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23]

대학 기숙사 시절, 많은 룸메이트들을 만났는데 한결같이 나보고 하는 말이 있었다.
“어쩜 눕자마자 바로 자? 누워서 십 초 딱 흘렀는데 코를 골더라. 어쨌든.... 부럽다.”
그랬다. 나는 정말 잘 자는 사람이었다.

‘이번 고민이야말로 밤잠 꽤 설치겠군. 한번 누워서 차근차근 생각해볼까?’ 했더라도 베개를 베고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하면 그냥 그길로 쿨쿨 잠이 들어 눈부신 아침햇살에 눈을 뜨고서야 자신에게 속은 것(섣불리 고민인 척 한 것)을 매번 깨닫고는 했다.

그러니까 나에겐 진실로, 진실로 잠을 설칠만한 고민이나 사건, 갈등이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는 말이다. 참 치명적으로 안온한 세월이었거나 아니면 내일 지구가 박살이 난다고 해도 그냥 잠이 오는 인간 유형이거니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는 예로부터 귀가 좀 많이 어둡다. 그런데 그 정도가 보통을 넘어서 사람들한테 말하면 “에? 설마~ 그 정도야? 에이~”하며 잘 믿으려 들지 않는 상당한 수준이다.

어떤가 하면 바로 옆에서 사람들이 속닥속닥을 넘어서서 호호깔깔, 와하하~하고 웃고 떠들어도 안 듣기로 결심했으면 뭐라 하는지 안 들린다. 그건 내가 너무 고지식해서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면 아무리 들리더라도 예의상 듣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귀를 차단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단련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게다가 눈과 몸은 이쪽을 향해 있으면서 귀만 저쪽에 열어놓는 짓이 원체 피곤하기도 하여 나는 차차 옆에서 무슨 대화를 하더라도(그것이 아무리 귀가 쫑긋거릴 흥미로운 가십거리라 할지라도) 소음일 뿐, 메시지로 해석하지 않는 놀라운 능력을 꽃피우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잘 모르는데 이걸 우리 아빠가 어떻게 아시고,
“혜율아,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귀를 좀 열어놓고 살아라.” 라고 여러 번 당부를 하셔서
“예~ 알았어요, 캡틴 큐!” 찡긋 하며 대답은 했지만 자고로 버릇이란 한 번 길들여지면 바꾸기 어렵다고 일부러 탐정놀이 같은 것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역시나 옆에서 사람들이 “혜율이는 바보~똥돼지~ ”라고 떠들어도 듣지를 못하는 귀머거리로 지내왔다.

▲ 엄마를 똘똘하게 만든 메리와 욜라 ⓒ김혜율
그런 내가.... 그렇게 단순 무식했던 내가 지금은 얼마나 똘똘해졌는지! 그게 다 엄마가 되고부터다. 나도 그럭저럭 엄마라면 다 그런 거 아니겠어 하며 넘어가겠건만,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심한 것 아닌가 하는 정도가 되었다는 데에 한번쯤 내 상태를 점검해 볼 필요성을 느꼈다. 일단 너어무 피곤하다.

요즘엔 밤에 누워서 매양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애들 걱정뿐이다.

‘메리, 욜라 기침소리가 언제쯤 가실까? 이불을 발로 차서 춥지 않을까? 무서운 꿈을 꾸는지 잠꼬대가 요란하네, 심리적으로 불만이 있나? 요즘 내가 5대 영양소를 잘 챙겨 주고 있는 것인가? 1식 1찬으로 버틴 지 오래됐는데.... 아아 못난 어미! 그나저나 내일 아침밥은 무얼 먹인담?’ 등등 이런 걱정들을 하다가 설핏 잠이 들려고 하면 꼭 메리나 욜라 둘 중 하나가 자다가 기침을 막 한다든지 소리를 지른다든지 혹은 서로의 발길질에 채여 자다가 성질을 내거나 울어서 잠이 또 한 번 확 달아나 버린다. 그러고 나면 잠이 더 안와서 이번엔 걱정도 종합적으로 하게 되는데....

‘아이들 심신의 건강은 잘 지켜지고 있는가, 안전하고 건강한 먹을거리, 그 어두운 미래는 내가 어찌 밝히나.... 어떻게 하면 율곡 이이 마냥 인성적으로 훌륭한 자식을 기를 수 있는가, 친구관계, 모녀관계, 부녀관계, 형제관계는 순조롭게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가? 내가 너무 애한테 엄하거나 혹은 만만한 것이 아닐까? (조기)교육의 시기와 종목과 그 방법, 대체 무엇을 시작해야 애가 지 뜻을 부모의 무지와 무관심으로 못 펴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점점 썩어가는 지구환경이 후일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두고만 봐야하는가.... 외모에도 많이 신경 써야 하는 세상인데 참.... 요즘같이 험한 세상에서 애를 안전하게 키우려면 어디까지 보호를 해야 하는 거야? 어떻게 나중에 애 소풍이라도 보낼 수 있을는지, 휴....’ 등등 이런저런 생각들로 뒤척이며 두려움과 무지로 벌벌 떨다가 기어이 신의 은총과 자비를 간구하며 새벽 무렵이 돼서야 지쳐 서너 시간 눈을 붙이는 것이 고작이다. 그것이 몇 년 된 것 같다. 절대적으로 잠이 부족한데 낮잠조차 안 자는 것이 포인트다.

그래도 잠을 대충 자도 지금껏 죽지 않고 살고 있으니 인체의 신비가 대단하긴 대단한가 보며 아무도 내가 잠을 자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봐 주지 않고, 신세가 좋아 뵈네, 피부가 광이 나네, 그런 말들을 해서 내심 억울하지만 남편에게 항상 떠벌리듯 나는 오직 정신력으로! 깡으로! 버티는 것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두운 귀 또한 엄마로서 살면서 밝을 대로 밝아져서 이제는 돌고래 수준으로 인간의 가청 영역을 넘나들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학계에 보고하고 싶다. 진짜다. 샤워를 하면서 쏟아지는 물줄기 속에서도, 똥을 누고 있는 본능의 순간에도, 마당과 집 안이라는 거리와 그 중간에 가로놓인 흙벽돌 벽이 두툼하게 방음을 치는 물리적 장애에서도, 램 수면의 정중앙에서 꿈나라 여행을 신나게 하고 있는 와중에서도 아이들이 모기소리로 ‘엄마’하고 부르거나 ‘잉~’하며 찡얼거리는 소리를 내면 또또또똣 내 귀에 다 들린다. 환청이 아니면 감사하다.

▲ 메리와 욜라 ⓒ김혜율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많은 엄마들이 그렇다고 하는데 그것은 필요한 능력이면서도 또 상당히 피곤한 능력이기도 하지 않나? 걱정의 97퍼센트는 말 그대로 쓸데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리고 걱정을 하든, 안하든 어떤 일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으면서도, 무엇보다 나는 나고, 자식은 자식이고 다 자기 인생 사는 거지라고 백퍼센트 생각하면서도, 기본만 한다고 하면서도 나는 엄마로서 걱정덩어리를 잔뜩 짊어지고 때로는 찾아서 하고 있다.

하루 종일 예민하게 모든 촉수를 아이의 눈코입귀손발위장대장항문에다 열어놓고 아이의 눈빛과 말, 그 의향과 기분에 초집중하려니 나로서는 진이 빠지는데 이것이 너무 오버하는 것인지, 아니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인지, 그냥 내가 이렇게 돼먹은 것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아아 정말 모르겠다.

이제 더 이상 나만을 생각하고 나만을 위한 삶을 살 수 없는 숙명의 수레바퀴아래 떨어지고 만 것 같아 아찔하다. 내가 낳았다는 그 인연 덕분으로 그에 따르는 모든 고통을 내가 느끼고 죽을 때까지 짊어지고 가야하는 건 너무 한 것 아닌가. 완전히 속았다 싶다. 그래도 자식이 있다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결론을 내려 보자면, 언제나 나를 비추는 거울인 자식 덕분에 자신을 부끄러워 할 줄 알고, 매번 욕심과 절망 사이에서 싸우며 겸손을 배운다. 마음을 놓으려고 할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여러 고비들 앞에서 더 부지런히 신을 찾고, 우매하기만 한 한 여자를 때로는 초능력자로 만들기도 하는 것이 바로 자식이라는 존재지. 하여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하느님 뜻대로 하소서.

오늘 저녁으로는 콩나물밥을 해 먹었다. 콩나물이 어떻게 길게 자라나는가. 구멍 뚫린 콩나물시루에 물을 부으면 그 물이 몽땅 다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 같아도 그 촉촉한 매일의 물 기운을 먹고 콩나물이 자란다지. 나는 그저 오늘 콩나물시루에 물 한 바가지 부었다.

우리 메리와 욜라가 받아먹은 건 겨우 한 방울 만큼의 물이라고 할지라도, 내일도 그 내일도 한 바가지씩 주는 것이 내 몫이니.... 언젠가 무성하게 자란 싱싱한 콩나물이 될 것을 믿는다.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두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3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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