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노덕 감독, 2015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뉜 것처럼 결이 다르다. 제목이 알려주는 바처럼 ‘연쇄살인을 다루는 기자의 특종’ 정도로 간단하게 개념화되지 않는다. 제목이 던지는 인상을 배반하는, 장르적으로나 서사적으로나 반전의 묘미로 가득하다. 전반부는 블랙코미디로, 후반부는 스릴러로 장르적 틀이 바뀌어서 서사가 전개된다.

이혼과 해고의 위기에 몰린 방송기자 무혁(조정석)은 우연한 제보로 연쇄살인사건과 관련한 일생일대의 특종을 터트린다. 하지만 그는 단독 입수한 연쇄살인범의 메모가 소설 '량첸살인기'의 한 구절임을 알게되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특종이 사상초유의 실수임을 깨닫는다. 보도국은 후속 보도를 기다리고, 경찰은 사건의 취재 과정을 밝히라며 무혁을 압박해온다. 게다가 진실을 알고 있다는 목격자까지 나타나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 속, 무혁이 보도한 오보 그대로 실제 살인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영화는 아무 단서도 없이 일어나는 도심의 연쇄살인사건의 내막을 추적하는 데 집중하는 추적극보다는, 범죄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디어 보도 현실을 풍자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 과정에서 ‘거짓과 진실’의 진위에 대한 현대사회의 접근법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영화 속 여러 가지 요소가 거짓과 진실의 우화를 둘러싸고 맞물린다.

무혁의 가정사 플롯과 직장생활 플롯이 병치되는데, 별개로 진행되는 것으로 보이던 두 개의 플롯이 후반부에서 한데 교차하며 영화의 거대한 주제를 밝히는 데 기여한다. 그것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 보드리야르가 1980년대 초반에 개념화한 ‘시뮬라시옹’, 즉 모사된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한다는, 현대사회의 특징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득을 가져오는 수단이 된다면 거짓도 진실로 둔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진실은 특정인의 이익에 따라 미궁 속으로 빠져버릴 수 있다. 여기에서 누군가의 목숨이나 정의는 고려할 대상이 아니다.

▲ 영화 '특종: 량첸살인기'의 한 장면. (사진 제공 = 퍼스트룩)
두 남녀의 이별에서 영화가 시작하여, 각기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라쇼몽 효과를 비튼 로맨틱 코미디 ‘연애의 온도(2013)’로 인상 깊은 데뷔를 한 노덕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여성감독이 멜로드라마나 로맨틱코미디에만 천착하는 것이 아님을 입증하듯이, 노덕 감독은 ‘특종: 량첸살인기’에서 잔혹 스릴러 구조와 폭발적인 액션 장면에도 능숙함을 보여준다. 두 개의 플롯을 유연하게 교차시키는 리듬감 넘치는 편집감각이 서스펜스를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다. 성공에 대한 욕망은 강렬하지만 능력이 받쳐주지 않아 어영부영하는, 안쓰러우면서도 허둥지둥 대는 무혁을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조정석의 연기 해석력이 잘 맞아떨어져서 감독의 연출력을 더욱 빛난다.

연쇄살인을 다루는 기존의 영화들과 차별화되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유연하게 서사를 끌어가는 스토리텔러로서의 자질과 함께 연출적 역량이 더해져 노덕 감독은 이미 가장 유능한 주류영화계 대표 여성감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볼거리가 많아 재미 면에서 뛰어난 것은 물론이며, 현재 우리 사회의 수많은 부조리를 세세히 반영하는 점에서도 발견의 즐거움이 있다. 시청률을 위해 일단 터트리고 보는 미디어 제작 행태, 잔인한 살인자를 추종하는 비뚤어진 사람들, 거짓 정보에 우르르 몰려가서 거짓 영웅을 만드는 미디어 수용자들, 특정 지역에 대한 편견이 만들어낸 잘못 지목된 범인, 잘못된 걸 알면서도 일단 건수를 올리고 보자는 수사 방식, 재개발로 폐허가 된 용산의 빈 건물, 창작의 고통을 표절로 극복하려는 예술가 등. 넌센스 사회의 추한 면을 다양하게 투영하는 요소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무엇보다 ‘량첸살인기’라는 소설에서 끌어온 영화의 모티프가 신선하다. 소설은 실제로 1938년에 중국에서 출간된 왕시우잉의 작품으로, 지린성 정부 최고문예상인 장백산 문예상을 받았다. 소설은 량첸 대령의 일인칭 시점에서 무차별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마의 심리를 문학적인 수사로 리얼하게 담았는데, 모방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금서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에 출판되었으나, 출간과 동시에 전량 회수되었다고 한다.

시청률을 위해 카메라 앞에서 예고 자살 소동을 일으키는 이야기의 할리우드 영화 ‘네트워크(시드니 루멧, 1976)’에서 방송국 PD인 페이 더너웨이가 냉혈한처럼 일을 진행하듯이, 방송국 백 국장으로 분한 이미숙의 냉소적인 한마디가 미디어의 폭력적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언론은 이야기를 전할 뿐, 진실을 판명하는 것은 바로 시청자의 몫이라는, 무시무시한 사기극 말이다.

▲ 영화 '특종: 량첸살인기'에서 백 국장역을 맡은 이미숙 씨 (사진 제공 = 퍼스트룩)

 
 

정민아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용인대학교 영화영상학과 초빙교수.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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