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앞에서 만난 30년지기 임봉재 씨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쓰러져 사투를 벌인 지 5일째, 그가 입원해 있는 서울대병원 입구에 대책위원회 천막이 들어섰고, 회복을 기원하는 촛불 문화제가 매일 저녁 이어지고 있다.

19일에도 어김없이 100여 명의 시민이 모여 촛불을 들었다. 참석한 농민들은 “300만 농민들의 요구는 쌀개방 반대, 쌀값 보장, 고추값 보장, 배추값 보장이었고, 더 이상 절벽으로 몰지 말라는 절규”였다면서, 이런 농민들을 향해 살인적 진압을 자행한 책임자들의 처벌을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19일, 서울대병원 앞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백남기 씨의 회복을 비는 임봉재 씨. ⓒ정현진 기자

경북 상주에서 감 농사를 짓고 있는 한 농민은 올해 작황이 좋지 않아 힘든 상황이지만,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어 올라왔다면서, “나 한 사람이 힘이 될지 모르겠지만 꼭 작은 힘이라도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그는 11월 14일 이후, 정부와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의 발언을 보면서, “저것은 최후의 발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이 일로 그들의 운명도 함께 끝날 것이다. 부족한 힘이지만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위해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남기 형, 일어나야 합니다. 일어나서 할 말 해야 합니다. 농민과 이 나라 잘 되기를 바라며 보성군 산골에서 올라온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냐고, 형의 입으로 국민들에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10년간 백남기 씨와 함께 농민운동을 했던 이준희 씨는 백남기 씨와 국민들에게 꼭 할 이야기가 있어 일본에서 찾아왔다고 말했다.

▲ 백남기 농민.(사진 제공 = 가톨릭농민회)
그는 백남기 씨가 수도자의 길을 가려고 했지만 농민들의 현실을 두고 볼 수 없어 농민운동을 시작했고, 농민운동을 정치로 해결하려는 이들에게 통일이 농민의 살 길이며, 무기를 녹여 호미와 괭이로 만들어 농민이 중심이 되는 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가르쳤다며, “남기 형은 일어나야만 한다. 벌떡 일어나, 늘 이야기했던 것처럼 함께 술먹고, 노래하고 하나되는 힘으로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들자고 말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백남기 씨에 대한 지인들의 이야기는 한결같다. “5.18광주항쟁 유공자이지만 살아남은 자는 말이 없다며 끝까지 보상을 거부한 사람”, “강직하고 겸손하며 따뜻한 사람”, “막걸리를 즐기던 흥이 많은 사람”이라고 기억하는 이들은 백남기 씨가 쓰러진 밤, 응급실 앞에 모여 발을 구르며 “박정희 정권에 저항하며 그렇게 고생했는데 결국 그 딸에 의해 쓰러졌다”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11월 14일 소식을 듣자마자 백남기 씨를 보기 위해 서울대병원을 찾아 온 임봉재 씨(비비안나, 전 가톨릭농민회장)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면회를 갔는데, 평소와 같은 아주 평온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금방이라도 일어나 내 손을 잡고 흔들며 ‘누님 왔소’라고 인사할 것 같았다. 오히려 그 모습에 내가 위로를 받았는데, 그게 얼마나 미안하던지.... 대신 누워 있고 싶은 심정이다.”

임봉재 씨와 백남기 씨는 1986년 백남기 씨가 가톨릭농민회에 가입하던 때부터 만나 30년 지기로 살아왔다. 최근까지 두 부부가 임봉재 씨가 사는 산청에 오기도, 임봉재 씨가 보성으로 찾아가기도 하며, 서로 무엇이든 나누며 지냈다. 그런 백남기 씨를 병상에서 만난 그는 “그 차돌 같이 단단하고 따뜻했던 백남기가 저렇게 누워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임봉재 씨는 자신을 ‘큰누님’으로 부르던 백남기 씨에 대해, “강직하고, 책임감이 강했고, 부지런했던 사람. 그러면서도 나서지 않고 자신의 몫을 하던 따뜻한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백남기 씨는 겉으로 무뚝뚝하게 보이지만 누구보다 가족을 아꼈고, 늘 “나는 마누라 없이 못산다”며 고마움을 표하던 사람이었다.

14일 저녁 물대포를 맞을 당시, 백남기 씨는 먼 지역 농민들이 먼저 내려가는 중에도 경찰이 계속 물대포를 쏘자, “이제 다 끝나가니, 그만 쏘라”는 말을 외치며 앞으로 갔다가 직수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다.

▲ 농민들이 촛불문화제에 앞서 회복을 비는 기도를 드리고 있다. ⓒ정현진 기자

임봉재 씨가 차를 타고 출발한 것은 백남기 씨가 쓰러지기 약 10분 전, 고속도로에서 소식을 들은 뒤, “내가 먼저 떠난 것이 미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를 하는 내내 감정을 추스르느라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을 만큼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거듭 되뇌이면서, “백남기 형제는 오늘의 예수다. 이 암울한 시대에 예수로 누워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시민들에 대한 경찰의 폭력적 진압, 특히 백남기 씨를 향한 살인적 진압은 “명백히 국가공권력이 국민에 대해 테러를 가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테러범은 범죄자다. 그 테러를 지시한 박근혜 대통령 역시 범죄자이고,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봉재 씨는 “동영상을 보면서 충격을 받은 것은, 계속 죽으라고 쐈다는 것”이라면서, “돼지를 잡으려고 몰다가도 도망가는 것은 놔주는 법인데, 경찰은 사냥감을 죽을 때까지 물어뜯는 사냥개와 같았다”고 비판하면서, “이 상황은 용서라는 말조차 해당되지 않는다. 이 사건을 저지른 범죄자들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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