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다시 청춘으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상상만 해도 좋을 수도,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아플 수도 있을 것이다. 문화 콘텐츠는 특히 TV 드라마는 이 지점을 끊임없이 공략한다. 수많은 이들의 꿈과 소망과 회한이 엉겨 붙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 38살에 대학생이 된 ‘젊은 엄마’의 이야기가 있다. <tvN> 금토 드라마 ‘두번째 스무 살’의 주인공 하노라(최지우 분) 얘기다. 누구는 아직 연애 한 번 못했을 그 나이에, 아들이 벌써 대학생이다. 대한민국의 길고 지난한 20여 년의 ‘육아’ 과정까지 다 끝마쳤는데도 아직 마흔이 안 됐다. 나름 젊다. 요즘 다시 물이 오른 최지우의 뽀얀 피부까지 가세해 정말 38세 대학 새내기의 모습은 꽤 곱다. tvN에서 예능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를 통해 솜씨 좋고 정 많고 야무진 ‘실제’ 이미지로 호감을 얻은 최지우가 오랜만에 적역을 맡았다는 평이다. 철없고 덤벙대지만 (여전히)사랑스러운 ‘소녀 같은 아줌마’로 열연 중이다.

▲ 차현석(이상윤 분)(왼쪽)과 하노라(최지우 분).(사진 출처 = tvN 홈페이지)

'두번째 스무살'은 꽃다운 19살에 덜컥 엄마가 돼 살아온 하노라가 19년 뒤 난생처음 ‘캠퍼스의 낭만’을 겪는다는 설정이다. 주인공이 대학 신입생이다 보니, 주요 설정이 대학이고 대학생의 현실도 간간이 등장한다. 하지만 노라의 대학생활은 말 그대로 꿈과 낭만에 기반한 것이다. 우리 젊은이들이 처한 학자금 대출과 주거비 고민, 저임금 알바의 리얼한 고충이 담겨 있을 리 만무하다. 우선 노라의 남편은 극 중 우천대학교 교수다. 아들 민수(김민재 분)는 아버지가 근무하는 학교에 다니다 보니 ‘직계 장학금’ 대상자로서 학비가 면제다. “졸업 무렵이면 빚이 4000”이라는 대다수와는 다른 길을 걷는다. 무엇보다 노라의 가족은 여유 있는 중산층이다. 다만 예고를 다니던 꿈 많았던 소녀가 대학 문턱을 못 밟았다는 게 아쉬움이었을 뿐이다.

대학생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당연히 대학생들은 주인공이 아니다. 드라마는 그들의 사연에 관심 없다. 드라마의 축은 노라와 노라의 첫사랑과 현재의 남편에게 있다. 한 마디로 주인공들의 청춘을 다시 돌리는 일종의 역할극 같은 작품인 것이다. 온통 만 19세의 풋풋한 청춘들 속에서, 38세의 하노라는 정말 신나게 캠퍼스 생활을 시작한다. 다시 19세가 된 듯이. 그러나 노라는 사실 강남 중산층 사모님에 가깝다. 아이를 키우며 자신을 포기하고 살았다지만, 남편 김우철(최원영 분)은 독일 유학파 교수이고 고교동창인 첫사랑 차현석(이상윤 분)도 교수로 강의실에서 만난다. 차현석은 심지어 ‘첫사랑 하노라 트라우마’에 연애 불구로 살아온 독신이다. 처음에는 하노라에게 몹시 못되게 군다. 그러나 어쨌든 대단히 매력적이고, 연출가로도 성공했다. 모든 것이 하노라의 오늘을 위해 기다려 온 것만 같은 맞춤식 현실이다.

▲ 하노라의 친한 친구 라윤영(정수영 분).(사진 출처 = tvN 홈페이지)
이제 TV드라마 속의 캠퍼스 물에서도 20대는 들러리이자 배경일 뿐이다. 이것은 대체 어떤 나이대의 꿈인 것인가. 스무 살을 다시 살고 싶다는 중년의 꿈을 위한 연장전인 것인가. 20년 세월을 다시 거꾸로 돌이키되, 나름의 지혜와 여유가 생겨 이제는 연애도 공부도 제법 잘 해낼 성 싶은 상황으로 돌아간 판타지인 것이다. 드라마는 주인공들의 20년 사연을 꽤 복잡하고 기구하게 짜기는 했지만, 결국은 ‘다시 첫사랑’을 이루기 위한 요인들로 수렴된다. 극 초반 노라의 췌장암 판정도 곧 오진으로 밝혀졌으나, 차현석만 이 사실을 몰라 노라에 대한 마음에 불을 붙이는 결과를 낳는다. 차현석은 열 여덟 살 적의 순정 그대로 머물러 있는 캐릭터다.

시청자 입장에선 어쩌면 남편 김우철 교수는 ‘걸림돌’일 수도 있는데, 그는 마침 시의적절하게도 동료 여교수와 불륜 중이다. 곧 드라마는 노라의 첫사랑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돈 걱정 없는 생활을 해 왔고, 이제 육아도 끝난 38세. 남들은 아예 시작도 못한 생애주기를 충실히 한 단계 마무리했을 뿐만 아니라, ‘다시’ 청춘을 시작하는 하노라의 이야기는 자유와 새로운 ‘기회’로까지 읽힌다. 많은 또래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될 만하다.

그러나 ‘동안 중년’의 판타지로 그저 TV드라마로만 소비하기에는, 대학생을 그리는 방식이나 20대에게 철없고 싸가지 없는 역할을 맡기는 전개가 불편하고 심란하다. 청춘의 꿈을 다시 꿀 수는 있지만 세대 갈등을 통해 젊은이들의 자리를 밀어내지는 말자. 젊은이들의 젊음을 시기하고 질투하지 말자. 노라는 새내기 동기들에게 고마워하고 도움을 청하며 함께 상생과 연대를 모색하는 게 도리 아닐까 싶다.

“청년 시절의 나 외에/ 과연 내가 누구를 더 시기할 수 있으리”

독일 낭만주의 시인 아힘 폰 아르님의 시를 “시기심”의 저자 롤프 하우블이 인용한 구절이 떠오른다. 멜로 드라마에서 20대가 실종돼 버린, 삶이 너무나 고단해 연애는커녕 친구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20대의 빈자리를 어른들을 위한 판타지 멜로가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젊은이들은 어쩌다 이렇게 힘겨운 일상을 물려받게 된 것일까. 낭만은, 예전에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에게나 회자되는 용어인 것인가. 케이블 채널로서는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 중인 ‘두번 째 스무 살’을 지켜보는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다.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