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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가 임진왜란 배후세력?[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요즈음 국가는 이런 오류 역사에 대해서는 아무 말 않고 친일파와 독재자를 미화하는 역사책을 국정으로 만들겠다고 국민들을 자극하고 갈라놓고 있군요. 정말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제가 해야 할 한 가지는 하고 가야겠습니다. 세간에 여전히 떠도는 황당한 소문에 대해 나름 답을 드리는 것입니다. 바로 잡아야 할 역사적 오류 정보들이 있는데, 그중에 으뜸갈 만한 한 가지가 바로, 예수회가 임진왜란의 배후세력이란 낭설입니다.

그리스도교 역사가인 일본 도쿄대 고노이 다카시 교수가 <사목>지에서 밝힌 내용(링크)을 토대로 설명하자면,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1592년에 예수회 일본관구는 사실상 아무런 힘이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쟁에 앞서 전쟁을 준비하던 시기에 계획을 수립하였는가? 사실은 그것도 아닙니다. 예수회원들이 1560년에 이미 수립했던 것은 전쟁이 아니라 조선 선교계획이었습니다. 일본으로 잡혀 와 있던 조선인들 중에 가톨릭 세례를 받은 이들이 생겨났고, 이들을 통해 이들의 고향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가능하리라 여겼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실제로 실현되지 못했던 것은 조선과 일본의 관계가 계속 긴장 국면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인터넷 블로그 등에는 악의적으로 예수회원들이 화총 제작 기술을 일본에 전해 준 것처럼 오해할 수 있도록 내용을 적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교에 나섰던 예수회원들은 단지 유럽에서 극동을 향해 항해하는 상선에 몸을 실었을 뿐입니다. 당시의 신학에서는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고 그 복음을 선포하는 것, 그리고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한 사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명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혼자서 노를 저어 일본까지 갈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일본에 서양 문물, 그중에서 특히 무기를 전해 준 사람들은 결국 상인들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예수회원들이 타고 간 상선의 상인들이 무기를 전해 줬다고 기술함으로써 얼핏 들으면, 예수회원들이 그 배의 실소유주처럼 이해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실소유주는 따로 있었는데 말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국내 통일과 동아시아의 패권을 쥐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던 인물입니다. 그래서 조선을 침략하여 중국까지 진출해 보려고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예수회는 그의 이런 태도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수도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1587년에 사제 추방 명령이 내려져서 짐을 싣고 규슈의 서남쪽 지방으로 숨어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을 배후 조종하다니요?

   
▲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점령한 우리나라 지역에 천주교 사제를 초대한 고니시 유키나가.(이미지 출처 = zh.wikipedia.org)
그리스도교 선교사로서는 어쩌면 역사상 최초로 조선땅을 밟은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는, 예수회의 그레고리오 세스페데스 신부와 일본인 수사 환칸 레안이 조선에 온 것은 1593년 12월이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 해에 조선 일부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영주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조선 남부에 10개 성을 쌓도록 요구했습니다. 이때 고니시는 가톨릭 신부들을 초청합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전의를 상실하고 탈영하는 병사들이 있었고, 그들 중 적잖은 이들이 그리스도교 신자였습니다. 고니시 역시 신자였고, 자신의 병사들에게 고해성사 등의 성사생활을 위해 사제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왔던 곳이 오늘날 경남 진해시 웅천동(웅천왜성)입니다.

세스페데스 신부는 웅천왜성에서 한 해 정도를 머물면서, 2000명 이상의 병사에게 고해성사를 줬다고 합니다. 그가 머물렀던 시기는 일본과 명나라가 화친 조약 회담을 진행하던 시기로 휴전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왜군 진영 밖으로 나가 조선인을 위한 선교는 불가능했던 상황이었으며, 애초에 조선에 온 목적도 병사들을 돕기 위한 것이었지 조선 선교를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고니시는 사제들을 공공연히 불러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닌 영주들이 그를 견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노이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일본의 예수회는 조선 침략전쟁에서 일본이 이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1598년 9월 4일 개최한 회의에서 이 전쟁을 부정의한 전쟁이었다고 확인하고 있습니다.

예수회 일본관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후, 일본으로 끌려온 조선인들에게 주목합니다.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교리를 가르쳤으며, 조선인을 예수회에 입회할 수 있도록 하여 교육시킨 뒤 조선으로 파견할 수 있도록 계획하였습니다. 그러나 1614년 1월 도쿠가와 이에야스 막부는 전국적으로 금교령을 내리고 교회들을 파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일본에는 19세기에 서양에 문을 열기까지 200여 년 동안 아무런 목자도 없이 오로지 평신도들만 남아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비밀리에 꾸려 나갔습니다. 그 신자들(기리시탄)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전교로부터 태어난 신앙의 후예들이었습니다. 첫 예수회원 중 한 사람이었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은 전쟁을 가르치거나 권모술수를 가르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길거리에서 자신에게 침을 뱉고 모욕을 주는 이에게 웃음으로 대함으로써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이 사건을 통해 첫 예비자들을 만났던 사람입니다.

속풀이 독자 여러분, 낭설로 인한 오해를 좀 푸셨는지요? 혹시나, 예수회원이 예수회를 변호하는 것이니 신뢰도가 영.... 하시는 분들은 다른 자료들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적어도 이 글이 기댄, 예수회원이 아니라 교회사 전문가인 고노이 교수의 연구는 매우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해 준다고 하겠습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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