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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영성
왜 해방신학인가? : 해방신학하기 1[홍인식 목사의 해방신학 이야기]
홍인식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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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24  19: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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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위기와 해방신학

나는 2014년 성정모 교수의 저서, "욕망 시장 그리고 종교"의 증보 번역 출판에 맞추어서 저자인 성정모 교수와 전국 여러 곳을 다니면서 해방신학 강연을 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방문 중에 나의 오래된 친구이며 신학동기인 동료목사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나를 만나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 식사는 하지 못했지만 차를 마시면서 재법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나에 대하여 몇 가지 궁금한 것을 물어 왔다.

첫째는 어떻게 아직도 젊었을 때의 신념을 놓치지 않고 세월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혁명적인 생각과 삶을 살고 있는가였다. 두 번째는 해방신학에 대해서 많이 궁금하고 배우고 싶다고 했다. 세 번째는 해방신학에 대하여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그러나 그 신학이 오늘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 교회의 개혁과 변혁을 위하여 신학적인 기초가 될 수 있다는 어렴풋한 생각이 든다고 했다.

   
▲ 기도하는 볼리비아 여성.(사진 출처 = en.wikipedia.org)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해방신학에 대하여 막연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해방신학에 대한 오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해방신학에 대하여 격렬하게 반대하면서 공산주의적 신학이라고 치부하면서 교회를 위해 하등 도움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교회 파괴적인 신학이라고 거부한다. 해방신학은 좌파라는 것이다.(나의 경우에도 부임해 가는 교회로부터 그런 소리를 들어야 했다. 해방신학을 하는 목사가 담임으로 왔으니 그 교회는 곧 망할 것이라는 소리 말이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면 내가 담임했다고 망한 교회는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숫적인 면에서는 성장하기도 했다. 아이러니 하지 않는가.)

최근 장신대의 모 교수가 교과서 국정화에 대하여 말하면서 좌파신학에 대하여 글과 강연을 통하여 공격하기도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오랜 세월동안 이런 반대와 거부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어 오기도 했다. 언젠가 나는 이러한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신학적 주홍글씨"가 내 이마에 쓰여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소수의 집단에서 해방신학에 대하여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들은 해방신학의 독특성과 상황성을 인정하면서 다양한 신학의 하나라고 받아들었다. 다시 말하면 교회 안에 존재하는 여러 다양한 신학 중의 하나로서 우리에게 새로운 신학적 방법론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해방신학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또 다른 면을 살펴볼 수 있으며 그러기에 유용한 것임을 말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해방신학에 대하여 위에 열거한 거부와 인정의 반응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반응들이 나오고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작금의 교회의 위기와 관련되어 나오는 반응이다. 이미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 교회는 위기상황이다. 그것은 가톨릭 혹은 개신교의 구분을 넘어서는 전반적인 위기라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하고 그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가나안 교인(교회 안나가는 교인)과 또 이에 반해 갈릴리 교인됨을 포기한 교인 등에 대한 연구도 있고 또 위기극복을 위한 대안적 교회에 대한 연구도 상당히 많이 진척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과연 위기는 어디서부터 오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이러한 실용적 접근 외에도 많은 사람들은 교회의 위기의 원인을 신학적인 면에서 찾아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학 뒤집기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해방신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대두되고 있다. 오늘의 교회 위기 극복에 해방신학이 가지고 있는 신학방법론이 신학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들이다. 해방신학의 "가난한 자들로부터 출발하는 신학 방법론"에 대한 관심이다. 위로부터의 신학에서 아래로부터의 신학으로의 탈바꿈이 어쩌면 우리의 믿음의 내용과 목회의 방향 그리고 성서 해석에 있어서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함으로써 오늘의 위기를 극복해 갈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신학의 해방'을 통하여 새로운 길을 모색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에 대한 관심이다. 신학이 바뀌면 성서해석도 바뀔 것이고 이에 따라 설교도 그리고 목회 양태도, 교회에 대한 생각도 바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나는 한국에서 목회하는 5년 동안 동료목사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씩 정기 모임을 하며 "성서 뒤집어 읽기" 를 인도해 본 경험이 있다. 그때 나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모호할 경우에는 우선 한국 교회가 하고 있는 일을 뒤집어서 그리고 거꾸로 해 보면 오히려 하느님의 뜻과 가까울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이다.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우리가 즐겨 읽어 왔던 성서 본문에 대하여 한국 교회가 갖고 있는 대체적인 해석과 이해를 뒤집어서 거꾸로 생각해 보자는 취지에서 모임의 이름을 "성서 뒤집어 읽어보기"로 정했던 적이 있다. 이 기간 동안 꽤 많은 성서 본문을 함께 읽으면서 뒤집어 읽기 혹은 거꾸로 이해하기를 시도했는데 함께한 분들이 자신의 실질적인 목회에 얼마나 적용을 해 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한국적 목회 상황에서 힘들지 않았겠나하는 막연한 짐작을 해 볼 뿐이다.

해방신학의 실제

   
▲ 레오나르두 보프.(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2014년 10월 이후 지금까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를 통하여 나는 해방신학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그의 태생으로부터 시작하여 신학내용의 전반에 걸쳐 기술해 왔다. 이제 해방신학에 대한 이야기도 점차 그 마무리를 해야 할 때가 됐다. 나는 그 마무리를 위하여 이제부터 몇 번에 걸쳐서 해방신학의 방법론을 중심으로 실제적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조직신학적인 측면에서 해방신학의 거시적인 내용들을 살펴보았다면 이제부터는 '해방신학: 실제로 하기' 라는 주제 아래에서 그 방법론의 구체적인 모습들을 미시적인 측면에서 다루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나는 레오나르두 보프와 클로도비스 보프 형제의 저서 “해방신학 하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보려고 한다. 그 뒤에 또 몇 번에 걸쳐서 그리고 해방신학의 성서읽기의 적용에 있어서 핵심적 방법인 "민중성서 읽기"의 실제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해방신학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참혹한 현실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브라질의 한 지방도시에서 있었던 일이다. 미사에 참석하고 있었던 40대의 여인 그러나 겉모습은 70대쯤으로 보이는 남루한 형색의 한 여인이 본당 신부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신부님, 제가 고해성사도 하지 않은 채 성체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죠?" 신부가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지도 못한 채 이렇게 답변했다. "신부님, 제가 오늘 미사에 늦게 도착했는데 이미 성찬례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3일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배고파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은 이미 성체(빵)를 나누어 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이나 받아 먹어서 조금이라도 배고픔을 잊기 위해 그렇게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신부의 눈에서는 한없는 눈물이 흘러 나왔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서는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요한 6,55.57)라는 예수의 말씀이 실질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브라질의 동북부 지방에서 발생한 일이다. 이 지역은 가뭄이 심한 지역으로서 세계에서 식량 부족 현상이 아주 심한 지역의 하나다. 이 지역에서 사목하는 한 주교가 목격한 일이다. 그는 어느 날 가정 방문을 마치고 본당으로 돌아오면서 엄청난 충격으로 혼돈에 빠져 있었다. 보좌 신부가 그에게 물었다. "주교님,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말할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을 목격했다네. 방금 대성당 앞에 세 자녀를 안고 있는 한 부인을 보았네. 그들은 한 눈에도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뚜렸했네. 그중의 한 아이는 부인의 가슴에 안겨 있었는데 이미 죽은 것처럼 보였지. 나는 그 부인에게 이렇게 말을 했어. 아이에게 젖을 좀 먹이시지요. 그러자 부인이 이렇게 답변했네. '주교님,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그러지 말고 아이에게 젖을 먹이라고 몇 차례나 이야기 했네. 그런데 부인은 그럴 수 없다고 계속해서 같은 답변을 했다네."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마침내 부인은 할 수 없이 가슴을 열어 보였다. 부인의 가슴을 본 주교는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가슴은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녀의 가슴은 피로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가슴에 매달려 있던 아이는 부인의 젖에서 피를 빨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에게 자신의 목숨(피)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주교는 부인 앞에 무릎을 꿇고 그녀의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그는 하느님에게 기도하면서 약속한다. 이러한 비참한 현실이 지속되는 한 매일 매일 한 어린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겠노라고. 그날 밤 주교를 찾아온 외딴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기초공동체의 한 지도자가 이렇게 보고한다.

   
▲ 1974년의 동 에우데르 카마라 주교.(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주교님, 이 지역의 모임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음식을 먹지 못해 기운이 없어 우리의 모임 장소까지 걸어올 수 있는 여력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임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집 안에 앉아 있거나 누워만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주교는 또 다시 가슴이 미어지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 주교는 가난한 민중들을 위하여 평생을 바쳤던 브라질 헤시피의 동 에우데르 카마라 주교였다. 그는 평생동안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자비와 동정의 마음으로 사목하였고 이러한 비참한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자신 스스로에게 물으면서 살았다. 그리고 그는 지금도 우리에게 똑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해방신학의 출발점:자비, 윤리적 분노 그리고 연대

해방신학은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한없는 자비와 동정으로부터 출발한다. 세계의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비참하고 암울한 현실의 삶에 대한 동정과 자비의 마음 없이는 어느 누구도 해방신학을 이해하거나 혹은 실천할 수 없다. 해방신학의 배경에는 이 같은 가난한 현실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상황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투쟁의 과정에서 생명을 향한 연대감이 자리잡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동정의 마음은 목자 없이 방황하는 백성들을 보면서 불쌍하게 여겼던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이다.

해방신학의 전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동정과 자비의 마음을 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비의 마음은 현장에 대한 정확한 이해로부터 시작한다. 현장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품는 자비는 값싼 그리고 마약과 같은 역할을 감당할 수도 있는 시혜적 베풂으로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더불어 시작되는 자비의 마음은 윤리적 분노를 동반하게 된다.

윤리적 분노는 무엇인가? 그것은 정확한 현장 이해와 더불어 발생한 자비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오늘 가난한 사람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객관적인 상태로 받아들이고 관망할 수 없게 될 때 발생한다. 그들의 마음에는 가난한 사람에 대해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자비의 마음과 더불어 이러한 상황을 일으키는 현실에 대한 분노가 동시에 터져 나온다. 그리고 이러한 분노는 그들로 하여금 더 이상 양비론의 입장에 서 있을 수 없도록 만든다. 객관적이고 양비론적 공평의 개념을 그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해방신학이 말하는 편파적인 하느님에 대한 생각은 바로 이러한 윤리적 분노로부터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참혹한 상황에 대한 윤리적 분노는 해방신학으로 하여금 상황변화 없는 자비와 동정은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상황은 단순한 자선행위를 통하여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경험하게 한다. 따라서 윤리적 분노와 더불어 상황변화를 위한 연대의 행위가 이어지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과의 연대는 해방신학자들로 하여금 상아탑에서 벗어나 가난한 사람들의 상황과 삶의 현장으로 내려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내려감은 그들로 하여금 신학을 가난한 사람의 자리로부터 다시 말하면 낮은 자리에서부터 바라보도록 만들었다.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하면서 그리고 윤리적 분노와 더불어 자비의 행동을 하면서 그들은 성경을 성찰하기 시작했다. 행동과 행위로 시작되는 해방신학의 해석학적 순환구조가 형성되는 순간이다.

해방신학은 조직적이고 사변적인 신학성찰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다. 해방신학의 발생의 배경에는 자비의 영성과 마음 그리고 참혹한 현실을 향한 윤리적 분노와 더불어 상황변화를 위한 연대의 영성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아야 한다. 해방신학은 구체적인 삶의 현장, 무엇보다도 생명 자체를 위협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상황으로부터 출발하였다.

홍인식 목사
파라과이 국립아순시온대학 경영학과 졸업. 장로회신학대학 신학대학원 졸업 M. DIV.
아르헨티나 연합신학대학에서 호세 미게스 보니노 박사 지도로 해방신학으로 신학박사 취득.
아르헨티나 연합신학대학 교수 역임. 쿠바 개신교신학대학 교수 역임.
현재 멕시코 장로교신학대학 교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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