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이것은 가상의 역사다. 영화 ‘순수의 시대’는 주요 등장인물과 주요 사건을 픽션으로 채웠다. 이름을 후세에 남긴 사람들 틈에, ‘있었음직한’ 가상의 인물들을 끼워 넣었다. 따라서 주인공들은 신념 혹은 관념을 대표하는 인물로 형상화 됐다. 그 순도를 유지할수록 관념적으로 보이는 이유다. 더 이상의 ‘역사’가 없을 듯했던 잘 알려진 한 시대를, 빈 공간을 만들어 지어내고 다시 허물었다. 그런데 가상의 역사가 꽤 그럴 듯하다. 지워진 부분이야말로 어딘가 사람 냄새가 나는 듯하다.

▲ '순수의 시대'의 주인공 김민재(신하균)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주인공 김민재(신하균 분)는 장군이다. 개국한 조선의 삼군 총사령관이다. 전 군이 그의 휘하에 있다. 무장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 앞에 그의 이름이 놓여 있다. 칼이 명하는 것을 잡념 없이 혹은 ‘사심’ 없이 따르는 자, 칼로써 다른 무엇을 얻으려 탐하지 않는 자. 김민재는 영화 ‘순수의 시대’에 등장하는 그 많은 칼 든 사내들 중 어쩌면 유일한 ‘순수’ 무장이다.

그가 베려 하면 누구든 벨 수 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벨 수는 없다. 온통 자기를 비우고 사는 사람이어서 일까. 어미가 여진족인 ‘비천한’ 그가 칼솜씨 하나로 삼봉 정도전(이재용 분)의 수족이 되고 사위가 되고, 이후 태조가 된 이성계(손병호 분)가 조선 왕실과 세자 방석의 안위를 부탁하는 최고의 무신이 된다. 삼봉도 태조도, 심지어 반대편의 정안군 이방원(장혁 분)도 모두 김민재를 필요로 한다. 그를 얻는 자가 천하를 가질 수 있다. 삼봉의 사위이면서 태조의 사돈이며, 더 이상 오를 자리가 없을 만큼의 출세다.

각자의 욕망이 충돌하며 ‘개국 7년, 1차 왕자의 난’을 향해 치닫던 그 시절, 김민재는 ‘정도전의 개’로 불린다. 남들이 그리 대놓고 쑥덕대지 않아도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약조였든 충심이었든, 그 애초의 계약을 잊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묵묵히 수행했다. 베라면 베고, 치라면 쳤다. 가라면 그게 어디든 갔다. ‘마지막 정벌’을 끝내면 쉬게 해 주겠다는 장인 정도전의 약속이 물거품이 되기 전까지는, 자신의 본심 따위는 생각지 않고 명을 따랐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쉴 수 있을 줄 알았다. “살기 위해 살생하는 일도 없는” 평화로운 일상이 올 줄 알았다. 그 약속이 무참히 깨지고 원치 않는 임무와 축하연이 있던 밤에, 그는 가희(강한나 분)를 만난다.

노예의 길, 자유인의 길

그는 노비 신세다. 아니 실은 노비만도 못하다. 영화 속에서 김민재 보다 부자유한 존재는 없다. 명예도 권력 추구도 아닌, 그저 자기의 처지가 노예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는 자의 무덤덤함. 그게 그의 ‘충성’의 겉껍데기는 아니었을까. 어차피 어떤 ‘사람’에게 충성한 것이 아니었다. 자리가 탐났다면, 진즉에 천하를 다 베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저 명에 따를 뿐”이라는 대답은, 실은 세상에서 ‘제 것’을 가져보지 못한 자의 허허로움이다. 늘 초긴장 속에 몸을 바람보다 가볍게 단련하고 살지만, 그는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신세다. 그러다 가희를 본 순간, 자신이 얼마나 심하게 결박당한 몸인지를 깨닫게 된다. 열병 같은 사랑에 빠지면서 점점 분명해지는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스로의 무력함이다.

무색무취하던, 맛도 모르고 살아온 그의 고단한 인생에 가희는 스미듯 들어온다. 기녀 가희의 춤은 뭇 사내들을 눈 멀게 하지만, 춤보다 실은 이야기짓기에 더 비상한 재주가 있다. 아니, 이야기 속으로 자신의 삶을 밀어 넣은 채 새로이 주변을 재편시키는 '서사 창조'에 재주가 있는 여자다. '이야기의 끝'을 감히 제 뜻대로 매듭지어 보려는, 말하자면 복수의 화신이다. 끔찍한 재주다. 한 나라의 왕좌가 가희의 치마폭에서 판가름 나고 그 손끝에서 농락당할 정도의 수완이다. 심지어 '이야기'의 주도권을 틀어쥐게 된 진정한 비결은 방중술인 듯도 하다. 이 영화는 19금 청소년 관람불가임을 십분 활용한다.

▲ '순수의 시대'의 가희(강한나)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맛도 모르고 살았을 때는, 그나마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가희를 만나면서 그는 기쁨이라는 걸 알아버린다. 꿈을 꾸게 된다. 알고 나면 돌아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김민재의 꿈속에는, 이제 가희뿐이다. 평생을 지녀온 칼도 없다. 빈손이다. 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은 채. 평화로운 꿈이었다. 꿈에서도 차마 꿈 꿀 수 없던, 그러나 함께 그 꿈속을 거닐어 줄 이를 평생 기다려 온 꿈. 꿈속의 꿈. 아름다워서 서러운 꿈. 피만 묻히고 살아온 자신에겐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고운 꿈.

복수를 위해 ‘피의 왕자’ 이방원에게 자청해 매수된 가희는, 부마이자 김민재의 ‘아들’인 진(강하늘 분)을 몰락시키고자 그 아비에게 접근했다. 타락이라는 말로는 모자랄 정도의 덫이었다. 김민재에게는 이게 첫사랑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주고 싶었고, 다 알고 나서도 그 손을 놓을 수 없었던. 그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며 칼날이고 불길이고 사리지 않고 막아내는 동안, 가희는 점점 아름다워진다. 김민재가 그토록 사랑해서인지 그녀는 조금도 훼손되지 않는다. 묘한 품격이 있는 고혹적 아름다움이었다. 용감한 사내도 잔인한 사내도 비열한 사내도 모두 그녀를 탐한다. 복수에 모든 것을 바친 ‘천한 것’의 서리서리 맺힌 한은, 사실 김민재의 순정으로도 풀리지 않는다. “천한 목숨 셋 보다 소 한 마리 값이 더 비싼 이 나라”에서 “살아있는 것이 죄”라고 울부짖는 가희나, 가희를 위해 목숨을 건 김민재나 독 안에 든 쥐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을 해도 죽을 수밖에 없다면 남은 것은 하나, 최후의 순간만이라도 자유인이 되는 게 김민재의 선택이다. 그 순간을 추격자의 칼이나 화살로부터 지켜내는 것. 온전한 자신이 되는 것. 진짜 호랑이는 자진할지언정 사냥꾼의 활에 죽지는 않음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비장하다. 영화 ‘순수의 시대’는 그 순간에 최대한 집중한다. 또한 최선의 예우를 갖춘다. 한동안 김민재 장군에 대해 생각했다. 자유의 길을 찾아 탈출을 감행한 그 모든 도망자들, 이름 한 줄 없이 사라져갔으며 무덤은커녕 시신조차 남기지 않았던 모든 영혼들을 생각했다. 그토록 짓밟히고도 스러지지 않은 어떤 오래된 꿈에 바치는 묵념이었다.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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