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불안한 외출’, 김철민 감독, 2014

살아온 날들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 준다. 애초에 그렇게 살려고 마음먹었던 것이 아닐지라도, 어떤 험난한 가시밭길이 펼쳐질지 모르고 여린 마음 하나로 시작했을지라도, 살아온 날들이 때로는 그를 만들고 이끈다. 결국은.

여기 ‘불안한 외출’이라는 이름의 우리 영화가 있다. 이렇게 살아온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다큐멘터리 영화다. 전 범청학련 의장 윤기진. 10년의 수배생활과 5년의 옥살이. 처음부터 그리 살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윤기진 자신의 말마따나 탄압이 그를 키웠다. 죽지 않고 견뎌 내려 애쓰는 동안, 굴복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 내려 안간힘 쓰는 동안, 스무 살 청년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으로 낙인찍힌 그의 시간들은 그렇게 채워졌다.

사진 제공 = 다큐창작소

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어떤 사람과 가족 모두가 평생 이런 사슬에 꽁꽁 묶여 살아가도 되는 것인가. 이런 질문 자체가 사실 2015년에 어울리기나 하는가. 무슨 옛날옛날 한 옛날의 전체주의 국가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엄연한 현실이다. 윤기진과 황선은 아직도 국가보안법의 잣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언제 법원에 출석해 또다시 길고 긴 재판을 치러내며 ‘불안’에 파먹히지 않으려 몸부림쳐야 할지 모른다. 그게 지난 20여 년 그들 삶을 지배한 당위였다.

민주정부 시절을 거쳤다는 우리 사회지만, 국가보안법은 한 번도 잠든 적 없는 감시의 시스템이었다. 2008년 이후 더욱 치밀하고 공고해졌음은 물론이다. ‘걸면 걸리는’ 이 놀라운 마법 같은 죄목생성기 앞에서, 세상의 어떤 것들도 ‘혐의를 두고자 하면 혐의가 입증되는’ 올가미에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했다.

윤기진에게도 그 시작은 이렇게까지 엄청나지는 않았다. 대학생 5000여 명이 연행돼 간 1996년 여름의 연세대, 국군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 자국민 진압 작전에서 연행된 것이 시작이었다. 갖은 회유와 협박 탓이든 뭐든 ‘반성문’을 쓰면 일단 풀려나기도 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데 윤기진은 ‘반성’ 하지 않았다. 세상이 어딘가 부조리하기에, 사람이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생각이 있는 거라고 믿던 눈이 맑은 청년은 자신이 잘못한 게 없다고 여겼다. 더 일찍 이웃의 고통을 알아채지 못한 게 미안하다면 모를까. 그렇게 ‘반성하지 않는다’는 죄목으로 징역 1년6개월이 선고되었다. 출소 후 복학해 한총련 의장을 맡으면서, 잇따른 수배로 일년 중 공식행사를 다섯 번 정도밖에 못 나간 채 말하자면 365일 중 360일을 도망만 다니며 아무것도 못했어도, 죄목은 갈수록 추가되고 있었다. 그는 국정원-검찰-경찰이 눈독 들이는 ‘본보기’였고 ‘상징’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사진 제공 = 다큐창작소

수배 중에 후배 황선과 결혼하고, 수배 중에 두 딸을 얻고, 자라는 것도 거의 아내의 말을 통해서만 한꺼번에 몰아서 들으며 끝없이 도망하는 신세로 살아온 남자. 세상의 기준대로라면, 사랑을 접어야 옳았던 것일까. 결혼 따위는 포기했어야 했던 것일까. 두 딸을 낳는 일은, 애당초 상상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일까. 우리는 모른다. 그들 부부라고 알겠는가. 다만 윤기진과 황선은 그 모진 세월을 살아냈다. 그들은 사랑했고, 사랑을 놓지 않았고, 어떤 어려움도 감수하며 함께 있기를 택했다. 두 딸을 어떻게든 키워 냈고, 그 눈물과 한숨과 불안까지도 자신들의 몫으로 여기며 껴안고 살았다. 그래서 우리에게 보여 주고 말았다. 이 세상을 이렇게 살아온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아빠가 체포돼 감옥에 갇힌 뒤에야 ‘합법적인 첫 만남’을 가졌던 어린 딸들. 아빠는 3년 만기출소를 하지만, 엄마의 소원대로 “가족이 손잡고 거리를 활보하는” 날들은 고작 1년의 허락된 유예기간에 불과했다. 아내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가 ‘국가보안법’에 저촉된다며 ‘이적 표현물’로 검찰이 기소했고, 재판이 시작된다. 감옥의 검열 시스템까지 통과해서 밖으로 나온 편지들인데, 부부 둘 다 재판 대상이 된다. 이적표현물 제작과 배포자라는 각각의 죄목을 달고서.

다시 재판 결과를 걱정해야 하는 신세. 정해진 시간 속에서 윤기진은 남편 노릇, 아빠 노릇을 시작하지만 아빠 없는 삶에 익숙해진 두 딸과의 관계는 서툴고 어색하다. 재판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다시 이별을 염려해야 하는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사람을 못 견디게 만든다. 그럼에도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부모님과 딸들과 함께 하는 일상을 묵묵히 기쁘게 살아가려 애쓴다. 그들 부부의 건강함이 영화 곳곳에서 반짝반짝 빛난다.

김철민 감독이 보여 준 영화 속 이 가족의 일상은, 너무나 평범해서 눈물나게 소중하다. 그토록 어렵게 이룬 평온한 일상이 다시 금이 가고 깨질까봐 관객을 눈물짓게 한다. 남편과 간신히 함께 살게 된 아내 황선은 2014년 ‘통일 토크 콘서트’에 출연했다가 ‘종북’으로 낙인 찍혀 결국 2015년 1월 구속되었다. 이 영화는 원래 2014년 제 19회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이었다. 2014년 당시에는 없던 상황들이 이후 이 가족을 생이별하게 만들었고, 아이들은 “엄마와 걷던 길을 이제 아빠와 걸어” 서울구치소로 엄마를 면회하러 다닌다. 영화는 재편집을 거쳐 최근 다시 ‘공동체 상영’ 중심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극장이 (언젠가)스크린을 내줄 때까지는.

엊저녁 이 영화를 보았다. 공동체 상영으로. 황선 씨는 지금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다. 하지만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우리가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 받는다고 믿는 것 또한 자유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살아있고, 감시 시스템은 언제 어디서고 가동되고 있다. 1948년 12월 1일, 처음 제정된 이래로 내내 말이다.

▲ 영화 예고편 동영상 갈무리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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