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광화문에서 물대포 맞아

가톨릭농민회 전 부회장인 백남기 씨(임마누엘, 68)가 직수 물대포에 맞아 혼수상태인 가운데, 활동 중인 가톨릭농민회를 비롯한 농민단체와 각계 시민사회단체가 경찰의 살인적 진압을 규탄하며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16일 정오 현재 백 씨의 상태는 위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남기 씨는 현재 광주대교구 가톨릭농민회 회원으로 1989-1991년 가톨릭농민회 전남연합회 8대 회장, 1992-93년 가톨릭농민회 전국부회장, 우리밀살리기 전국회장, 보성군농민회 감사 등을 맡으며 전남 보성에서 쌀, 밀, 콩 농사를 짓던 농부였다.

14일 오전 지역 농민 120여 명과 상경해 광화문에서 민중총궐기대회에 참석한 그는 농민단체 회원들과 함께 광화문 쪽으로 행진을 하던 중이었다. 앞장서서 행진을 하던 그가 길을 막고 있는 차벽 앞으로 다가선 오후 6시 56분 쯤, 경찰은 백남기 씨의 얼굴을 향해 물대포를 쐈고, 이를 맞은 백 씨는 그대로 뒤로 넘어져 머리를 부딪쳤다. 그러나 경찰은 약 20초간 넘어진 백 씨를 향해 물대포를 쏴 1미터 정도 밀려날 정도였으며, 이를 목격하고 구조하러 다가가는 시민들에게까지 물대포를 쐈다.

▲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뒤, 시민들이 구조하러 달려갈 당시까지 경찰은 물대포를 직수로 쐈다.(사진 제공 = <공무원U신문>)

당시 근처에 있던 기자가 취재를 멈추고 구조를 위해 다가갈 정도였으며, 목격한 바에 따르면 이미 백남기 씨는 코와 입에서 많은 피를 흘리고 있던 상태였다.

백남기 씨는 바로 인근 서울대병원으로 후송됐으며, 오후 11시 30분 쯤 뇌수술에 들어가 15일 새벽 4시 수술을 마쳤다. 그러나 처음 신경반응이 없어 수술시간이 많이 미뤄졌고, 이미 뇌출혈과 뇌부종이 심해 16일 현재까지 의식이 없는 상태다. 의료진의 설명에 따르면, 뇌출혈 뿐만 아니라 코뼈가 부러지는 등 다른 곳의 부상도 있으며, 특히 오른쪽 뇌가 많이 부어 의식이 회복되더라도 신체 마비 등 후유증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백남기 씨의 부상이 알려지자 서울대병원 응급실 앞에는 밤새 농민회 동료들을 비롯한 많은 시민들이 모여 회복 소식을 기다렸다.

한 농민은 “정말로 존경받는 지역의 어른이고, 농업을 통해 생명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애썼던 그야말로 순박한 농민”이었다고 안타까워하면서, 반드시 회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5일 오전 11시 민중총궐기투쟁본부는 서울대병원 응급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백남기 씨의 상태를 알리는 한편, 경찰의 살인 진압을 규탄했다. 또 오후에는 백 씨의 회복을 기원하는 미사와 촛불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전국가톨릭농민회 지도신부인 이영선 신부(광주대교구)는 기자회견에 참석해 1987년 최루탄 직격탄에 쓰러진 이한열 군을 상기하면서 “그 후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냈다. 역사와 민중을 우습게 보지 말라”고 말했다. “피눈물이 쏟아진다”며 참담한 심경을 드러낸 이 신부는, “이 정치를 통해 누구를 사랑하고 보살피고 싶은 것인가”라고 물으며, “바라건대 제발 자기 나라의 국민을 사랑하고, 특별히 가난하고 내쫓긴 이들을 보살펴 달라”고 말했다.

15일 오후 백남기 씨에 병자성사를 준 백광진 신부(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부위원장)는 이날 오후 4시 30분, 백남기 씨의 회복을 기원하는 미사를 신자, 수도자 40여 명과 함께 봉헌했다.

백 신부는 강론을 통해 백남기 씨의 쾌유를 기도하며, 시민들에 대한 경찰의 참담한 폭력을 제대로 직시하고, 우리가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다시 기억하고 각오를 다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그는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다만 떳떳하게 가슴을 펴고 ‘잘 사는 것’일 뿐”이라면서, 우리가 폭동이 아니라 잘 살기위해 목소리를 모은 것임을 이웃들에게도 잘 알리고, 폭력으로 대응한 이 정권을 반드시 심판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함께 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진 촛불집회에 참석한 이덕우 변호사(천주교인권위원회 운영위원)는 “쓰러진 시민에 직수 물대포를 쏜 경찰의 행태는 엄연히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행위’”라고 비판했다. 또 경찰이 차벽을 쌓은 것에 대해서도 국제인권협약에 위배되는 것으로, 위법행위를 한 것은 정부와 경찰임에도 폭력 시위, 불법 집회 운운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서영섭 신부(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는 이 일에 대한 책임은 단순히 대통령의 사과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며, 반드시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 신부는, 경찰의 이같은 폭력으로 인한 사태는 우연한 실수가 아니라 예견된 일이었다면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고 선과 정의를 실행해야 하는 정부는 그 의무를 다하지 않은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백남기 농민의 부상으로 인해 농민단체와 관련 가톨릭교회 단체 등은 입장표명과 사후 행동을 논의 중이며, 특히 농민단체 등은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 15일 오후 4시 30분, 응급실 앞에서 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비는 미사가 봉헌됐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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