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 박병상]

오늘도 남선정 선생은 새벽에 관찰 장비가 가득한 낡은 차를 몰고 남동공단 유수지로 향했을 것이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는 저어새가 찾아왔으니 유수지 가운데의 작은 섬을 멀리서 전후좌우로 살피고는 수업에 늦지 않으려 학교로 차를 돌리겠지. 그는 시흥시 배곧신도시 방향을 어김없이 바라보았을 것이다. ‘저기에 다리를 놓으면 어쩌나’ 여러 가닥의 굵은 쇠줄로 다리 상판을 들어올리는 방식이라니 저어새가 부딪힐 텐데.... 학교에 가서도 그 생각에 골몰하다 수업 마치면 남동공단 유수지로 핸들을 돌릴 것이다.

▲ 저어새.(사진 출처 = pixabay.com)
주걱처럼 생긴 주둥이를 바닷물에 살짝 잠긴 갯벌에 넣고 휘저으며 먹이를 잡는 저어새는 한때 700마리뿐이었다. 멸종이 예고된 상태였지만 남선정 선생 같은 이가 우리나라와 타이완과 일본에서 애를 태우며 멀리서 번식지와 서식지를 지켜내자 이제 3000마리 정도로 늘어났다. 아직 안심할 정도로 늘어난 건 아니지만 저어새가 여름과 겨울을 보내는 지역에서 지금처럼 보살핀다면 살아남을 가능성은 다소 높아질 터이다. 그런데 여름을 보내야 하는 우리의 갯벌이 점점 줄어든다. 저어새들이 주로 먹이를 잡던 갯벌을 대부분 메운 것도 모자라는지, 하필 저어새 이동 통로에 커다란 다리를 놓겠다고 성화다.

인천 경제자유구역인 송도신도시와 시흥시의 배곧신도시를 배곧대교로 이으면 자동차로 20분 단축된다고 한다. 30년 동안 고용 유발효과가 1500명이라고 한다. 해마다 50명이니, 한 달에 4명이로군. 부가가치 600억 원의 효과가 있다던데 1.89킬로미터 길이의 4차로 배곧대교를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갯벌 위에 놓는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갈까? 시흥시는 투자를 제안한 한진중공업이 자신의 돈으로 놓겠다고 했으니 부담될 게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저어새는 어쩌나. 그들은 생태맹(生態盲)인 게 틀림없다.

갯벌 매립의 후폭풍

넓디넓었던 갯벌을 메워 만든 송도신도시보다 작아도 배곧신도시 역시 멀지 않은 과거에 엄연한 갯벌이었다. 그것도 소래포구로 이어지는 알짜배기 갯골이었지만 또 아파트 일색의 인간 거주 공간으로 바뀐다. 갯골을 메우면 풍수해를 완충할 수 없을 텐데, 2만 5000세대 5만 6000명이 머물 철근 시멘트 건물들은 안전할 수 있을까? 천지사방의 아파트들은 머지않아 남아돌 가능성이 높다는데, 제 돈으로 다리를 놓겠다는 기업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걸까?

남동공단 유수지를 고향으로 알고 찾는 저어새 100여 마리는 터전을 이참에 없애야 하는 걸까? 넘치고 넘치는 천편일률 아파트를 놔두고 또 아파트를 짓고, 그 아파트 사이를 잇겠다고 다리를 짓는 인간은 역대 어떤 황제보다 많은 걸 차지하고 산다. 고작 20분 단축하지 않아도 충분히 빠르게 쏘다닌다. 멀쩡한 다리가 버젓이 있는데 뭐가 부족하다고 또 거대한 다리를 놓겠다는 것인가. 600억 부가가치 운운하는 기업은 더 큰 이윤을 생각하겠지.

저어새가 악취가 진동하고 오고가는 자동차 소음으로 시끄러운 남동공단의 유수지를 찾는 것은, 오로지 주변에 새끼들 먹일 갯벌이 인근에 살아 있기 때문이다. 악취가 심해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으니, 꾹 참으며 작은 섬에 머물며 먹이 활동을 위해 인근 갯벌을 드나들 텐데, 배곧대교는 저어새 먹이 활동의 거대한 장애물이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새끼들을 먹여야 하는 저어새가 주로 찾았던 갯벌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조각보 한 쪽 만큼 남았기에 찾아오건만, 인간의 개발행위가 이들의 목을 조른다.

2014 인천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의 상징동물로 저어새를 천거한 인간은 자연이 살아 있기에 자신도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개발과 투기에 눈이 멀었다. 제 후손의 삶이 옥죄는 것도 무시하면서.

저어새가 살아야 사람도 산다

새끼들과 뒤뚱뒤뚱 도로를 건너는 오리 가족을 자동차를 세워 기다리는 사람들은 뿌듯하다. 잠시나마 자연과 교감하고 자연의 이웃을 배려하는 기쁨에 젖는다. 겨울철 우리나라를 찾는 독수리와 두루미들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들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근린공원을 바라보는 아파트 베란다에 잣과 땅콩을 넣은 먹이통을 매달아 보자. 온갖 산새들이 찾아온다.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의 정서는 따뜻해진다. 한데, 한 뼘 남은 저어새의 터전을 매립하던 투기자본은 날아오는 길마저 가로막으려 든다.

갯벌과 같은 습지에 머무는 저어새는 사람에게 광산의 카나리아 같은 존재다. 갯벌에서 무한한 산소를 공급하고 육지의 오염된 물을 정화하며 사람이 먹는 온갖 어패류의 산란장인 갯벌이 거기 있기에 저어새가 찾는다. 저어새가 살 수 없는 환경이라면 사람도 오래 버틸 수 없다. 제발, 제발, 자연과 따뜻하게 공존하려는 자세를 회복하자. 돈보다, 20분 빨리 가려는 욕심보다, 적어도 우리만큼 건강해야 할 자식의 내일을 배려해 보자. 조상이 그랬던 것처럼.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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