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수가 본 교회와 사회 - 3]

 ‘2014 한국 천주교회 통계’에 나타난 연령대별 신자 비율을 살펴보다 문득 십년 뒤 한국교회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어졌다. 어떤 모습일지 앞으로도 여러 번 다룰 생각이니 필자와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펴 보시기 바란다. 먼저 고령화된 한국 교회 상을 그려 본다.

2014년 12월 31일 현재 60살 이상 신자들의 숫자가 전체 신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3.1퍼센트였다. 15년 전인 2000년에는 이 비율이 12.3퍼센트였는데 15년 사이 거의 두 배로 뛰었다. 지난 15년간 나타났던 추이의 연장에서 앞으로 10년이 더 가면 이 연령대 비율이 전체의 35퍼센트에 이를 것이다. 아니 더 높아질 수 있다.

이보다 더 주목해야 할 현상은 실제 전례와 활동에 참여하는 신자들의 연령대별 비율이다. 이 조사는 따로 이뤄지지 않아 수치가 정확하지 않으나 10년 간격으로 이뤄지는 가톨릭신문사의 ‘가톨릭신자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 조사 결과와 간헐적으로 개별 본당에서 이뤄지는 신자 의식조사 결과를 토대로 유추해 보면, 무엇보다 실제 본당에서 확인하는 바에 따르면, 60대 이상 신자들의 비율이 실제 통계적 구성비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여기에 현재 50대 활동 비율이 2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므로 10년 뒤 50대 이상은 전체 신자의 80퍼센트, 60대 이상은 60-70퍼센트 사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

▲ 5월 8일 춘천교구 '원로사제 초대의 날' 행사에 참여한 원로 신부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 주고 있다.(사진 제공 = 춘천교구 문화홍보국)

이렇게 단순하게, 아니 자신 있게 말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어서다. 첫째, 50대 이상의 종교성이 그 이하 연령대 신자들보다 항상 높다. 둘째, 20대 이하 연령대 구성비가 지난 15년 사이 계속 하락해 왔다. 게다가 지난 15년 동안 저출산 영향이 커져 왔다. 셋째, 40대 이하는 다원 의식이 커지는 데 반해, 50대 이상은 정통주의 노선을 따르는 경향이 강하다. 넷째, 교회의 활력이 떨어지면 젊은 층은 발길을 돌리는데 반해 중, 노년층은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청, 장년층을 교회로 끌어낼 만큼의 잠재력을 현재 한국교회는 가지고 있지 않다.

자! 이를 기정사실화하면 교회 모습은 점차 이렇게 변모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 사목은 더욱 성사중심이 될 것이다. 중, 노년층의 활력이 떨어질수록 다른 활동은 줄어들게 마련이므로 성사 참여 외에 다른 기능은 위축된다. 사목자들의 평균연령이 활동하는 신자들의 평균연령보다 더 낮아 청, 중년층 사목자들은 의욕을 잃을 수 있다. 다른 대외적 역할이 없고, 대내적으로 최소한의 관리만 있는 상황은 사제 성소에 영향을 주어 사실상 성소를 멈추게 할 것이다.

둘째, 이 연령대의 물질적 자원동원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질 것이 확실하다. 이 때문에 대규모 사목 프로젝트를 시작하거나, 신축 성당의 규모를 키우는 일은 위험한 선택이다. 이런 시기에는 사목이 외형을 키우는 일 보다 신앙 성숙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셋째, 교회의 예언 직무는 더 위축된다. 50대 이상이 전체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교회는 절대 진보적일 수 없다. 한국갤럽의 ‘2014 한국인의 종교’ 보고서에서는 20대 이상의 이데올로기 지형이 지난 20년 사이 보수 쪽으로 기울어 왔음을 보여 주고 있다. 60대 이상은 80퍼센트 이상이 보수 쪽이었다. 중도를 표방하는 이들의 비율이 30퍼센트 정도 되었는데 이들은 남한의 이데올로기 지형에서 보수 쪽에 가까웠으므로 사실상 보수로 보아야 한다. 한국교회도 1990년대 이후 이 흐름이 계속되었다. 따라서 이런 성향을 가진 신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곳에서 예언 직무를 환영할 가능성은 낮다.

넷째, 고령자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교회는 활력이 떨어져 본의 아니게 청년들을 본당에서 밀어내기 마련이다. 그들이 교회에서 담당할 일이 점차 사회복지사 내지는 봉사자일 가능성이 높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그들을 움직이는 힘이 본당 예산이었는데, 이를 뒷받침해 줄 여력이 더 이상 없기도 하고.

다섯째, 수도회는 이미 쇠퇴기에 접어들었고 남은 수도자들도 고령화되어 교구의 이런 처지를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기 어렵다. 열거하고 싶은 일이 이 외에도 더 다양하지만 이 정도로 줄이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보태려 한다. 대체로 이런 교회는 사제 중심주의가 더 강해진다. 아니 사제 의존도가 더 높아진다는 말이 맞을 터이다.

나는 이런 모습이 거의 확실시된다고 본다. 그 시기 이전에 전체 신자 총수는 600만에 이르지 못하고 감소세로 돌아설 터이고, 미사 참석률은 10-13퍼센트대, 여러 이유로 교회에 드나드는 신자 수는 대략 70-90만 정도가 될 것이다(현재는 110-130만 정도로 추정된다). 물론 이들의 연령대는 대부분이 60대 이상이다.

그러면 이런 상황에서 교회 쇄신은 어떤 방향을 잡아야 할까?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표현대로 라면, “교회 쇄신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나, 지금보다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연령대 신자들은 자신들의 생각, 몸에 익힌 습관을 버리지 않을 테니 개의치 말고 그동안 하던 대로 계속 가야 한다.

서구의 선례로 보면 수도자들이 마지막까지 예언 직무에 최선을 다하려고 할 것이다. 현재 수도회와 평신도들이 마음을 합해 활동하는 사례를 보고 있는데 이 모습을 앞으로 더 자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 가야 한다.

어째 힘이 빠지시는가? 그러실 필요 없다. 본래 이것이 교회의 모습이니까. 그래서 신자답게 살려는 이들은 지치지 않고 즐겁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늘 소수로 남는다 해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기뻐하며 당당할 수 있는 법을 말이다. 그러려면 관상에도 한 발을 디뎌야 한다. 활동 속의 관상. 이것이 예언 직무를 자기 일로 삼고 살아야 할 이들에게 요구되는 자세이다.
 

 
 
박문수(프란치스코)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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