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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한 아이들[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41]

우리 집에 특별한 손님이 왔다. 그 손님은 베트남 호찌민에서 영화 쪽 일을 하는 미혼의 골드미스다. 그녀는 자국에서 커피숍 사업을 위한 메뉴 개발과 매장 인테리어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리고 지난 여름 베트남에서 그녀의 가족들로부터 술과 음식이 가득한 환대를 받고 깊은 감동을 받은 바 있는 남편은 이번엔 그녀를 우리 집으로 초대한 것이다. 중간 서울 일정 일주일을 제외한 앞뒤로 일주일, 약 2주 동안을 우리 집에서 지내기로 하였다.

   
▲ 웰컴! 베트남 이모~.(사진 제공 = 김혜율)
원래 집에서 노는 아이 욜라와 겨울방학을 맞이하여 집에서 같이 놀게 된 메리에게 나는 베트남에서 이모가 온다고 알려 주었다. 듣자하니 베트남의 그녀는 메리, 욜라, 로 또래의 친조카 세 명과 같이 살고 있으며, 결혼한 친구들이 낳은 수많은 조카들을 가진, 아이들과 놀아 주는 데 상당한 역량을 가진 ‘이모’라 하였다. 역시나 이모의 커다란 트렁크 가방엔 우리 아이들과 놀아 줄 각종 아이템들이 가득하였다. 내가 아이 셋을 보며 고군분투한다는 것을 바다 건너 그녀마저 예상하고 나의 고됨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려 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 귀한 손님을 맞이함에도 우리 집은 방이 달랑 하나여서 거실 한 편에다 그녀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지 기온 섭씨 30도를 웃도는 곳에서 온 마음씨 착한 손님이 추위에 떨면 안 되기에 특별히 실내용 난방텐트를 마련해 놓은 것 외엔 나는 별로 해 줄 게 없었다. 요리 실력이 십 년째 늘지 않는 내가 하루 세 끼 융숭한 대접을, 그것도 그녀의 입맛에 맞게 해 내는 건 애초에 포기했고 집 나서봤자 그루터기만 남은 논에 하얀 비닐에 동글동글 묶인 짚단더미만 굴러다니는 풍경도 크게 볼거리는 아니겠다 싶었다.

그녀의 유창한 영어와 중학교 1학년 2학기 수준의 내 영어회화 수준이 만났어도 대화는 가능했다. 그녀가 나에게 나이보다 10년은 어려 보이며 아이 셋을 낳은 엄마라기엔 ‘unbelievable’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온몸에 그루브를 넣으며 ‘하핫 지금 농담하는 거지?’ 하고선 높은 안목을 가진 그녀에게 기필코 갈비의 핏물이라도 빼서 한국의 맛과 멋을 보여 주리라 마음먹었다. 물론 그 사이 로는 머리를 내 옆구리에 박고 숨어 있다가 이모랑 눈이 마주칠 때마다 울고불고 야단이었고, 욜라는 옆에서 얼쩡거리며 슬쩍슬쩍 고개를 들이밀다가 이모가 애정 어린 시선으로 포옹이라도 할라치면 콧잔등을 찡긋거리면서 뱅그르르 빠져나갔다. 메리는 헬로! 이 말 한마디 이후론 자기는 영어는 전혀 할 줄 모르며 한국어조차 왠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너스레를 떨며 구석에 짱박혀 이쪽만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 이모와 놀고 있는 메리와 욜라. ⓒ김혜율
하지만 그날 저녁부터 욜라의 본격적인 변신로봇 공격이 시작되었다. ‘나쁜 놈’ 이모는 계속되는 로봇 파워공격에 비명을 지르며 여러 번 쓰러지려고 했다. 그녀한테는 유감이지만 오늘 내가 욜라의 공격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어 어쩐지 다행이었다. 메리는 그 와중에 빗과 고무줄, 헤어롤 따위를 가지고 와 이모 머리를 땋아 주네, 파마를 해 주네 하며 바쁘다. 아아, 어지간히 따갑고 성가신 저 놀이. 당하는 자는 말초신경이 곤두서는 고문과도 같은 공포의 미용실 놀이가 시작된 것이다.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 후보로 진지하게 거론됐던 미용실습용 헤어 마네킹만이 메리의 미용실놀이로부터 내 머리카락과 두피를 보호해 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또 드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일순 웃음기가 가시고 당혹한 기색이 비쳤을 때 나는 그녀를 구해야 하는 순간임을 알았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그녀를 잃고 말 것이다! 내가 로봇을 재빨리 납치해서 우주 밖으로 던져 버리고 그녀의 탐스런 머리카락을 대신해 나의 구슬픈 머리카락을 제물로 올려 놓음으로써 일순간의 혼란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욜라의 깡패짓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이모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낄낄대며 도망갔다 왔다 하더니 급기야 나와 대화 중인 그녀의 등을 타고 목에 매달리는가 싶더니 다리를 그녀의 양어깨에 올리고도 성에 안 차 머리 정수리를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이것이 무엇인고 하니, 인간 암벽등반이라고 부르는 욜라가 즐기는 일종의 스포츠다. 어깨까지는 뭐 목마 태운다 치면 참을 만한데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잡아 뜯듯이 하면서 머리 꼭대기까지 정복하려고 버둥대는 발에 까딱하면 급소를 맞아 골로 갈 수 있는데다 헝클어지는 머리하며 일그러지는 얼굴 모양새가 매우 볼썽사나워지는 몹쓸 놀이다. 그녀가 욜라와 놀아 주며 필요에 의해 배운 한국말, 처절히 내뱉은 최초의 한국말은 “하지 마!”였다. 내가 로를 업고 부엌에서 달그락

   
▲ 기도 중인 '나쁜 남자' 욜라. ⓒ김혜율
거리고 있으면 그녀의 “하지 마”, “하지 마”하는 소리가 언제나 들려오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줄곧 당하고 난 그녀가 따사로운 눈빛으로 욜라를 돌아보며 하는 말은 이랬다. “He is so cute!” 엥? 욜라가 귀엽단다. 나 이것 참. 욜라는 이상하게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다. 10살 소녀부터 대학생 누나들이 욜라에게 말을 걸고 관심을 보여 줄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어찌나 심드렁하게 구는지 모른다. 절대 대답 같은 건 안 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낙엽 줍기가 취미인 눈물 많은 여린 감성의 소유자로 상황 봐서 슬쩍 져 주기도 하고 찡긋 하고 웃는 얼굴로 손하트를 날려 주는 사랑스러운 아이인 것이다. 그것이 베트남 이모에게도 통하는가 보다. 욜라에게 언어란 아무런 장벽이 되지 않는다. “이모! 이모오! 우히히히~”하면서 마구 못살게 구는 그는 국제 깡패소년, 아니 그럼에도 치명적 매력으로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국제적 나 쁜 남 자! 그 이름은 욜라!

메리는 영어라는 언어장벽 앞에서 혀는 굳었지만 질풍노도의 반항기만은 멈추지 않았다. 예를 들면 1. (성질 건드리면)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든지 가출을 한다. 2. 고분함이라곤 눈꼽만큼도 없으며 매사 말대답을 하며 모진 말도 서슴지 않는다. 3. 상대가 누구든지 이겨 먹어야지 지고는 분해서 삼 일을 내리 운다.

내 인생 통틀어 가장 반항심을 표출했던 중학교 1학년 2학기 약 일주일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더라도 부모님 말씀에 성질을 버럭 내며 방문을 한두 번 크게 닫은 게 전부라서 반항심 쪽으로는 난 메리에게 명함도 못 내민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 모두들 조금은 지쳐 누우면 바로 잠이 들 것만 같은 밤에, 낮잠도 자지 않은 메리가 홀로 책상에 앉아 작업을 시작한다. 이모가 베트남에서 가져온 색깔 모래로 그림을 그리기를 꼼짝 않고 한 시간. 꼿꼿이 앉아서 눈에 불똥을 튀기며 작업을 하던 중 그만 지나가던 이모가 옆에서 좀 거들다 자기가 아끼는 색깔 모래를 뿌렸다고 난리가 났다. 아무리 아이의 투정이고 고집이라 하더라도 어찌나 추상같이 화를 내는지 그 꼴을 당할 때면 어른인데도 눈물이 핑 돌고 다시는 관여를 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아니나 다를까 이튿날 그녀는 우리 부부에게 어제 메리 일로 ‘아이 워즈 confused’했다고 조심스레 고백하였다.

   
▲ 베트남 이모의 숙소. ⓒ김혜율
아아, 메리는 국제적 반항의 아이콘! 게다가 메리의 열정, 에너지도 연구대상감이다. 내가 그간 이 아일 지치게 만들려고 별짓을 다 해 보았는데 다 헛수고였다. 그 어떤 것도 메리 자신이 수긍하지 않는 한 자기 자신을 지치게 만들지 못했다. 우선 아침에 마당에서 좀 논 뒤, 초등학교 운동장 만한 마당의 유치원에서 뛰어 놀고, 숲체험 한다고 산에 가고, 방방클럽(트렘플린 키즈카페)에 가서 한 시간 미친 듯 뛰고, 발레학원에서 고강도의 운동까지 하고 와서도 자정까지 거뜬히 놀다 자는 아이다. 원래 불면증을 앓고 있었다는 베트남 그녀는 메리와 방방클럽에 갔다 온 날 일찌감치 난방텐트 지퍼를 올렸고, 그 다음 날도, 그 그 다음 날도, “아임 어 리를 tired”하다면서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우리 아이들과의 놀이가 불면증까지도 날려 버릴 만큼 피곤했던가 보다. 국제적인 에너자이저와 함께 지내는 나 또한 어찌 매일매일이 피곤에 쩔지 않을 수 있을까. 아직까지 나의 갑상선 기능에 문제가 없는 건 어릴 때 많이 먹은 보약 덕택이라 믿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앞으로의 십 년을 준비해야 할 때다.(보약을 먹든 운동을 하든)

로의 국제적 명성 또한 제 누나, 형 못지 않은데, 베트남 그녀가 “하지 마” 다음으로 많이 한 한국말이 “로~, 로~ (울지마)”였다. 우지우지 막내둥이 로는 종일 나를 따라다니며 거의 하루 대부분 울음소리 배경을 깔아 주었다. 그냥 우는 것도 아니고 꼭 바짓가랑이를 잡고 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자기만 바라보고 자기만 안아 주길 바라는데, 어찌 사람이 동상이 아닐진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자기만 부둥켜 안고 있을 수 있나. 손님을 집에 모시고 순간순간 얼음땡 놀이를 하자니 참 난감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차를 타고 나가

   
▲ 울보 로.... 근데 자세히 보아도 눈물이 안 보인다. ⓒ김혜율
니 가는 내내 악을 쓰고 울어 귀가 멍멍한 가운데서도 앞만 보고 유유히 운전을 하는 내게 그녀가 안절부절못하며 물었다. “로는 차를 타면 항상 울어요?” 나는 “안 울 때도 있지만 한번 울면 절대 그치지 않아요. 하지만 너무 걱정 마세요. He is O.K.” 목적지에 다다라 차에서 로를 꺼내 주자 뚝 그치고 씨익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노래까지 부르는 로를 보더니 그녀는 안도하면서도 이것이 실제 상황임을 신기해 하고 믿을 수 없어 했다. 로는 못 말리는 고집쟁이인데다 꼬마 할리우드 액션 배우임을 그녀도 이제 알아챈 것 같았다. 나는 우리 아이들 개개인의 특성을 존중하고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언제나 다소 궁금해 하곤 했었다. 과연 내가 일상적으로 겪는 곤란이 아이들에 대한 나만의 문제인가, 아니면 보편적인 것인지에 대해. 일주일간 타국의 자칭타칭 유능한 베이비시터와 동고동락하면서 깨달은 것은 나는 지금까지 국제적으로도 통하는 매우 글로벌한 인재들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오들오들 추위에 떨면서도 용기 있게 홀로 당당히 서울 여행을 즐기고 있는 나의 친구, 그녀에게 이 말썽쟁이 글로벌 악동들을 다시 안겨 주기 위해 오늘 나는 머릿속으로 메뉴를 구상하였다. 그녀가 느끼는 한국의 맛과 멋이 부디 나와 우리 아이들로 인해 시고 쓰고 떫지만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4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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