨릭 신자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잘 만든 상업영화였다. 당연히 관객들은 종교나 교리와 전혀 상관없이 영화를 즐기면 되는 거였다. 대단히 진지하지만 재밌는 영화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자신의 가장 아픈 순간과의 직면을 피하지 않을 때, 피를 토하고 살을 찢고 나오는 ‘사령’과 맞설 수 있는 것일까. ‘구마’가 곧 ‘구원’에 대한 간절함이긴 했지만, 이 영화가 끝내 붙잡고 싶어 했던 구원의 신비는 인간성의 회복에서 오는 것이었다. 보편적 인류애와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의 회복. 인간이 그것을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최대한 기울일 때, 신도 인간을 돌보시는 게 아닐까.

영화 속 사제들은 말한다. 가톨릭은 가장 대중적인 종교라고. 미신과 맞서 인류 역사 속에서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변모해 온 종교라고. 그것이 가톨릭을 살아남게 했다고. 가장 대중적인 코드가 가장 대중지향적인 종교와 만났다. ‘검은 사제들’의 흥행 돌풍이 주는 메시지에 가장 긴장해야 할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한국 가톨릭 안의 구성원들이다.

▲ 김 신부 역의 배우 김윤석.(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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