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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듯 달랐던[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39]

무척이나 바쁜 아침 시간이지만 오늘이 바로 12월의 첫날이라는 것은 놓치지 않았다. 메리의 유치원 가방에 여벌 옷을 챙겨 넣고, 아이들의 밥그릇에 밥이 몇 숟가락이나 남았나 점검하면서 재빨리 달력 한 장을 넘겼다.

“얘들아~ 이제 12월이야,12월! 아유~ . 벌써 마지막이라니!”

마지막이라고 말 하는 내 얼굴에서 아쉬운 표정을 읽었나?

“엄마, 왜 12월이 마지막이야?” 하고 욜라가 묻는다.

“그건.... 12월 다음에는 13월이 없기 때문이야. 12월 다음엔 1월이 되어 다시 시작하는 거란다. 2015년에서 2016년으로 넘어가는 건데.... 그럼.... 우린 모두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되지.”

나는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다는 부분에서 아까보다 더 슬픈 표정을 지었지만 똑같은 부분에서 뭔가 멋진 것을 발견한 듯 얼굴이 환해지는 메리와 욜라는 이번엔 내 얼굴을 보지 못했다. 나는 언제나 날짜 그 자체뿐 아니라, 시간의 흐름, 그것이 흔적 지우는 나이듦에 대해서 생각한다.

어느 늦은 저녁, 볼일을 보고 집으로 오던 중 버블티나 한잔 할까 싶어 카페에 갔더니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우글우글했다. 카페는 안이고 밖이고 간에 앉을 자리가 전혀 없었다. 남편이 주문을 하는 사이 나는 어쩔 수 없이 카페 테라스 난간에 삐딱하게 기대서서 기다렸다. 어둠 속에 반쯤 몸이 잠겼다. 멀리서 보면 집에 들어가기는 싫고 딱히 할 일은 없어 거리를 쏘다니다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앙심을 품고 비뚤어진, 거칠지만 순수함을 간직한 방황의 아이콘, 젊은 여대생인가 싶지만, 가까이 와서 보면 그저 ‘불혹’이다. 얼굴에 검버섯이 필락말락 하고 손질 안 한 머리는 5대 5 가르마, 유행한 지 5년도 넘은 옷을 걸치고 있는 늙은 여자가 오늘 아이가 적신 기저귀 개수를 머리로 헤아리고 있다.

   
▲ 호시탐탐 분필을 노리는 로. ⓒ김혜율
그러고 있는데 주문을 마치고 온 일행인 듯한 남자가 다가와 마주보고 섰다. 멀리서 보면 두 사람은 서로 떨어져 서 있는 거리로 보아 그리 친밀하지는 않지만 야간의 로맨틱한 기운에 서로 농을 주고받으며 썸을 타는 젊은 커플인 듯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아니나 다를까 ‘불혹’이다. 서로에게 여유 있는 거리를 견지하는 ‘불혹의 커플’이다. 그런데 이 아저씨 아줌마는 왜 집 나온 청년들처럼 껄렁하게 테라스에 기대있고 난리야, 하고 생각할 테지. 하루 종일 계속된 가사노동과 육아와 바깥일로 지쳐서 똑바로 서있기 힘들어서 그런 건데. 아아, 나이가 드는 것, 그것은 한편으로 서글픈 일임에 틀림이 없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이 아니냐고? 아니다. 나는 그저 내가 지금 몇 살이고,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 잘 알고 있으려 하는 것뿐이다.

매서운 겨울 추위가 닥쳐 온 어느 날 아침, 무모하게 청바지를 입고 나가려는 남편의 등을 톡톡 치면서 “헤이, 요~ 우리 얼마 안 있음 불혹이야. 이십대 초반이 아니라구. 불혹이 엄동설한에 청바지 입고 나가면 얼어 죽지, 죽어. 그러다 한방에 훅 간다고.”하면서 충고해 준 것도 그래서였다. 그러지 않으면 지금이 언제지 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훌쩍 지나버린 시간들이 마치 놓쳐 버린 풍선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멍하고 있는 사이 미래의 누군가 타임머신을 타고 내가 현재 살고 있는 과거로의 여행을 몇 차례 하면서 아무도 몰래 내 주변의 역사 줄기를 바꿔 놓을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도 미세한 시간의 균열을 눈치 채려 언제나 시계를 보고 날짜를 세며 삶의 궤적을 더듬어 본다.

그러나 하루 종일 내가 하는 일이란 오늘과 어제가 같고, 그저께와 그끄저께가 같다는 것이 함정이다. 이번 주와 저번 주가 유사했으며, 이번 달과 저번 달이 구분이 안 간다. 나는 이제나 저제나 똥 기저귀를 빨았고, 이유식을 정성껏 만들어 팔 할을 내버렸으며, 언제나 급할 것 없는 메리를 아침마다 협박해 유치원에 보냈고, 욜라에게 5분마다 소리 지르기를 반복하다 득음을 하고, 분명 5분 전에 싹 치웠는데 5분 만에 더러워지는 방바닥에 5분마다 주저앉았고, ‘엄마가 곁에 있어도 엄마가 그리운’ 로의 그리움을 하루 종일 달래 주었다.

그리고 또 어느 샌가 쌓여 있는 똥 기저귀를 빨곤 했다. 내 2015년은 이렇게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집안일과 육아라는 두 행성 사이의 알력으로 멈추지 않고 끝없이 공전하는 피로한 별과도 같았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시간과는 달리 아이들의 하루하루는 천천히, 그리고 언제나 특별하게 흘러갔다. 메리가 작년에 입던 겨울 내복이 짤막해져 새 옷을 사야 할 때면 시간의 흐름이 준 변화에 기쁨을 느꼈고, 작년 이맘때 말문이 터져서 말을 시작 하던 욜라가 지금 제 누나와 말싸움을 하는 것을 볼 때면 지난 시간이 제 몫을 했구나 싶고, 작년엔 세상에 없던 로가 명백히 존재하며 나에게 묵직하게 안기는 때에는 이 아이들의 시간에 기대어 나의 일 년도 의미를 찾는다. 하지만 아이들의 성장을 뺀 나의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흘러가 버린 듯하다.

시골집으로 이사 온 지 벌써 1년 하고도 8개월이 훌쩍 흘렀다. 원체 가진 것이 거의 없는 우리 부부는 시골집으로 이사 오고서도 항상 이 집에서 더하기보다 뺄 것을 생각했다. 방은 한 개만 남기고, 김치냉장고를 없애고, 전기밥솥도 없애고, 가스레인지도 작은 걸로, 안 보는 책도 치우고, 덩치 큰 옷장은 아예 별채로 보내고 당장 입을 옷만 갖다 놓고 살았다. 마음이 가난한 자 행복하나니, 자발적인 가난을 사랑하는 우리는 그렇듯 ‘없이 지내는 것’에 마음이 더 편하였고, 없는 것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

   
▲ 변신로봇 선물받고 기뻐하는 메리와 욜라. ⓒ김혜율
그러나 본의 아니게 우리 집은 많은 이웃들이 보내 주시는 아이들 책과 옷, 각종 선물꾸러미로 더하기가 되어 언제나 넉넉했고 식구가 늘면서 살림도 더 늘어났다.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가장 큰 도움을 주신 신부님이 한 분 계신데 그간 마음으로만 고마움을 곱씹다 오늘에서야 만나 뵈었다. 우리에게 대가 없이 주신 도움을 돌려드려야 할 때이건만 마음처럼 되지 않아 죄송스럽다는 말을 꺼내야 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점심 밥상 위의 갈치조림을 다 먹을 때까지 신부님에게 그 말씀을 차마 드리지 못했던 남편은 집에 와 장탄식을 하였다. 아, 실로 서글픈 가난뱅이의 시절이어라!

시절이 그러해도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잠들기 전 감사 기도를 드린다. 기도 하는 시간을 매우 좋아하는 욜라가 장식장에서 촛대와 초, 성가정상과 묵주 등을 가져와 바닥에 배열한다. 그런 뒤 촛불을 켜고 저녁기도를 한다. 기도의 마지막은 ‘오늘 감사한 일 찾기’다.

남편: 우리 오늘 하루 재밌고 감사했던 일 말해 보자. 아빠는 음, 오늘 신부님 잘 만나고 돌아온 것이 감사합니다. 메리는?
메리: 난.... 유치원에서 훌라후프 돌린 거랑 집에 와서 모래놀이 한 거.
욜라: 나는 마당에 나가서 난로에 흙 뿌린 게 재밌었어!
나 : 엄마는 오늘 아침에 보일러에 기름을 넣어서 따뜻하게 지낼 수 있어서 감사하고 아빠가 일찍 들어와서 감사하고, 메리, 욜라, 로가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서 감사합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때, 오늘 하루도 어제와 같고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수밖에 없지만, 12월 한 달, 달력의 마지막 장은 매일 저녁 둘러 앉아 감사기도를 올릴 일이다. 거기에 내 이웃을 위한 기도를 조촐하게 더한다.

‘오늘 내 집에 따뜻한 촛불이 일렁이듯이 그(그녀)의 집에도 따스한 불빛이 흘러나오기를. 저마다의 밝은 기운으로 반짝이기를 기원합니다.’

   

▲ 저녁기도를 하는 메리와 욜라. ⓒ김혜율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4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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