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 '뷰티 인사이드' 포스터.(사진 제공 = NEW)
사람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흔히 얼굴이 아닌 다른 데서 ‘진짜 마음’을 찾으라고들 하지만, 그 말은 과연 맞는 얘기일까. 만일 어떤 얼굴을 단 하루밖에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얼굴은 어떤 의미인 것일까. 아니, 무엇으로 자신을 지탱할 ‘의미’를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변하는 남자가 있다. 상영 중인 우리영화 '뷰티 인사이드' 얘기다. 얼굴뿐만 아니라 외모 전체가, 그 사람을 그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인정할 모든 외양이 딴판으로 바뀌어 버린다. 남김없이 모조리. 동일성이라곤 없다. 아이, 노인, 남자, 여자, 한국인, 외국인.... 모두 다른 하루짜리 인생이다. 오늘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한들 못마땅하다한들, 전부 하루뿐이다. 타인들에게도 자신에게도 ‘나’는 낯설다. 매일매일, 순간순간.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와 아무 연속성이 없으며, 내일의 나는 자고 일어나 봐야 안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는 이런 조건 속에 놓인 남자 김우진이 주인공이다. 주인공이라고는 하지만, 실상 ‘김우진’을 연기한 배우는 스물한 명이나 된다. 대사 없이 ‘얼굴’만 잠깐 나온 이들은 이보다 훨씬 더 많다. 영화 마무리의 엔딩 자막을 지켜보노라면 123번째 ‘우진’까지 등장한다. 123번째 우진 역을 맡은 배우 유연석이 내레이션도 겸한다. 관객에게 어쩌면 유일한 '동일성‘은 이 목소리뿐일 수도 있다. 극중 우진은 열여덟 살 생일부터 시작된 변화다. 얼굴은 물론 성, 나이, 인종까지 바뀌며, 10년 넘게 ‘하루짜리 인생’을 반복해 살고 있다.

자기를 자기라고 아무것으로도 증명할 수 없는 사람. 그래서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포기한 사람. 고맙게도 친구 상백(이동휘 분)이라는 유일한 세상과의 통로는 존재한다. 수예점을 꾸리고 있는 어머니(문숙 분)도 그의 말없는 지원군이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그가 택한 직업은 가구 디자인이다. 우진은 의자를 만드는 사람이다. 요즘 같은 세상이니 인터넷도 택배도 있어서 그가 만든 ‘알렉스’ 브랜드의 의자는 인기리에 판매된다. 상백과의 동업으로 그는 또래보다 더 여유 있게 사는 듯도 하다. 작업실만 주어진다면 세계 어느 나라에서 살아도 일거리는 계속 들어올 것 같다.

하지만, 가장 큰 고통은 사람이 그립다는 점이다. 이런 그가 사랑은 할 수 있는 것일까. 외롭기 때문에 더더욱 사랑을 갈망하지만, 그건 꿈일 뿐이다. ‘정체성’이라고 할 만한 남들 다 가진 어떤 요인을 애초에 놓쳐 버린 이에게, 오늘도 내일도 이어 가고 싶은 관계를 유지시킬 끈은 있는 것일까. 있다면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들 중에 있는가, 보이지 않는 것들 중에서 찾아내야 하는가.

▲ 사진 제공 = NEW

어쨌든 우진은 어느 날 갑자기 ‘혼자’ 사랑에 빠진다. 상대는 가구점 점원인 이수(한효주 분)다. 매일같이 그 가게에 가서 이수에게 말을 걸어 보지만, 이수에게 그는 늘 처음 보는 손님일 뿐이다. 사랑은 깊어져 가지만, 다가갈 수가 없다. 그러다 우진은 잘생긴 청년으로 깨어난 날, 이수와의 데이트에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진짜 고민은 이제부터다. 깜빡 잠든 전철에서 딴판인 얼굴과 몸으로 깨어나며 그녀와의 이후 약속은 지켜지지 못한다.

결국 상상을 초월할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이 가까워지고 결국 우진이 모든 것을 솔직히 ‘보여’ 주면서 드디어 연인이 되기는 한다. 이수로 하여금 이 말도 안 되는 ‘판타지’, ‘호러’ 같은 상황을 믿게 만든 도구는 컴퓨터다. 우진이 매일 노트북에 기록한 영상일기 덕분이다. “오늘은 이 얼굴이네”로 시작하며 자기 얼굴을 찍고 “오늘은 여기까지”라는 말로 끝맺은 일기 속에는, 묘하게도 연속성과 동일성이 존재한다.

이제 밝혀야겠다. 영화를 만든 백 감독은 원래 광고 감독 출신이다. 그리고 이 영화 '뷰티 인사이드'는 같은 제목으로 만들어진 광고 영상을 원작으로 한다. 여섯 개의 에피소드로 총 40여 분의 영상이 영화처럼 펼쳐지던 2012년의 ‘인텔 & 도시바’의 노트북 광고가 원작인데, 광고 속에서 ‘영상일기’는 정말 ‘심장’처럼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해 칸 국제광고제를 비롯해 수많은 광고제에서 상을 받은 수작이다.

사진 제공 = NEW
매일 변하는 모습도 사랑스럽게 받아 주던 이 사랑은 중반 이후, 한국적 상황과 한국 로맨스 속의 단골 고민들로 심각하게 채워지긴 한다. 우진과 이수는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위기를 겪고, 이수는 정신분열 증세로 약까지 먹으며 괴로워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사람과의 사랑은 힘들다 못해 스스로를 갉아먹는 지경까지 갔기 때문이다. 어쨌든 두 사람은 그럼에도  사랑을 확인하고 확신하게 된다. 아주 오랜 고민과 먼 길을 돌아 얻게 되는 깨달음이다. 물론 두 사람이 서로를 놓지 않을 때만 가능한 얘기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생각했다. 사실 ‘21인 1역’의 연인과의 사랑은 남자의 욕망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여자는 일관성과 한결같음을 더 원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만일 주인공이 ‘여자’이고 사랑하는 대상이 남자일 경우, 영화는 ‘에로’의 영역으로 갈 수 밖에 없다. 누가 봐도, 그래야 가식이 아닌 진짜 사랑 얘기가 된다. 따라서 이쯤 되면 영화의 영역이 아니라 상상의 영역인 것이다. 그래서 이 예쁜 영상이 초 단위로 펼쳐지는 판타지 로맨스를 그냥 영화로서 즐기기로 했다. 우진의 정체성 혼란이 아니라 ‘사랑’에만 집중한다는 단점도 있지만, 아주 다양한 미남 배우들이 끝도 없이 등장하는데 그 모두가 한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독특한 발상이 재밌는 영화다. 아름다움도 내면의 고귀함도 결국은 치열하게 만들고 가꿔가는 ‘서로’의 노력으로만 간신히 찾아진다. 소중한 것일수록 원래 내일을 장담하기 어려운 법 아닌가.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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