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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영성
해방신학의 종말론 2[홍인식 목사의 해방신학 이야기]
홍인식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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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13  10:4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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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이어 해방신학의 종말론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 본다. 먼저 구티에레스의 "종말의 정치적 차원"에 대하여 살펴 본 뒤에 레오나르두 보프가 전통적 기독교 신학의 종말론적 주제, 다시 말하자면 죽음, 지옥, 천당, 최후의 심판에 대하여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를 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혼 소브리노의 하느님나라와의 연관성 속에서 종말론의 개념에 대하여 생각하려고 한다. 짧은 지면을 통하여 방대한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 여러 가지 무리가 있음을 감안하지만 그러나 되도록 이해하기 쉽도록 요약적으로 소개하려고 한다.

구티에레스의 종말의 정치적 차원

구티에레스는 종말은 보다 더 정의로운 사회의 건설의 향한 헌신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리고 그것은 종국에는 새로운 인간의 출현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종말론적인 생각은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부터 출발됨을 강조한다.

역사적 종말은 새로운 사회적 의식의 창출로서 해방적 유토피아를 향한다. 이런 의미에서 해방적 역사의 종말은 생산수단의 사회적 공유를 넘어서서 문화적 혁명 그리고 결정적인 자유로운 사회로의 이양을 위한 정치적 변화를 의미한다. 해방의 종말은 결국 전혀 다른 사회의 건설과 새로운 사회로부터 발생되는 새로운 인간론으로 귀결된다. 그것은 유토피아의 실현이기도 하다.

그에 의하면 선진 국가들에게 미래를 향한 종말은 과학과 기술 발전에 의한 자연의 정복과 또 그들 사회의 안정을 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서방국가에 의해 억압당하고 종속되어 있는 라틴아메리카인들에게 이같은 종말론적 미래는 억압의 심화과정으로 이해될 것이며 다양한 형태로 그들의 삶을 짓누르는 억압과 가난으로 인한 암울한 미래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라틴아메리카 상황에서의 종말에 대한 언급은 현상유지 현상에 대한 극복을 전제로 하는 정치적 차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라틴아메리카 민중들에게 종말론적 희망은 오직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없게 만들고 있는 모든 억압적인 권력과 경제적 구조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출발한다. 구티에레스는 종말론적 전망은 역사적 투쟁의 의무를 회피하는 것을 극복하는 것을 물론이고 구체적 사회적 실천을 통한 정치 차원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으로부터 전개된다. 그런 의미에서 희망과 복음적 선포의 정치 차원의 유기적 연관성, 역사적 유토피아와 이에 대한 믿음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놓인다. 결론적으로 구티에레스에게 있어서 종말은 희망, 정치구조의 변화를 추구하는 복음의 선포 그리고 유토피아에 대한 믿음의 차원에서 이해된다.

   
▲ "최후의 심판", 히에로니무스 보슈.(1482)

레오나르두 보프의 종말론 이해

보프는 종말에 대하여 “미래의 전망에서 현재를 말하기”로 정의한다. 그는 칼 라너의 생각을 따르면서 종말은 “미래에 발생할 사건에 대한 예지적인 기록이 아니다. 종말은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불충분하고 불완전한 현실 삶의 온전한 실현이다.”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보프에게 종말은 현재의 역사적인 삶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보프는 전통적인 종말론에 대하여 두 가지 측면에서 비판한다. 첫째는 전통적인 종말론의 현재의 삶에 대한 배제와 교회-중심적으로 전개되는 종말론의 형태다. 그는 전통적인 종말론이 현재를 소외시키며 오직 미래만을 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그것이 교회 혹은 기독교 중심으로 이해되고 있음을 비판한다. 보프는 그의 저서를 통하여 전통적인 종말론의 주제에 대하여 미래의 전망으로부터 성찰되는 현재적 의미를 부여한다.

1. 죽음: 그는 로마서 6장 23절의 죄의 품삯으로서 부정적 죽음이해와는 거리를 두면서 죽음은 “삶의 온전한 종말”이라고 이해한다. 보프는 삶의 종말을 끝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도달점이라고 이해한다. 어떤 의미에서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보프의 죽음에 대한 이 같은 이해를 통하여 그는 죽음을 일반적인 의미의 육체와 영혼의 분리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에게 인간의 생명은 육과 영으로 분리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2. 부활: 테야르 드샤르댕의 견해를 따라서 보프에게 부활은 “인간화의 마지막 정점”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부활은 인간화의 정점으로 이해될 수 있다. 부활은 인간 유토피아의 실현이며 희망의 원리 안에서 창조된 인간의 꽃 피움이다.” 부활은 단순한 생명의 깨어남을 넘어서서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3. 최후의 심판: 최후의 심판은 인간에게 새롭게 주어지는 최종 구원의 기회로 이해된다. “인간은 언젠가 하느님과 그리고 부활의 예수와 만나게 될 것이다. 그가 비록 그의 생애에서 하느님에 대해 전혀 듣거나 알고 있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 만남은 그에게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선택할 기회가 될 것이다.” 그는 최후의 심판을 저주와 징벌의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과 희망의 시간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에게 연옥의 존재는 “하느님 앞에 서기 위한 온전한 성숙의 과정”이다.

4. 천국과 지옥: 그는 저서 마지막 부분에서 천국과 지옥에 대해 언급한다. 천국은 “하느님 안에서 인간 존재의 온전하고 최종적인 존재의 실현이다.” 그것은 지리적 장소가 아니라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온전한 사랑을 만나고 체험하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천국은 이미 이 땅 위에서 전개되고 그리고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의 온전한 실현은 아직 완벽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지옥에 대해서 보프는 그의 존재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뿔 달린 악마와 같은 모습”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것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수많은 종교적 상상과 환상에 의해서 주입된 생각이라고 비판한다. 지옥도 천국과 마찬가지로 지리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황적인 의미로서 “상태”로 이해되어야 한다.

지옥은 온전한 인간적 삶의 실현의 실패를 의미한다. 이처럼 보프는 전통적인 종말론의 주재를 철저하게 현실적 상황과 연결하여 생각한다. 그리고 종말은 불충분한 현실의 삶의 모습이 온전한 변화를 경험하는 것과 연결되어 생각돼야 한다. 현재가 소외되는 미래의 종말은 그에게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혼 소브리노의 종말론 이해

신학에서 진정한 변화와 개혁은 기독교적 신앙과 관련되는 최종의 목표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신앙의 도달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답변하는가가 한 신학의 내용과 방향성을 결정짓는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가 전한 메시지가 지극히 종말론적이었음을 발견할 때 절실하게 느낄 것이다.

예수의 종말론적인 메시지는 하느님 나라를 향하고 있다. 해방신학은 그런 의미에서 종말론적인 질문과 그에 대해 답변하는 신학이다. 해방신학이 추구하는 종말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의 신학의 이름이 말해 주듯이 해방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해방이다. 그런 의미에서 해방신학은 근본적으로 종말론적 신학이다. 종말론적인 신학으로서 해방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종말론적 주제는 의심의 여지없이 하느님 나라다.

하느님의 나라는 불의한 정치적 경제적 체제의 현실 안에서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해방신학의 종말론적인 측면에서의 하느님나라의 강조는 그리스도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주장된다. 혼 소브리노에게 해방신학은 역사적 예수와 하느님나라에 대한 그의 메시지를 회복함으로써 현재를 역사화하는 시도라고 이해된다.

그에게 라틴아메리카에서 보이는 반(反) 하느님나라적 모습은 단순한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하느님의 나라”(not-yet-kingdom)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이곳의 현실은 “분명하게 하느님나라가 아니다”(clearly not Kingdom)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혼 소브리노에게 종말은 불의와 억압의 반하느님나라에 대항하여 전개되는 투쟁을 통하여 온다. 종말론적 하느님나라는 단순하게 “좋은 것들”로 가득한 세상을 넘어서서 “악한 것들”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해방신학의 종말론적인 시각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에 대해 여러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있을지라도 공통적으로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해방신학의 종말론은 초월적 시간의 차원을 넘어서서 현재 역사 안에서 일어나는 실질적 사건을 향하고 있으며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는 유토피아적 지평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과 더불어 종말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 교회의 종말론적 기대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현실에 눈을 감게 하고 초월적 역사를 바라보게만 만들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의 환각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시각을 현실을 넘어서 하느님나라를 향하게 함으로써 유토피아적 꿈을 회복하게 만드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해방신학의 종말론은 유토피아를 상실한 오늘의 세대를 향하여 목소리를 내고 있다. “승리의 그날까지 언제나”(Hasta la victoria siempre!)라고.

홍인식 목사
파라과이 국립아순시온대학 경영학과 졸업. 장로회신학대학 신학대학원 졸업 M. DIV.
아르헨티나 연합신학대학에서 호세 미게스 보니노 박사 지도로 해방신학으로 신학박사 취득.
아르헨티나 연합신학대학 교수 역임. 쿠바 개신교신학대학 교수 역임.
현재 멕시코 장로교신학대학 교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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