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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향기를 맡으면[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40]

로를 계속 안아 주고 업어 주고 부둥켜안고 있다 보니 허리가 아파왔다. 하지만 언제나 내게 우선순위는 ‘아이들 보필’이고 몸이 보내는 신호에 ‘내 몸 챙기기’는 늘 후순위로 팽개치는, 나는야 지고지순한 엄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형적 희생형 엄마라고는 볼 수 없다. 계속 나만 힘들고 죽도록 힘든 건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주로 내가 쌓은 공(?)을 아이들과 남편에게 생색내곤 한다. 나의 어려운 처지를 누군가 안타깝게 여겨 주고, 잘하든 못하든 백방으로 용을 쓰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가 알아 주기만 하면 피로가 싹 가시고 힘이 솟아나기 때문이다. 내 어릴 적 만화영화의 주인공이었던 꼬마자동차 붕붕이는 기름 대신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아나서 신나게 세계여행을 하고 엄마를 찾아 모험을 떠났는데, 나에겐 누군가의 격려의 말 한마디가 다 죽어 가는 나를 살리고 더욱 먼 곳까지 가게 만드는 ‘꽃향기’가 되는 것이다.

   
▲ 로를 목말 태워 주는 메리. 로가 머리카락을 잡아 뜯어도 참고 있는 메리와 욜라. ⓒ김혜율
나 : 얘들아~ 지금 엄마 보이지? 엄마 지금, 로 이유식 먹이면서 너희들 저녁 준비도 하고, 책도 읽어 주면서, 방금은 욜라 똥도 닦아 줬잖아. 응? 근데 또 책을 읽어 달라고 들고 오면 어떡해? 엄마는 이것 말고도 저기 쌓여 있는 빨래도 개야 하고 너희들 목욕도 시켜야 한단 말이야. 아~ 너희들은 이렇게 바쁜 엄마가 보이지 않니? 메리야? 욜라야? 지금 엄마 말 듣고 있니?”
메리 : 응?....(딴청)
욜라 : ....(드러누워 버림)
나 : (이익, 안 먹히네. 몸으로 보여 주자!)  으윽!

나는 그 자리에 철푸덕 쓰러지며 고개를 처박고 신음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적의 칼에 맞고 쓰러진 장수 같이 비극적이고 절박하였다.

나 : 으으으으..... 으으윽. 으으....

아니나 다를까 순간 침묵이 흐르고 엄마가 죽었나 살펴보는 아이들.

메리,욜라 : ..... 엄마아....
나 : 응....(이 엄마를 이제야 이해하는구나.... 엄만 괜찮아, 괜찮아~ 다시 힘을 낼게! 너희들이 있으니깐!)

나는 천천히, 그리고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자애로운 엄마의 모습으로 돌아온 내게 그러나 아이들이 하는 말이란.

욜라 : 엄마아!! 이거(책) 읽어 줘~~ 이거~~, 빨리 읽어 달라고!(온몸으로 버둥버둥)
메리 : 엄마! 아까부터 (책)읽어 달라고 했잖아~지금 뭐하는 거야!(사정없이, 피도 눈물도 없이!)
나 : .... 지금 읽어 주려고 했어. 이리 갖고 와 봐! 거기선 글자가 안 보이잖아~ 옛날 옛적에....(자포자기)

아이들이 내게 꽃을 건네지 않는다면 다음은 남편 차례다.

   
▲ 동생 로를 목말 태워 주는 형 욜라. ⓒ김혜율
나 : 오늘 어떻게 보냈는지 말할 힘도 없지만 조금만 말해 볼게. 오늘 아침 여덟 시부터....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알지? 근데 지금! 밤 11시가 넘을 때까지 진짜 단 일 분도 쉬지 않고 쭉 달렸어. 핸드폰 볼 시간도 없었다니까? 전화가 오는지도 몰랐고 오전에 받은 문자를 이제 확인했다구! 와 세상에,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 있지?
남편 : 햐.... 진짜 고생했네. 로는 낮에 잠 좀 잤어?

나: “그럴 리가! 내 등에 업혀서 두 시간 정도 잤나? 눕히면 깨지 뭐. 종일 업고 있었어. 업고 밥하고, 업고 설거지 하고, 업고 빨래 널고, 업고 메리, 욜라 목욕까지 시켰어. 상상해 봐! 로를 업고 메리 머리를 감기는데.... 허리가 휜다 휘어. 그러고 머리 말리고, 옷 입히고. 근데, 애들이 어디 말을 듣나, 낄낄대며 도망다니지. 나는 로를 업고서.... 으흑.(감정이 복받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남편: 허리는? 허리 괜찮아?
나: 아니.... 허리 아픈 지 한참 됐어. 자고 나도 아픈 게 가시질 않네. 막 여기가 땡기고.
남편: 그럼 안 되는데.... 내가 근육 좀 풀어 줄게. 잠깐 앉아 봐.
나: 아냐, 됐어. 소용없어!

손을 뿌리치며 자못 뿌루퉁해지는 나를 남편이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내 몸은 내가 알아. 허리, 엉치 아픈 지 지금 몇 년째야.... 응? 그게 다 애 낳고 키운다고 이렇게 된 거잖아? 내가 이십대 때 어디 아픈 거 봤어? 없지, 응? 지리산 야간등반도 했었지. 그랬던 내가! 내가! 어흐흑!(철푸덕!)”

참 많이도 엎어지는 하루다. 그러나 딱 나만큼 피곤하고 몸살 기운이 있는 남편은 내가 뿌리치는 손을 미련 없이 거두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내 코를 골며 잠을 잔다.

아이 젠장. 나는 꽃향기를 맡지 못했다. 빨간 불. 연료 없음! 하고 깜빡이며 시동이 꺼져 버린다. 차라리 비분강개하여 탁자를 탕! 하고 내리치는 편이 훨씬 나을 텐데. 이렇듯 육아나 일상의 힘겨움을 해결하는 데 남의 반응에 주로 의존하는 나는 누가 나의 고생을 무시하거나 가벼이 보아 넘기고 심지어 비웃거나 하면 그게 그렇게 억울하다 못해 힘이 빠져 버리는 것이다.

   
▲ 자동차놀이 하는 형제. 로의 머리 위로 자동차를 운전하는 욜라의 개구진 손. ⓒ김혜율
나는 잘해 보려고 애쓰고 있는데 왜 그걸 몰라주나, 나는 한시도 편할 날 없는데 왜 그걸 몰라주나, 하며 투정을 부렸다. 그러면서 나는 정작 나(내 몸)를 내버려 두는 잘못을 저지르곤 하였다! 아프거나 말거나, 배가 고프거나 말거나 제때 몰라 보았고, 대충 보아 넘겼다. “이 비루한 몸뚱어리 따위!”하고 무시하기도 하였다. 내 앞에 쌓여 있는 많은 일들, 다 내 책임인 일들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다 머털도사의 머리털이라도 빌려 나를 열 명 스무 명이라도 더 만들고 싶은 날이면 그저 내 머리털을 쥐어뜯으며 슬퍼하기는 쉬웠다. 머리로 아는 만큼 마음이 따라 주는 일이 항상 어려웠다. 그럴 때 나를 구원하는 것은 때로는 아프고 병든 몸이었으니! 몸은 “이봐요. 그만 엎어져서 울고 날 좀 봐요, 날. 당신은 이 몸을 벗어나서 존재한다고 생각하나요? 여기 있는 나를 당신 영혼보다 우선해서 보살피고 사랑해 줘요.” 하며 격렬하거나 지긋지긋한 통증으로 나를 일으키고자 하였다. 오오 고마운 내 몸이여. 내 고통이여. 내 병이여.

나는 뻐근한 허리를 부여잡고 비장하게 일어나 불교의 어느 경전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세상에 마치 나 혼자뿐인 것처럼. 마치 엄마 없는 아이가 된 것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그리하여 내가 사자와도 같이 의연하게, 거리낄 것 없는 바람처럼, 연꽃 같은 고결함으로 무소의 뿔을 달고 고독하게 한 걸음 내디뎠을 때였다.

오늘도 자기 혼자 단잠을 자고 난 남편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그리고 한사코 내 어깨와 종아리를 꾹꾹 풀어 주며 말하는 것이었다.

“참, 혜율이, 나랑 한의원 가 보자. 척추 골반 교정을 전문으로 하는 곳인데 꽤 유명하더라고. 오늘 당장 가 보자.”

메리와 욜라가 어느새 조르륵 다가와 내게 묻는다.

“엄마, 왜? 어디 아파?” 착한 짓 하는 걸 부끄러워하는 메리와 욜라가 내 다리를 살짝 주무르더니 싱글거리며 먼저 놀던 곳으로 다시 뛰어간다.

사람은 밥만으로 살 수가 없듯 무소의 뿔처럼 고독하기만 해서도 곤란할 것 같다. 때때로 ‘꽃향기’를 맡은 힘으로 제 안의 바퀴를 움직이며 사는 것인가 보다 한다. 스르륵. 덜컹덜컹. 덜커덩. 엄마 없는 어떤 아이가 엄마를 찾아 길을 나선다. 그 길은 어렵고 험한 길이다. 하지만 ‘헤쳐나간다. 희망과 사랑을 심어주면서. 아하 신나게 달린다.’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4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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