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모든 아이들에게 경찰은 한때의 꿈이다. 특히 남자 아이들에게는 꼭 거치는 장래 희망 중 하나다. 왜 어릴 땐 그리도 그 직업이 멋져 보일까. 제복이 멋져 보이는 것일까. 그 나이의 눈높이에서는, 정의의 수호자처럼 보이기 때문인 걸까.

사진 출처 = SBS 홈페이지
얼마 전 방영을 시작한 <SBS> 월화드라마 ‘미세스 캅’에는 아이 엄마인 경찰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여성 주인공이 경찰로, 그것도 어린 자녀를 두고 고군분투하는 엄마로 등장하니 일견 여성의 위상이 높아져 보이는 ‘커리어 우먼’의 드라마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드라마를 설명하는 두 줄짜리 작의만 봐도 실로 어마어마한 단어들이 들어 있다. “경찰로는 백점, 엄마로선 빵점. 정의롭고 뜨거운 심장을 가진 경찰 아줌마의 활약을 통해 대한민국 워킹맘의 위대함과 애환을 그린 드라마.” 이렇게 돼 있다. 설명만 봐도 압도될 지경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보다 더 포부가 큰 드라마는 없어 보인다. 대한민국 경찰의 실상을 그리는 것만도 벅차 보이는데, 대한민국 일하는 엄마들의 현실과 모순까지 잡겠단다. 게다가 주인공은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김희애다. 연기력 하나는 다들 끝내주는 배우들이 포진돼 있다.

홈페이지의 설명 문구를 다시 뜯어 본다. ‘경찰로서 백점’이라면 대체 어떤 사람인 것일까?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 것일까? 누구에게 충성하는 직분이어야 하는 것일까? 왜 사람 보다는 ‘로보캅’이 먼저 떠오르는 것인지 나 또한 신기한 노릇이지만, 백점짜리 경찰이란 단어는 참으로 거슬린다. 환상에 바탕한 조합이기 때문이다. 경찰인 엄마가, 엄마로는 빵점이라는 설명도 비현실적이기는 마찬가지다. 경찰이든 엄마든, 드라마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이분법으로 정의되어 있다. 선과 악, 범죄자와 피해자, 나쁜 놈과 좋은 놈. 등장하는 모든 것은 선명하게 이분법으로 나뉜다. 그 사이에서 종횡무진 초인적인 능력을 보여 주는 최영진(김희애 분) 혼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듯 활약한다.

▲ 최영진(김희애 분)과 최영진의 딸 하은이.(사진 출처 = SBS 홈페이지)
엄마와 아빠, 주변 어른들 다수가 경찰인 아이. 그 아이를 도맡아 키워 주는 사람은 이모. 아이는 엄마 얼굴이 너무 보고 싶어서 문방구에서 ‘도둑질’을 해 경찰인 엄마를 오게 만드는 사고를 친다. 그 설명을 듣고 펑펑 울면서 육아를 도무지 할 수 없는 자신의 직종을 서러워하는 경찰 엄마. 하나뿐인 딸 하은이를 방치했다고 우는 줄거리가 1회의 마무리 장면이었다. 얼핏 ‘워킹맘’의 고단한 현실을 그린 것 같지만, 너무나 극단적이고 ‘범죄의 냄새’까지 풍겨야 하는 에피소드라 그냥 지어낸 이야기구나 싶다. 1980년대 드라마에도 (얼마든지) 나올 법한 ‘막연하게 서러운’ 워킹맘의 고충이 아닌가. 1980년대에도 이미 여성계에서는 논란이 되었던 호칭 ‘미세스’를 제목에 붙인 것 또한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주인공 최영진에 대한 홈페이지의 캐릭터 설명을 옮겨 본다. “거침없는 카리스마, 노련하고 능수능란한 수사력, 세상을 끌어안는 따스한 눈빛. 뜨거운 심장과 차가운 두뇌를 가진 산전수전 공중전을 섭렵한 능구렁이 경찰 아줌마.” 이쯤 되면 홍길동이나 전우치다.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여성적이지도 않다. 그냥 남성 영웅 신화에 나오는 고전적 남성 영웅상이다. 최영진은 “남자도 때려잡기 힘든 흉악범들을 단 몇 마디에 기를 죽이거나 꾀어서 수갑을 채운”다는 사람이다. “참고인 약점 잡고 함정수사를 하기도 한다. 강력계 형사로서의 의리 또한 강하다”는 설명이다. 실제 극중에서 일하는 방식이 이렇다. 일은 잘하는지 모르나 안하무인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경찰 캐릭터의 고전이 된 ‘강철중’ 스타일에다, 최근에는 범죄 프로파일러의 능력까지 갖춰 사건의 이면까지 캔다. 현실의 ‘표창원’ 스타일까지 겸비해 밤낮없이 일하는 중이다. 최영진이 도맡아야 할 중대한 살인사건들이 줄지어 줄거리로 등장한다. 단순 자살처럼 보이나 실은 살인사건이고, 단순 강도 사건처럼 보이나 엄청난 비리가 숨어 있는 살인 범죄라는 식이다.

사진 출처 = SBS 홈페이지

‘진화된 범죄,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사회 안전망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경찰의 이야기’라는 식의 보도와 기사들 속에는 ‘미세스 캅’은 ‘경찰 어벤저스’의 맹활약을 다룰 것이라는 예고까지 보인다. TV 속에서 맹활약 하는 경찰들, 부수고 파괴하는 난봉꾼들의 대명사 ‘어벤저스’까지 흉내내겠다는 이 드라마는 그럼에도 끊임없이 ‘엄마’와 ‘모성’까지 강조 중이다. 최근 몇 년간 경찰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참 많았으나, 공격력에 있어서 단연 최강이다. 공존하기 어려운 요소들을 화끈하게 모아 놓은 ‘판타지’로 막바지 더위를 날리라는 뜻일까? 김희애의 너무나 친숙하고 농익은 연기가 극중 최영진을 마치 ‘이웃 아줌마’처럼 착각하게 하니 이 또한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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