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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 호떡[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42]

메리가 다니는 유치원은 아이들을 허구헌날 뛰어 놀게 해서 뭇 엄마들의 걱정을 산다. 너무 놀기만 한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당장 학습모드로 바뀌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런 유치원이라도 3주간의 방학 동안 명색이 방학숙제는 있다. 어디 놀러간 곳이나 읽은 책에 대해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어 붙여 완성하는 얇은 방학책이 그것인데, 개학을 하루 앞둔 오늘, 나는 그것이 거의 백지상태로 텅텅 비어 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증거로 부지런히 안 남겼다뿐이지 우리는 열심히 놀았고, 책도 어지간히 읽었기 때문에 방학책은 솔직담백하게 제출하자고 메리를 설득했다.

지금에 와서 억지로 채워 봤자 애한테 뭘 가르치겠냐 싶었는데(사실은 내가 귀찮아서) 메리는 내일 유치원 가서 ‘이야기 나누기’ 시간에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소개하려면 방학책에 사진은 꼭 붙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줏대 없는 나는 그럼 그러자고 하며 내친 김에 방학책에 소개된 요리활동인 ‘추운 겨울~ 가족과 함께 호~호~호떡 굽기’를 해 보자고 했다. 그래서 호떡 누름쇠가 사은품으로 붙어 있는 시판 찹쌀호떡믹스를 어렵게 준비하고 호떡 요리사를 모집했다.

   
▲ 화기애애한 요리시간. ⓒ김혜율

그랬더니.... 호떡으로 주린 배를 채울 것처럼 덤비는 메리와 욜라 외에도 ‘아이 러브 잇’이라고 흥분하는 베트남 이모도 아직 집에 안 갔고, 이틀 전 합류하여 다이어트 포기를 선언한 막냇동생까지 모였다. 상황이 이러하고 호떡믹스 레시피에 쓰인 대로라면 호떡믹스 한 봉지로 고작 호떡 8장을 구울 수 있다고 하니 계산에 어두운 나는 정당한 호떡 분배를 생각하느라 골치가 아파왔다.

그런 가운데 일단 호떡 반죽을 하고 호떡잼 가루를 가운데 넣어 동그랗게 빚을 때 까지는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그러나 내가 봐도 자꾸 해 보고 싶은 호떡 누름쇠가 요물이었는데, 그걸로 호떡을 납작하게 눌러 보겠다고 아이들 사이에서 싸움이 붙고 말았다. 활활 불타는 프라이팬을 앞에 두고 의자 위에 올라선 아이들의 몸싸움이 아비규환으로 치달았다. 특히 메리는 제 풀에 제가 흥분해 의자에서 구르듯 내려와서는 눈물로 온 얼굴을 칠갑하고 하이소프라노로 고함을 지르며 포효했다. 에헤이.... 싸움은 먼저 우는 사람이 지게 되는 거라고 내가 누누이 일렀건만! 비교적 덜 흥분한 욜라는 의자를 점령한 채 승리를 거머쥔 듯하였다. 요새 부쩍 아이언맨의 후계자가 되고 싶은 욜라다.

그건 그렇고 동그랗게 몸을 옹크린 채 타들어가는 가련한 호떡 반죽을 보니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집을 불바다로 만들고 싶지 않았던 나는 두 아이에게 불호령을 내리며 종전을 고했다. 그리고 패자의 눈물을 닦아 주고 진정시켜 바로 요리사로 복귀시키는 데 최선을 다했다.

순식간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호떡을 뒤집고 눌러서 납작하게 만드는 데 심취한 꼬마요리사들의 뒷모습을 보고 베트남 이모가 그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심장을 부여잡고 ‘크레이지(crazy)~~’어쩌고 했는데, 내가 참 크레이지하겠다는 말이었는지, 자기가 크레이지하단 건지, 아님 메리 이하 아이들이 크레이지하단 건지 경황이 없어서 자세히 알아보지 못했으나 그 모두를 포괄하기에 크레이지만큼 그럴싸한 영단어는 없을, 참 재미있었던 ‘추운 겨울, 가족과 함께~ 호~호~ 호떡 굽기’ 시간이었다.

물론 아이들과 같이 흥분해서 평정심을 잃고 언성을 높였던 나로서는 두 이모들에게 부끄러웠고 아이들에게는 화도 났지만 세 아이들 모두 2주가 넘게 폐렴 투병을 마친 직후라 그런지 이제야 아이들이 기운을 차렸구나 싶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이 아플 땐 평소에 좋아하는 과자조차도 먹질 못했기 때문에 뭐라도 먹는 그 모습도 대견하게 보였다.

베트남 이모는 아이들이 이럴 때 베트남에선 보통 부모가 아이 엉덩이를 ‘뱅! 뱅!’ 때려서 아이를 바로잡는다고 말했고, 내 동생도 어릴 때 막둥이답지 않은 거친(매도 맞고 쫓겨나기도 했던) 유년기를 보냈다고 고백하며, 아이들이 다 자라면 그때 자신을 때려서라도 가르치려 했던 엄마 심정을 이해하게 될 거라고 하며 주먹을 가다듬었다.

오! 잠깐만, 그대, 이모들이여! 나도 옛날에는 말로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건 ‘사랑의 매’로 아이의 나쁜 행동을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었던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오. 수십 골백 번을 가르치고 말로 해도 잘못하는 게 있으면 그건 그냥 내버려 두자고요.

이 세상에 ‘맞을 짓’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 누구도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그 누구가 설령 아이의 훈육을 책임지는 부모라 할지라도) 다른 누군가를, 그가 더욱이 명백히 자기보다 약자라면 그 어떤 ‘사랑의 매’도 무서운 폭력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라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고집불통 아이를 지켜보는 것은 고통스러우나, 울고 떼쓰고 성내고 하는 그 모습은 사실, 보는 것만으로도 아까운 찰나같은 아이의 어린시절이기에 그렇다오. 말로 타일러 안 되면 더 이상 말하길 그치고 그저 행동으로 보여 주려고 해 봅시다요. 내가 신사임당이 아닌데 어떻게 자식을 율곡 선생으로 기를 수 있을까 하고 저도 많이 생각하고 반성하는데요, 부모가 되는 것은 그래서 한마디로 말하면 극도의 인내심을 기르는 여정이 아닐까 저는 말하고 싶어요. 아이에 관한 한 참고 또 참고 기다려 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거 말예요. 고된 시집살이를 버텨 내려 했던 옛날 우리네 선조들의 가르침 ‘귀머거리 삼년, 벙어리 삼년’을 아이 키우기에도 써 먹는다면 요긴하겠네요.

   
▲ 호호냠냠 호떡 먹는 순간. ⓒ김혜율
아이들을 향해 켜 둔 채널을 몇 개 끈다고 해서 애들이 꼭 잘못되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에게 내가 생각하는 옳은 것, 최선의 것을 끊임없이 가르치고 강요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그대로 따라 주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오. 내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그저 말’은 세게 말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경우가 많았지요. 자기 자신의 마음이 움직여 행동하지 않는 것이라면 타인의 말은 ‘그저 말’에 불과하더군요. 나는 그래서 말 많은 부모보다 차라리 벙어리 부모가 아이를 잘 키우는 데 유리할 듯싶소. 의도된 귀머거리, 벙어리 훈련은 아이가 아주 어릴 때만 유용한 것도 아닐 거요. 아이가 커 가면서도 얼마나 잔소리를 하고 싶은 순간들이 많이 올까요.... 아이가 잘못된 선택을 할 때 바로잡아 주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릴 때가 얼마나 많을까요. 아이가 나이가 다 찼는데도 부모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행동을 보일 때도 말없이 정신 차리기를 기다릴 수만 있을까요.

나는 지금부터 바로 그런 순간에 ‘말하지 않고, 때리지 않고, 낙인찍지도 않으며, 그저 그 모습 그대로를 품에 안을 수 있는 내공’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소. 또 나중에 그런 고민을 최소한으로 하려면 지금 내가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의 부모가 되어야 할지, 나중에 아이가 커서 스스로의 길을 확신을 가지고 찾아갈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길러 주려면 부모로서 지금 무엇을 도와주어야 할까, 이런 생각들을 하지요. 물론 순간순간 그런 생각을 잊고 발끈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자꾸 돌아보는 겁니다. 수시로 ‘내 생각과 말과 행위’를 점검해 보는 겁니다. 개성 강하고 호소력 강한 세 아이들을 감당하기에는 내가 턱없이 부족하기에 그렇소. 애 키우기가 갈수록 힘이 든다고 토로하는 내게 인생 선배님 중 한 분이 한 말씀을 이모들과 함께 나누고 싶군요.

“아이가 부모에게 평생 할 수 있는 효도는 여섯 살까지 다하는 거래요. 지금은 힘들겠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이 순간이 제일 행복한 시간들이거든요.’라는 말, 참 기가 차지요? 조금 억울하기도 하고요. 말하자면 그저 뱃죵뱃죵 아기새 같은 이 작은 사람들이 그때 그때 물어 주는 소소한 기쁨의 순간들을 즐기고 스스로 날갯짓하여 하늘을 나는 모습을 감탄하며 음미하기에도 짧은 시간이라는 말씀인데요. 그리고 ‘여섯 살’로 대변되는 아기 시절이 지나면 부모는 자기가 보여 준 이상으로 아이한테 뭘 바라서도 강요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잖아요. 뭐 어쩌겠어요. 그 말이 맞는 것 같네요. 휴. 이모, 손바닥으로 ‘뱅 뱅!’ 하는 그 제스처일랑 거두시고, 또 막내 이모는 주먹 펴시고, 우리 다 같이 호호냠냠 호떡을 맛있게 먹기로 해요. 호떡 잼은 달콤하고 쌉싸레하고 아주 고소하네요~. 참, 호떡 먹다 싸우지는 않았냐구요? 네~ 다행히.

그 난리통에 모두들 입맛을 조금씩 잃은 덕택일까요. 호떡을 먹을 만큼 먹고 손을 탁탁 털고 난 자리에는 욜라가 두어 번 베어 먹은 둥근 잇자국이 선명한 호떡 한 장이 접시에 고스란히 남았다네요.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4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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