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11월이 되면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위령성월이 주는 무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들의 영혼을 기억하는 시기입니다. 서방 가톨릭 교회 안에서 이 시기를 위령성월로 지내게 된 것은 998년 무렵이라고 합니다. 프랑스 남동부 리용(리옹) 근처의 클뤼니에 세워졌던 베네딕도회 수도원에서 11월 2일을 위령의 날로 정해 연옥 영혼을 위한 미사를 봉헌했던 것이 널리 퍼져 나간 것입니다.

위령의 날이 하필 11월 2일인 것은, 그 전날인 11월 1일이 모든 성인의 날(모든 성인 대축일)이기 때문입니다. 모두 돌아가신 분들이긴 하지만, 1일에 기념하는 분들의 영혼은 이미 정화되어 천국에 오른 상태라고 한다면, 2일에 기념하는 영혼들은 아직 ‘정화 중’인 것입니다.

혹시 자기의 세례명 축일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하시는 분들은(예를 들어, 모세, 아론, 미르얌, 엘리야, 요나 등등 구약 성경의 인물들은) 11월 1일을 축일로 기념하시면 됩니다. 모든 성인의 축제날이니까요. 그리고 그 이튿날에는 위령의 날을 기념하여 모든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런데, 요즘 전세계적으로 상업화되었다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핼러윈(할로윈) 축제는 모든 성인의 날과 어떤 관계일까요? 민속학자들 중에는 핼러윈 축제가 켈트 문화의 추수시기에 벌였던 축제(Samhain, ‘여름의 끝’이라는 의미입니다. 추수를 염두에 둔 것이었습니다)가 그리스도교 전례로 대치되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10월 말과 11월 초라는 시기를 보면, 설득력 있는 설명으로 보입니다.

▲ 할로윈을 표현하는 이미지.(이미지 출처 = pixabay.com)

Halloween 혹은 Hallowe’en으로 표기되는 핼러윈이란 말은 “거룩한 저녁(holy evening)”이란 뜻으로, 스코틀랜드 단어인 ‘모든 핼로우들의 이브’(All Hallows’ Eve)라는 말에서 온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하면서 성탄 전야를 가리키는 것이 여기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즉, 스코틀랜드에서는 이브(원형은 even)가 e’en 이나 een으로 축약되어, All Hallows’ Even 이라고 표기될 것이 이것 저것 떼고, Halloween 으로 단어가 정리되었던 것입니다. 그럼 이제 여러분도 어림하실 수 있을 겁니다. Hallow가 Saint 즉, 성인이라는 것을요. 핼로우는 옛날 영어로서 성인을 의미하는 낱말입니다.

풍속적으로는 켈트 문화의 추수축제 시기와 만나고 있지만, 내용으로 볼 때는 성인들과 아직 연옥을 못 벗어난 채 정화 중인 영혼들을 기억하는 그리스도교의 예식이 담겨 있으며, 이 일련의 시기를 여는 축제가 핼러윈이라 하겠습니다. “모든 성인들의 축일 전야제”로서 말입니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우리 신앙 체계 안에서, 산 이와 죽은 이들이 기도로 일치하고 있다는 통공의 개념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따지고 보면, 인간 조건상 우리는 날마다 죽음에 가까이 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죽음을 잘 준비한다는 것은 곧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일궈가는 것임을 설명해 줍니다.

그러니 사는 것도 정성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는 이들도 정성껏 보내 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가 어릴 때는 종종 골목에 초상을 알리는 등이 달리고, 사람들이 조문을 오며 북적대던 집들을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대부분 병원 장례식장에서 깔끔하게 장례를 치르는 분위기입니다. 편의를 생각하면 훨씬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여겨지지만 어째 너무 가볍게 ‘처리’해 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삶과 죽음이 집과 병원으로 분명히 나뉘어 있는 듯해서 말입니다. 실제로 삶과 죽음은 우리 곁에 공존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이런 우리의 태도에 대해, 위령성월은 우리가 우리의 삶을 가볍게 여기지 않도록 도와 주는 전례시기라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했던 사람들 중에 우리 곁을 떠난 이들을 기도를 통해 불러, 들려 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전해 주고, 기도 중에 그 음성들을 들으며 정성껏 이 시기를 엮어 가시기 바랍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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