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망재단 10년

한 달 만 원. 자동출금을 걸어 놓으면 신경도 안 쓰인다. 이 돈으로 정말 누군가의 삶이 달라질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 개인뿐 아니라 마을이 달라진다. 단, 방식이 문제다.

농장 노동자들이 쓰던 허름한 숙소건물을 학교로 쓸 수밖에 없던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한 농촌지역에 학교를 짓기로 했다. 비용을 지원하는 필수조건으로 “주민이 함께 할 것”을 내세웠다. 한국희망재단 이철순 상임이사는 단호했다. “당신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도 안 한다.”

▲ 짐바브웨 차카리지역 주민들은 소득창출을 위한 공동체를 만들었다. 이 생산품으로 자립기반을 마련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사진 제공 = 한국희망재단)

이 사업을 직접 주관하는 현지 NGO단체인 ABDO(Africa Book Development Organization)는 지자체에 집 짓는 기술자를 요청했고, 기술자 10명이 파견됐다. 이들을 중심으로 지역의 큰 마을 4곳이 각각 한 동씩 맡아 학교를 짓기 시작했다. 각각 맡은 마을에 따라 짓는 속도나 과정은 달랐지만 자신의 자녀들이 다닐 학교이기에 정성껏 지었다.

그 과정에서 마을 안에 소득창출을 위한 그룹들이 만들어졌다.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는 공동체, 닭을 기르는 공동체 등 주민들의 조직이 생긴 것이다. 이런 조직들이 생산한 물품은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고 경제적 자립으로 이어진다.

지난 10월 말, 이철순 상임이사가 학교를 찾았다. 아직 페인트칠 작업이 남았지만, 이미 학교는 운영되고 있었다. 그는 허름한 옷을 입은 아이들을 보고 한숨이 나왔지만, 아이들은 행복해했다. 그는 마을에 소문이 나 학생 수가 230여 명에서 500여 명으로 늘어난 것을 보고 교실이 모자라지 않을지 걱정이 됐다. 그래서 수업은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어서 진행되고 있었다.

이 이사가 학교를 방문한 날, 박람회가 열렸다. 소득창출을 위해 만든 자신들이 키운 닭, 직접 만든 바구니, 빵 등의 생산품이 늘어선 것을 보며 이 이사는 놀라웠다. 또한 이날 주민들이 연극공연을 했는데, ‘우리에겐 필요한 모든 것이 있다. 이제는 우리가 움직여 살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 한국희망재단이 현지 NGO단체인 ABDO와 협력해 짐바브웨에 초등학교를 지었다. 이철순 상임이사가 모파니파크 학생들에게 나눠 준 가방을 보여 주고 있다. ⓒ배선영 기자

차카리 지역에 지어진 이 모파니파크 학교는 짐바브웨의 롤모델이 됐다. 주민들이 직접 참여한 과정과 학교 건물의 증축방식을 배우기 위해 주변에서 견학을 오곤 한다.

한국희망재단은 ABDO와 6년을 함께했다. 도서관에 책을 공급하고 도서관 사서를 교육해 도서관이 효율적으로 운영되도록 지원하고, 도서관을 중심으로 독서, 젠더, 환경 워크숍과 캠페인을 열고 자기계발을 위한 주민역량강화 사업을 했다.

무엇보다 재단이 공을 들인 것은 협력단체인 ABDO의 활동가를 교육하는 것이었다. 재단 없이 그들 스스로 조직을 꾸리고 주민자립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처음에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작은 단체였지만, 이제는 지자체에서 예산을 짤 때도 이 단체를 참여시킬 만큼 성장했다.

“이 사업에서 주민은 어디에 있는가?”

재단은 지역주민들이 자립하는 것을 가장 중점에 둔다. 그래서 재단은 현지의 NGO단체와 연계해서 사업을 추진하며, 주민참여를 늘 강조하는 것이다. 직접 참여하면 삶은 더욱 재미있어진다. 이철순 이사는 이들이 즐겁고 기뻐하길 바란다. 그래서 공동체가 필요하다. 지역에서 공동으로 일궈낸 성취가 주민 모두의 즐거움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사업평가를 하는 시간. 이 이사는 자신이 느낀 놀라움과 뿌듯함은 숨긴 채 끊임없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현지 단체를 대할 때 그는 엄격하다. 질문을 통해 그들이 자극받길 원하고, 무엇보다 무작정 원조를 받던 것에 익숙한 이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차카리 지역이 자립하기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앞으로 3년. ABDO는 지역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코노미 액션 센터’를 만들 계획이다. 이 센터에 마트를 두고 지역에서 생산하는 것들을 교환, 판매할 수 있도록 하며, 한편에는 교육을 위한 공간을 만든다. 조직을 만들고 이끌 리더를 키우는 것이 목표다. 그렇게 자생력을 키우면 다른 지역에도 롤모델이 될 수 있다. 재단은 늘 그렇듯이 촘촘한 예산안과 사업계획을 꼼꼼히 살피고 함께 방향을 점검한 뒤 지원을 결정한다.

▲ 18일 한국희망재단 설립 10주년 행사가 열렸다. 이사장 최기식 신부와 후원자들. ⓒ배선영 기자
한국희망재단이 해외지부 설립이 아닌 현지 단체와 함께 지역의 자립을 지원한 지 10년이 됐다. 2005년 함세웅 신부가 첫 이사장을 맡았으며, 현재는 최기식 신부(원주교구)가 이사장이다. 현재 재단은 11개 나라에서 14개 현지 NGO와 22개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18일 재단은 설립 10주년 행사를 열고, 후원자에게 감사를 표현했다. 재단의 후원자 중에는 유난히 협동조합이 많은데, ‘공동의 즐거움’이라는 가치와 맞닿기 때문이다.

다른 해외원조단체도 마찬가지겠지만, 한국희망재단 역시 운영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모금”이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냐고 묻자, 이철순 이사는 “진심으로 하니까,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후원한다”고 답했다. 재단의 개인후원자들 대부분은 월수입 200만 원이 안 된다. 그렇기에 더욱 소중하고 감사하다.

여전히 세상 곳곳에는 너무도 가난한 사람이 많다. 이철순 이사의 꿈은 “우리 일이 없어지는 날이 오는 것”이다. ‘한국희망재단’이 없어도 되는 그날을 위해 재단은 오늘도 사람을 키우고, 희망을 키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