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수년 전 책 한 권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대한민국 부모”(이승욱 외 2명, 문학동네, 2012)라는 책이다. 부제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내용은, 이 아픈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 아픈 부모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고통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는 책이었다.

▲ 조강자 역을 맡은 배우 김희선.(사진 출처 = MBC 홈페이지)
(부모로부터)살아남기 위해 병들고, 살아남기 위해 일탈하는 아이들, 무기력으로 저항하는 아이들, 부모를 안티 하는 아이들, 그리고 그보다 더 아픈 부모들이 마주한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현실이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저자는 말한다. 이것은 고통의 일부만 기술한 것이라고. 책에 적지 못한 가슴 아픈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고. 부모가 아이에게서 ‘독립’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이 지옥을 부디 들여다보라고. 어쩌면 우리는 부모 말고 다른 ‘가해자’를 찾을 길 없게끔 서술된 이 책을 어떻게든 회피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MBC 수목드라마 ‘앵그리맘’은 딸을 지키기 위해 다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엄마의 이야기다. 엄마가 굳이 교복까지 입어야 했던 것은 ‘학교폭력’ 때문이었다는 게 드라마의 설정이다. 엄마 조강자(김희선 분)가 딸 아란(김유정 분)을 지키기 위해 다시 고교 2학년 ‘동급생’이 된다. 극이니까, 도저히 그러지 않으면 안 될 상황들이 첩첩이 쌓이고 얽혀 있다. 이 엄마의 모성애가 극단적이긴 하지만, 펼쳐진 상황들은 일단 수긍할 만도 하다.

물론 학교는 조강자가 다니던 예전보다 훨씬 더 ‘무섭고’ 피폐해져 있다. 건물이나 외형적 환경들은 분명 좋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2015년 현재의 학교는 구성원 모두를 숨이 막히게 하는 곳이다. 적어도 ‘학교폭력’이라는 말이 버젓이 생활수칙 상에 자주 등장하는 것만 봐도, 이걸 전체 학생 모두에게 널리 ‘교육’ 혹은 주입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교복 맵시가 여전히 좋은 김희선이 고교생이었을 무렵, 그때도 ‘일진’ 출신인 극중 강자에게 학교는 힘든 곳이었고 세상은 폭력과 비정함으로 얼룩졌다. 되돌아온 학교 역시 심각하다 못해 아이들에게는 ‘출구’가 없는 듯이 보인다.

'앵그리맘'은 무거운 소재를 다루는 동시에 폭력적인 장면도 많다. 요즘 세태를 직접적으로 보여 주며 학교 폭력 및 성폭력까지 조명하고 있다. 이 끔찍한 사태의 뒤에는 교사의 비리와 사주가 있다. 해결 방법은, 현재로서는 암담하다. 학교와 교사들, 재단, 그 뒤로 교육청까지 연결되며 이 문제들이 단순히 학생 선에서 그치지 않음을 드러낸다.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해결방법조차 안 보여 막막하다. 교실로 돌아가 ‘직접’ 아이들의 생활을 보고 듣는 조강자만이, 이 심각한 사태의 ‘전달자’가 돼 줄 수 있는 구조다.

▲ 학교에서 몸싸움을 벌인 뒤 교사의 지도를 받고 있는 (왼쪽부터) 조강자(김희선 분), 홍상태(바로 분), 고복동(지수 분).(사진 출처 = MBC 홈페이지)

우리는 모두 학교라는 곳을 경험했고, 학교라는 곳이 안전하지 못할 때 어떤 비극을 품게 되는지를 안다.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특히 학교 소재의 드라마는 엄마 혹은 딸 입장에서 시청자의 감정이입을 강렬히 불러일으킨다. 드라마 ‘앵그리맘’에서 걱정되는 점이기도 하다. 자칫 폭력에 둔감하게 만들고 미화하지는 않을지 더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 너무 극적으로 흐르지 않았으면 한다. 극본 공모전 당선작다운 참신한 해결책을 기대하고 싶다.

▲ 조강자의 딸 오아란.(김유정 분)(사진 출처 = MBC 홈페이지)
“대한민국 부모”라는 책을 본 입장에서는, 드라마가 ‘악인들’의 악행에 치중할수록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실상 부모들이 이런 설정에서 바라는 바는 무엇일까? 교복을 입고 학교로 돌아간다면, 정말 내 아이뿐 아니라 내 아이의 친구, 더 나아가 우리의 아이들 모두를 지킬 수 있는 엄마가 되고픈 것일까? 아이와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교실에서, 같은 학원에서, 아이를 24시간 감시해야 직성이 풀릴 그런 엄마로 변해 있는 것은 아닐까?

어느새 부모라는 이름의 감시 카메라가 된 건 아닌지, 지금 괴물이 되어 있는 것은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여기가 만일 ‘지옥’이라면 그것은 아이들 탓이 아니다. 어른들의 잘못이다. 이 산적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모가 가져야 할 감정이 ‘분노’라면 더더욱 냉철해져야 할 것 같다. 정말로 분노해야 할 일에 분노해야 한다. 분노할 일과 관대해야 할 일부터 분별하되, 어찌 해결해야 좋을지 학생들의 입장부터 들어야 할 듯하다. 답을 아이들은 아는데 어른들만 모르는 것은 아닌지, 어쩐지 자신이 없어진다.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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