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영 신부] 3월 22일(사순 제5주일), 요한 12,20-33

이 길 밖에 없었을까?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면서 제가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인간구원의 방식이 꼭 이렇게 수난당하고 십자가에서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길 밖에 없었을까? 예수님의 수난의 길을 따라가면서 화도 나고 절망과 좌절감도 올라왔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십자가가 사랑이라는 말도 혼란스러웠습니다. 십자가의 신비를 이해하기란 더욱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수난사화를 관상하던 중, 언뜻 예수님이 흘리시는 눈물을 보면서, 가슴 밑바닥에서 무언가가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우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라자로가 죽었을 때,(요한 11,1-37)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시면서,(루카 19,41-44)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다”(히브 5,7)고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 생애 동안 많이 우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분 곁에는 늘 아픈 사람과 슬픈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아픈 삶을 보듬어 주면서 자주 울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도 눈물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나의 딸 백성이 파멸하고 도시의 광장에서 아이들과 젖먹이들이 죽어 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내 눈은 눈물로 멀어져 가고 내 속은 들끓으며 내 애간장은 땅바닥에 쏟아지는구나.” (애가 2,11)

몇 년 전 캄보디아에 있는 대학살 박물관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은 과거 크메르루주 정권 시대에 정권에 반대했던 이들이나 지식인들을 가둔 감옥과 고문 장소로 사용되었던 곳이었습니다. 학교 교실이 감옥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철제 침대가 있었고 고문 도구가 있었습니다. 운동장 한쪽에는 사람을 매달아 놓고 고문했던 흔적이 있었고, 그 옆에는 수감된 이들이 지켜야 할 규칙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10개의 규칙 중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었습니다. “채찍으로 때릴 때, 전기 고문을 할 때 절대 울지 말 것” 다른 규칙들은 그런대로 이해가 갔지만, “울지 말라”라는 이 규칙에는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왜 이런 규칙을 있을까? 사람이 채찍을 맞고 전기 고문을 당하면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우는 것이 본성인데, 울지 말라고....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운동장을 지나 3층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학살당한 이들의 유골이 모아져 있었고 벽에는 흑백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당시 수감된 이들의 얼굴 사진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결같이 얼굴에 표정이 없었습니다. 감정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눈을 뜨고 있었지만 마치 죽은 사람들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 장의 사진 속의 얼굴, 가슴에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인데 빰 한쪽에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얼굴, 그 수많은 사진 속의 얼굴들 중에 그 엄마만이 슬픈 감정이 보였고, 살아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건물을 나오다가 다시 규칙이 적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절대 울지 말 것”
순간 소름이 끼쳤습니다. 눈물, 그것은 우리 인간이 가진 감정을 표현하고 마음을 드러내고 때론 가장 강력한 의사표현이기도 합니다. 눈물, 그것은 우리가 인간일 수 있도록 하고,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가장 소중한 그 무엇입니다. 다른 이들의 아픔과 슬픔에 진정으로 공감하면 눈물은 자연스럽게,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내립니다. 그런데 그토록 무섭고 고통스러운 곳에서 울지 말라고.... 그 규칙은 인간의 감정을 말살하고, 인간을 가장 비인간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아주 무서운 규칙이었습니다. 저만의 생각일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울지 않음으로써, 울지 못하게 함으로써 자신이 감정을 잃어버리고, 다른 이들의 고통을 보면서도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해 갔던 것이 아닐까?

기도 안에서 본 예수님의 눈물은 십자가의 신비를 조금이라도 깨달을 수 있도록 저를 초대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눈물은 우리의 아픔과 슬픔에 대한 깊은 연민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는 것,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의 손에 의해 창조주가 죽임을 당함으로써 우리의 어두움을 알게 하고, 우리가 살아가야 할 길을 깨닫게 해 주셨다는 것, 그 길이 생명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 깊어가는 사순, 내 안의 어둠을 볼 수 있는 눈을 청합니다. 우리 사회와 이웃의 아픔과 눈물에 둔감하지 않는 마음을 청합니다. 예수님의 아픔과 고통에 깊이 다가가는 은총을 청합니다. 예수님의 눈물에 제 마음이 젖어 그분의 마음을 더 깊이 알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아멘!!

 

 
 

최성영 신부 (요셉)
서강대학교 교목사제
예수회 청년사도직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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