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단식하면서 연대하고, 연대하면서 함께하고, 함께하면서 기도하는 것. 우리에게 세상을 바꾸는 힘이 많지 않지만 깨어 있으며 함께 연대하는 것, 거기에 힘이 있다.”

지난 14일 물대포를 맞고 혼수상태인 백남기 씨(임마누엘, 68)의 치유를 바라며, 광주 남동성당(5.18 기념 성당)에 수도자와 신자 200여 명이 25일 모였다. 첫 미사가 시작되기 전, 성당 입구에서 가톨릭농민회 회원들이 백남기 씨의 쾌유를 기원하는 서명을 받고 있었다. 광주대교구가 단식기도를 하는 것은 이라크 파병 반대를 위한 단식 이후 13년 만이다.

▲ 25일 저녁 남동성당 입구에 있는 천막에서 광주교구 사제, 수도자, 가톨릭농민회 회원, 남동성당 사목회원들이 백남기 씨를 위해 기도를 하고 있다. ⓒ배선영 기자

광주대교구 옥현진 보좌 주교는 "(백남기 씨가) 보성본당 신자로 안타까운 일을 당했다"며, “같이 기도하고 잘못돼 가는 대한민국 사회에 경각심을 일으켰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정평위에서 주관해서 시작한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설명했다. 

가톨릭농민회 전남연합회 김도영 사무국장은 현재 ‘우리농’을 통해 먹는 메주, 된장, 고추장이 백남기 씨가 직접 농사 지은 콩으로 만들어졌다며 그에게 일어난 일은 남의 일이 아니라 친근한 우리 이웃의 일이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농 회원들이 백남기 씨 댁으로 매년 밀밭밟기, 메주만들기, 된장 담그기 체험 등을 갔다”고 덧붙였다. 김 사무국장은 백남기 씨가 1970-80년 대에도 열심히 활동했지만, 가톨릭농민회가 생명운동을 내세우며 유기농 농산물을 도시의 생활공동체와 직거래하는 방향으로 바뀐 뒤에도 열심히 하고 있다며, “지금도 누구보다 가까운 회원”이라고 강조했다.

백남기 씨는 1989-1991년 가톨릭농민회 전남연합회 8대 회장, 1992-93년 가톨릭농민회 전국부회장, 우리밀살리기 전국회장, 보성군농민회 감사 등을 맡았으며, 전남 보성에서 쌀, 밀, 콩 농사를 짓는 농부다.

현재 가톨릭농민회 전남연합회 회장인 김창화 씨는 백남기 씨와 30년간 동고동락한 사이다. 그는 백남기 씨가 입원한 뒤로 서울에서 계속 곁을 지키며, 가족들을 위로하고 병문안 온 손님들을 맞다가 단식 기도회 소식을 듣고 광주에 왔다. 그는 잠시 집안을 추스르고 다시 형제가 있는 서울로 올라간다고 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역사에 중심부에 계신다는 것.... 왜 당신인지.... 실감이 잘 안 난다.”

그는 14일 농민들이 상경한 것에 대해 “밥쌀이 수입되고 저가미가 방출되면서 쌀값이 폭락했고 콩 값도 떨어졌다. 이는 농민에게 생존권 위협”이라며 “농사지어서 그 소득으로 빚도 갚고, 생산비가 보장되게 해 달라고 항의하러 간 것”이라고 말했다. “적자고, 팔 것도 없다”고 한탄한 그는 농민이 안정되게 먹고 살아 보자는 마음으로 서울에 갔다가 혼수상태에 빠진 백남기 씨의 일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백남기 형제의 치유와 국가폭력 방지, 인간성 회복을 위한 9일 단식 기도회를 시작하며 광주대교구 옥현진 보좌주교의 주례로 남동성당에서 25일 미사가 봉헌됐다. ⓒ배선영 기자
이날 미사는 옥현진 보좌주교를 비롯해 교구 사제 35명이 공동으로 집전했다. 옥현진 주교는 아무리 외쳐도 듣지 않고, 들어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연대하고 함께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광주대교구라는 작은 울타리 안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이 지역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며 “4.13호헌조치 철폐를 위해 단식기도를 했을 때 전국의 모든 사제들이 연대하고 일어났다”고 강조했다.

정평위 위원장 이영선 신부는 미사 끝 무렵에 “이 단식은 단순히 먹는 것을 참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아픔에 동참하려는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며 이 기도회가 인간성 회복의 위한 작은 겨자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사가 끝나고, 오후 6시부터 성당 입구에 있는 천막에서 백남기 씨의 쾌유를 바라는 기도가 이어졌다. 세찬 바람이 부는 가운데 천막 안은 교구 사제들과 사랑의 씨튼수녀회 수녀들, 가톨릭농민회 회원, 남동성당 사목회원들로 가득 찼다.

이영선 신부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가난한 농민, 노동자들이 살기 힘들어 못 살겠다고 외치는 데 물대포를 쐈다”며 “누워 있는 것은 백남기 씨지만, 사실은 우리다. 가난한 사람들 모두가 누워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식 기도회는 12월 3일까지 이어지며 매일 오후 4시에는 미사가 열린다. 오전 7시, 오후 12시, 저녁 6시에 기도회가 있다. 저녁 7시에는 국가폭력, 선거법, 한국 노동자의 현실, 언론, 교과서 국정화 등에 관한 강연도 함께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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