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영 신부] 9월 13일(연중 제24주일) 마르코 8,27-35

지금은 다만 그대 사랑만이

- 김남주

그대만이 

지금은 다만 그대 사랑만이 

나를 살아 있게 한다. 감옥 속의 겨울 속의 나를 

머리끝에서 발가락 끝까지 

가슴 가득히 

뜨건 피 돌게 한다. 그대만이 

지금은

다만 그대 사랑만이
....

이 시는 1970년대 반독재 운동을 하다 15년 징역살이를 하던 김남주 시인이 후에 자신의 아내가 된 여자 친구에게 쓴 글입니다. 제가 이 시를 이곳에 가져온 이유는 한 시인의 사랑고백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김남주 자신에게 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차가운 감옥에서 15년을 감금생활을 해야 하는 자신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 자신을 살아갈 수 있게 힘을 주었던 것이 그가 가지고 있던 사회적 이념도 있었겠지만, 다름 아닌 자신을 향한 한 여인의 사랑만이 "머리끝에서 발가락 끝까지 뜨거운 피를 돌게 하고, 그를 살아 있게 한다"는 겁니다.
 

ⓒ박홍기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이유, 해방자 메시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천 년 동안 기다리고 있던 이름이 있었습니다. 외세의 침략으로 주권을 빼앗기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들을 해방시켜 줄 사람, 삶의 고난을 풀어 주고 아픔을 어루만지고 고통을 낫게 해 줄 사람. 메시아 그리스도.

더욱이 예수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의 억압 하에 있었기 때문에, 더욱더 자신들을 해방시켜 줄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메시아 즉, 그리스도라는 이 이름은 바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죽어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진정 "살아가게 하고", "살아 있게 하는" 이름이었습니다.

구약에서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던 사람들입니다.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 하느님의 힘을 전해 주고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면서, “혹시 예언자가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구약에 나오는 예언자 중의 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예언자를 보냈던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사람들은 나를 가리켜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고, 엘리야라 하고, 예언자 중의 하나라고도 하는데,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의 대답은 "당신이 바로 우리 조상들이 수천 년 동안 기다렸던 분이고, 우리를 해방시켜 줄 구세주이십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성경은 2000년 전, 구약은 이보다 더 오래전에 쓰인 것이지만, 하느님의 말씀이 담겨 있는 이 성경이 오늘날 우리에게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이 말씀이 우리에게 적용될 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던진 이 물음은 바로 우리에게 던지시는 질문입니다.

너에게 나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우리 각자에게 "그래,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단적으로 "나는 너에게 누구냐"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까?

"예, 당신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할까? 정답입니다.

하지만,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이 답은 누가 가르쳐 주었을까? 책에 나와 있으니까? 아니면 교리교사가 가르쳐준 것일까? 설령 교리책에서 그렇다고 하고, 성경에 그렇다고 쓰여 있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가리켜 당신이 그리스도라고, 당신이 구세주라고 대답하는 그 원천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즉, 왜 우리는 그분을 나의 구세주라고 고백하는 것일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라는 예수님의 물음은 바로 나와 예수님과의 관계성을 묻는 질문입니다. 교회에서 예수님이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이고, 구세주라고 말해 주기 때문에, 우리가 공동체로 입을 모아 예수님이 구세주라고 고백하는 것이 쉬울지 몰라도, 우리 각자의 삶의 역사 안에서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가슴으로 고백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아 보입니다.

김남주 시인은 자신을 사랑하는 한 여인이 자신을 "살아가게 한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속에는 김남주 시인의 삶 속에, 그의 가슴 속에 그 여인이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백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각자에게, "너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이 물음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나가면서 발견하고 깨달아 알아야할 가장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나에게 그분이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은, 그분과의 관계가 어떠한지에 따라 달라지고 더 깊어질 거라 봅니다. 그분이 내게 누구인지를 가슴 절절하게 알아야만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신앙을 살아갈 것입니다. 내 힘으로가 아니라, 그분이 주시는 힘으로 살아가고, 또한 그분 때문에, 그분이 주시는 사랑만이 나를 살아 있게 할 것입니다.
 

 
 
최성영 신부 (요셉)
서강대학교 교목사제
예수회 청년사도직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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