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이준익 감독, 2015년

1762년 임오년에 일어난 임오화변은 조선왕실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일이다. 영조가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었고, 사도세자는 8일 만에 숨졌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이야기. 이 사건을 영화화했다. 영조가 영화의 대사에서도 말하듯이 “이건 나랏일이 아니라 집안일이다.” 어느 가정 안에서나 있을법한 불화하는 아버지와 아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왕이라면 이것은 역사적 비극이 된다.

재위기간 내내 왕위계승 정통성 논란에 시달린 영조(송강호)는 학문과 예법에 있어 완벽한 왕이 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인다. 뒤늦게 얻은 귀한 아들 세자(유아인)만은 모두에게 인정받는 왕이 되길 바랐지만 기대와 달리 어긋나는 세자에게 영조는 차차 실망하게 된다. 세자 사도는 어린 시절 남다른 총명함으로 아버지 영조의 기쁨이 된 아들이었지만, 학문을 중시하는 아버지와 달리 예술과 무예에 뛰어나고 자유분방한 기질을 지녔다. 사도는 영조의 바람대로 완벽한 세자가 되고 싶었지만 자신의 진심을 몰라 주고 다그치기만 하는 아버지를 점점 원망하게 된다.

 사진 제공 = (주)쇼박스

영화는 미스터리 구조를 취한다. 뒤주에 갇힌 8일간의 현재 시간 사이사이에, 사랑받는 세자에서 왕의 미움을 받는 아들로 성장하기까지의 30여 년간 펼쳐진 과거의 사건들이 끼여 들어간다. 그리하여 왜 왕이 세자를 미워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죽음으로 이르게 했는지 원인이 추적 구조 안에서 퍼즐을 맞추어 나가게 한다.

조선의 번성기를 이끈 영정조의 업적을 기리는 교훈적인 사극영화가 아니다. 어쩌면 추석 시즌에 전 가족이 보기에 난감한 영화일 수도 있다. 반항하는 아들과 억누르는 아버지의 불꽃 튀기는 갈등은 무시무시하다. 서로 다른 기질을 가진 두 남자의 충돌, 아버지와 아들의 힘겨루기, 복잡한 권력 구조 한복판에서 벌이는 왕과 왕자의 대결을 중심에 놓는 미스터리 드라마에의 선택은 역사를 박제화된 것이 아니라 다이내믹한 현재로 바라보게 하는 힘을 가진다. 박진감 넘치는 서사구조로 인해 이 사극영화는 한층 세련된 장르적 진화를 보여 준다.

이준익, 송강호, 유아인, 세 남자들의 역량이 총집결되었다. 세 사람 모두 천만 영화의 주역들이다. ‘왕의 남자’(2005)의 감독인 이준익, ‘변호인’(2013)의 송강호, ‘베테랑’(2015)의 유아인이 뭉쳐서 또 하나의 천만 영화 탄생에 대한 기대를 벌써부터 이야기한다. 하지만 천만관객 영화의 필수요소인 웃음과 감동을 이 영화에서 기대하지는 말 것이다. 비극 서사에 웃음이 들어갈 자리는 없고, 가족의 소중함을 교훈적으로 설파하는 감동을 억지로 끌어내지 않는다. 그 자리에는 인간의 복잡하고 다양한 진짜 감정의 면들이 놓인다.

사진 제공 = (주)쇼박스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끝내 마음의 병을 얻고 미쳐가는 아들, 그의 자결을 명하였다가 당쟁으로 인한 신하들과의 정치 투쟁 때문에 세자를 아사시켜 버려야 했던 왕, 세손을 살리기 위해 세자를 버리는 선택을 해야 했던 왕실 여인들의 당시 상황이 밀도 있게 전개되어, 영화는 현실에서 역사와 대면하는 순간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송강호가 왜 대배우인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그의 연기는 압도적이다. 사도의 목숨이 끊어진 뒤 아들의 뺨을 어루만지며 알아듣기 힘든 어조로 왕이 슬픔을 표하는 장면에서 송강호는 인간인 왕의 모습과 동시에 자식 가진 아버지의 힘겨움을 온몸으로 전달한다. ‘베테랑’의 성공적인 연기의 흐름을 이어받아, 순수한 열정에서 좌절, 광기로 이어지는 복잡한 표정 변화를 보여 주는 유아인은 앞으로의 활약이 가장 기대 되는 20대 남자배우임에 분명하다. 에필로그에서 장성한 정조로 분한 소지섭의 깜짝 출연은 영화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남자들의 서사이지만 왕실 여성들이 소모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 또한 장점이다. 인원왕후 역에 김해숙, 영빈 역에 전혜진, 혜경궁 홍씨 역에 문근영, 화완옹주 역에 진지희, 정순왕후 역에 서예지, 무수리에서 후궁이 된 문소원 역에 박소담 등, 왕후에서 무수리까지 왕실의 여성들 모두가 독립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위해 애쓴다.

슬프고도 장엄한 휴먼 드라마인 ‘사도’는 내년도 미국 아카데미영화제 외국어영화상 한국 후보작으로 선정되었다. 인류 보편적인 아버지와 아들의 애증관계를 그려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숙종에서 영정조 시대로 이어지는, 피를 부른 조선 당쟁의 흐름을 미리 알고 가면 영화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사진 제공 = (주)쇼박스

 
 
정민아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용인대학교 영화영상학과 초빙교수.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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