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 칼럼]

10일과 11일 이틀간 진행된 이완구 총리 후보의 청문회가 끝났다. 논란이 그치지 않는 청문회였다. 그래서 이 후보가 국회의 인사 청문회에서 살아남을 것인지가 국민적인 관심사였다. 만약 총리 인준에 여야가 합의를 보지 못하면 박근혜 정부는 연거푸 3번의 총리 인준 실패로 심각한 레임덕 현상을 맞게 되리라는 상식적인 전망 때문이다.

청문회 과정을 지켜 본 언론과 여론의 평가는 이 후보의 인준에 아주 비관적이다. 이런 사람을 국무총리로 인준하면 앞으로 인사 청문회를 갖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란 의견이 많다. 지난주 당대표에 당선된 문재인 의원도 (총리 후보가) 두 번이나 낙마했고 이번에 낙마하면 세 번째가 돼서 웬만하면 넘어가려고 했으나 더는 그냥 넘어갈 수 없게 됐다고 인준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12일 이 후보의 인준을 강행할 태세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뜻을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인 것 같다. 김무성 당대표와 유승민 원내총무는 취임 일성으로 청와대와는 다른, 당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큰 소리쳤지만 실속 없는 허풍이었음을 드러냈다.

새누리당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쳐 단독 인준 국회 소집은 일단 뒤로 미뤘다. 그러나 오는 16일에는 인준 본회의를 강행할 계획이다. 그날은 국회의장이 직권으로라도 본회의를 소집한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다. 이번마저 총리 후보가 인준을 받지 못하면 박근혜 정권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게 되리라는 위기감이 청와대는 물론 여당 전체에 흐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청문회를 통해 드러난 “의혹의 종합세트”, 특히 위험한 언론관을 가진 정치인이 총리로 있는 정권을 누가 민주국가의 정부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인지 심히 걱정스럽다.

총리 지명 직후에는 여당의 원내 대표로서 야당과 국회를 원만히 운영해 왔다는 평가를 받아 온 총리 후보이기 때문에 모두 그의 청문회 통과에 큰 문제가 없으리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청문회 날짜가 가까워 오면서 병역 기피, 땅 투기, 아파트 투기, 박사학위 논문 표절, 한 강좌에 강사료를 천만 원이나 받는 특혜 등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의혹들이 연이어 불거지면서 언론은 그에게 “의혹의 종합세트”, “의혹의 백화점”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이미 이 정도의 의혹만으로도 그의 청문회 인준은 통과가 어렵다는 전망이 국민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 사진 출처 = <뉴스타파>가 2월 10일 게시한 이완구 총리 지명자 청문회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그의 인준에 결정타를 가한 것은 지난 6일 KBS에 보도된 그의 언론관이었다. 이 후보는 1월 27일 총리 후보 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그가 사용하고 있는 금융감독원 취재 기자 4명과 근처 식당에서 김치찌개 식사를 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언론계에 미치는 인맥과 영향력을 과시하면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방송 패널을 갈아 치우라고 전화했더니 방송사 간부가 당장 그 패널을 명단에서 삭제했다는 전화를 해 왔다며 자랑했다. 그는 “언론인들... 대학 총장도 만들어 주고... 교수도 만들어 준다”며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했다. 자랑의 극치는 지금까지 언론인들을 생각해서 부패 대상에 언론인을 포함시킨 “김영란법”을 막아 왔는데 “내가 이번에 통과시켜 버려야겠어. 이제 안 막아 줘, 이것들 웃기는 놈들 아니야... 지들 아마 검경에 불려 다니면 막 소리 지를 거야”라며 “김영란법”을 두고 기자들을 “협박”하기도 했다.

이 후보의 발언은 그가 언론과 언론인을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는지 평소의 생각을 부지불식간에 드러낸 말이었다. 이런 사람이 권력을 잡을 때 언론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한편으론 언론과 언론인들이 어떻게 행동했기에 권력이 언론을 이렇게 깔보았는지 자성하게 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그러나 청문회에서 야당 의원이 이 발언의 사실 여부를 따지자 그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 때문에 녹취록을 틀어 확인하자는 야당과 이에 반대하는 여당 의원들간에 언쟁이 벌어지고 화가 난 야당 의원이 국회 기자실에 가서 그 녹취록을 공개해 버렸다. 그러자 사실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이 후보는 굽실거리며 “죄송합니다”, “송구합니다”를 되풀이 했다는 보도다. 국민의 대표들이 모인 국회에서 일국의 총리가 되겠다는 정치인이 이렇게 버젓이 거짓말을 하다가 탄로가 나는 모습을 보였다. 국민들이 이런 정치인을 어떻게 믿고 존경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한국 언론의 현실이고 정치 지도자의 부끄러운 알몸이다.

우리 언론의 부끄러운 알몸은 또 하나 있다. 이 후보가 엄청난 대 언론 “협박”을 했는데도 그것을 기사화한 기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식사 자리에 있던 4명의 기자 가운데는 한국일보와 중앙일보가 있었다는데 이 두 신문과 다른 두 기자의 신문에도 한국 정치에 큰 파문을 일으킨 이 후보의 발언을 기사화하지 않았다.

민언련(민주언론시민연합)이 9일 성명을 발표하고 한국일보와 중앙일보가 이번 사태에 침묵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고발하자 다음날 한국일보가 보도하지 않은 경위와 사과문을 사고(社告)로 발표했고 중앙은 이틀 뒤에야 신문 1면 톱과 3,4,5,6면을 할애해서 이 후보의 발언을 비판했다. “때늦은 생색“이었다. 민언련의 고발 성명이 없었어도 이런 기사나 사고가 나왔을지 의문이다. 한국 언론을 지금의 깊은 잠에서 깨우려면 외부의, 독자의 편달(鞭撻)이 없어서는 안 될 각성제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후 한국의 언론자유는 한심스러울 정도로 후퇴했다. 세계적인 언론감시단체 “국경없는 기자”가 최근 발표한 2014년도 세계언론자유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언론자유 순위는 57위로 1년 전의 50위보다 7위나 후퇴했다. 이명박 정권의 마지막 해인 2012년의 44위보다도 무려 13위나 추락했다.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해 2008년의 39위보다는 무려 18위나 후퇴했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후의 한국언론자유 현주소다. 그런데 또 언론을 우습게 보는 정치인을 총리로 맞으라는 말인가?
 

 
 

장행훈(바오로)
파리 제1대학 정치학 박사,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초대 신문발전위원장, 현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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